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딸의 결혼식을 문정동 컨벤션에서 양가 부모와 친척과 직장 동료 그리고 친구들을 초청해서 무사히 마쳤다.
결혼식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결혼하는 당사자보다 부모가 심적인 부담도 더 가고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은 오후 14시 30분부터 시작인데 어머니를 포함한 고향에서 온 손님들은 정오를 막 넘긴 시간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배가 고프다며 음식을 미리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예식장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피로연 음식을 약 삼십 분 일찍부터 먹을 수 있게 시간을 조정해 주고 예식장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는데 오후 13시 반이 되어가자 하나둘씩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찾아오는 손님과 악수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익혀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도 다음 손님이 기다려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며 오후 14시가 넘어서자 손님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예식 손님이 밀물처럼 몰려오자 머릿속은 지우개처럼 하얗게 비워지고 마음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혼이 빠진 상태로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사람들이 썰물처럼 예식장 앞에서 사라졌다. 모두가 피로연장으로 가거나 예식을 보러 식장 안으로 들어가자 나와 딸만 덩그러니 문 앞에 남게 되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부 입장을 위해 딸의 손을 잡고 예식장 문밖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딸의 손을 잡고 기다리는데 딸은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반해 나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양가 어머니의 촛불 점화에 이어 신랑이 입장하고 사회자가 신부 입장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딸의 손을 가볍게 잡고 딸보다 반발 정도 앞서 예식장에 들어섰다.
성인으로 자란 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은 처음이지만 떨림이나 설레는 마음은 일지 않았다. 딸과 예식장 단상에 올라 둘이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자 비로소 딸이 시집을 간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딸의 손을 잡고 단상을 걸어가 딸을 사위한테 보내고 혼주석에 내려와 아내 옆에 앉았다. 이후 결혼식은 순서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랑과 신부의 혼인 서약과 신랑 측 아버지의 성혼선언 낭독에 이어 신부 측 아버지의 축사가 있었다. 나는 단상에 올라가 호주머니 속에 넣어 온 축사를 읽어주었다. 이어서 신랑 친구의 축가와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와 하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결혼식은 꿈결처럼 짧은 순간에 끝이 났다. 결혼식을 끝내고 신랑 신부의 사진 촬영과 양가 부모 및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 촬영을 끝으로 부대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신랑 신부와 사진 촬영을 끝내고 나자 예식장 직원이 다가와 양가 부모를 모시고 피로연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가서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지정된 테이블에 앉았다.
피로연장을 돌면서 결혼식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는데 다들 음식이 맛있다며 활짝 웃는 모습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결혼식에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은 친척을 제외하고 예식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혼주 얼굴을 보러 오는 것이다. 피로연장의 지정된 좌석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건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잠시 후 예식장 직원이 음료와 음식들을 차례로 가져왔다. 혼주가 음식을 갖다 먹지 않고 예식장 측에서 준비해 준 음식을 먹으니 마음이 편했다. 그러잖아도 종일 손님을 맞이하고 신부 입장과 축사를 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사돈네와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피로연장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결혼식 접수업무를 보던 매부와 동생과 조카가 앉을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들을 혼주석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도록 안내해 주고 음식을 먹고 있는 동생에게 식대를 정산했느냐고 물어보았다. 예식장 측에서 식사를 끝내고 정산하러 오라고 안내를 받았단다.
피로연장에서 식사를 끝내고 예식장 직원에게 오늘 두 시 반 예식인데 식대를 정산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좀 전에 식권을 정리해서 사무실로 올려 보냈으니 정산해도 된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예식장 사무실을 찾아가 식대를 정산하는데 식권이 이백장 이상이 나갔으니 확인하고 정산하란다. 식권이 나간 개수와 남은 것을 맞추어 보고 서로 일치해서 식대를 바로 정산했다.
식대 정산을 마치고 피로연장에 내려가 결혼식 접수를 본 사람에게 고생했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하는 것을 마중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지동 집에 도착하자 처가 가족이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장인어른과 처남과 처남댁과 결혼한 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때쯤 돌아갔다.
이번에 딸을 결혼시키면서 느낀 것은, 딸의 결혼이 마치 내 인생의 결과물처럼 머릿속에는 지나간 시절의 추억과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내가 청첩장을 보낸 사람 대부분은 예식장을 찾아왔지만 찾아오지 않은 사람도 있다. 결혼식에 찾아온 사람은 친척과 친구를 빼고는 모두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면서 맺은 인연이다.
결혼식에 찾아온 사람도 고마웠고, 일이 있어 축의금만 보내준 사람도 고마웠다. 근 오백여 건의 축의금이 접수되었다. 딸과 아내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을 제외하고 근 사백 건은 나와 연관을 맺은 사람들이다.
결혼식은 최대한 간소하게 하자는 의견에 따라 준비하고 진행했지만, 간소하게 진행된 것 같지는 않았다. 결혼식은 화려함보다 본인들의 시선과 눈높이에 맞추어 진행해서 검박하게 느껴졌다.
결혼식은 간소하되 의미는 뜻깊게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예의와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축의금을 내신 분들에게 일일이 정성을 다해 감사의 인사장을 보냈다.
결혼식 축의금 정산과 참석자 명단을 정리하고 나자 결혼식과 관련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결혼식 참석자 명단을 하나둘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삶은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관심과 은혜를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다가 결혼식을 계기로 만나는 것이 인생살이란 것도 배웠다.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먼 곳에서 찾아왔던 친척과 친구들은 다시 각자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둥지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형제들도 고향으로 내려갔다. 새삼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지금 순간에 누리는 영광도 없었고 딸의 결혼식도 치르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를 포함한 형제들과 장인어른을 포함한 처가 가족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