결혼식을 앞둔 딸이 결혼식에서 아빠가 덕담 한마디 해줄 수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왔다. 나는 덕담은 너무 짧고 결혼식에 주례가 없으니 축사를 써서 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딸은 그렇게 하란다. 그날부터 신경을 써서 축사를 준비했다. 남들이 쓴 축사는 참고하지 않고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과 둘에게 해주고 싶은 말만 쓰기로 했다.
직장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축사를 쓰고 다듬다 보니 A4 용지 4장이 되었다.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축사를 출력해서 딸에게 보여주자 딸은 한번 읽어보더니 너무 긴 것 같다며 3장 정도로 줄여달란다.
결혼식에서 축사를 읽어주려면 결혼식 전까지 예식장에 제출해야 한다.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다시 축사를 수정해서 몇 번의 퇴고를 거쳐 A4 용지 3장으로 정리했다.
수정한 축사를 딸에게 읽어보라고 하자 딸은 괜찮다며 축사 읽는 시간을 잘 조정해서 맞추어 달라고 부탁한다.
드디어 결혼식 날 사돈의 성혼선언문 낭독에 이어 덕담 한마디를 해달라는 사회자의 말을 듣고 주머니 속에 넣어 온 축사를 꺼내어 읽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부 측 아버지 이상역입니다.
오늘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을 하늘이 화답이라도 하듯 날씨가 아주 쾌청하고 화창합니다. 이렇게 맑고 풍성한 가을날에 양가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와 직장 동료 여러분의 축복 속에서 뜻깊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 천 리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부산, 경산, 경주, 대전, 청주 및 진천 등에서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신 양가의 어르신과 친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과 수고를 해주신 사돈 내외분과 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에 딸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혼은 인륜지 대사라는 옛말을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경 쓸 것도 많고 힘들었지만, 묵묵히 따라준 사위와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제가 오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하는 것은 두 사람보다 인생의 선배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사회 선배로서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먼저 결혼은 두 사람의 일이지만 두 사람 뒤에는 부모와 친척과 친구들과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말과 행동에 주의해 달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결혼 전의 생각과 행동양식에서 벗어나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결혼은 부모에게서 독립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말과 행동에 잘못이 있으면 부모가 책임을 졌지만, 이제는 결혼한 부부가 책임을 져야 하므로 말과 행동에 조심하고 주의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은 두 사람이 지금까지 형성해 온 서로 다른 삶의 문화와 환경과 자라온 성격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삶의 동질화를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쉬운 말 같지만 어려운 문제이며 둘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할 화두로 여기고 살아갈 것을 당부드립니다.
두 번째는 가정 내에서 서로가 추구하는 삶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격려하면서 토닥토닥 살아갔으면 합니다. 현재 두 사람은 직장을 다니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힘들고 어려운 가정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삶은 상대방에게 의무를 강요하거나 한 사람에게 육아나 삶에 대한 책임과 무게를 온전하게 실어준다면 가정은 점점 더 어렵고 힘든 길로 빠져듭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부로서 서로의 직업도 존중해 주고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부부가 함께 노력하고 격려하면서 평안한 삶을 살아갈 것을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는 지금처럼 아름답고 밝은 모습을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하루하루를 기쁨과 사랑으로 채워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만,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람의 일은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순리에 맡기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삶에도 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삶은 생생한 현실이 되겠지만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소중한 인연의 관계임을 잊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지만, 인생에는 이 외에도 아주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어려운 언덕을 만날 때마다 둘이 잘 상의하거나 양가 부모님이나 선배들에게 조언을 받아 가며 슬기롭게 극복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오늘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댁에서 하시는 일과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축사를 마칩니다.
결혼식에서 축사를 읽고 나자 너무 빨리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사는 천천히 읽어 주든 빨리 읽어 주든 둘에게 뜻만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그만이다.
결혼식에서 중요한 것은 축사의 내용이 아니라 둘이 함께 살아갈 약속과 믿음과 마음의 다짐이다. 그나마 둘의 결혼식에서 전해줄 말이라도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결혼식에서 둘에게 읽어준 덕담 한마디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인생의 지침이나 나침판이 되어 주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