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결혼하는 딸의 신혼집은 가락동의 아파트로 정했다. 딸과 사위를 대동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이튿날 주민센터에 가서 확정일자를 받았다.
전세금은 둘이 모은 것에 양가의 도움과 부족한 것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로 했다. 전세금 대출은 서울시 신혼부부 전세 자금 지원사업을 이용했다.
결혼하는 부부의 연 소득과 서울 전입과 은행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면 이자율이 아주 낮다. 은행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둘에게 준비시켜 은행에 가서 대출에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은행 대출 절차가 끝나자 대출금은 은행에서 집주인 계좌로 잔금일에 직접 입금해 준단다. 은행 대출을 마무리하고 확정일자를 받은 전세계약서를 갖고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전입신고 하는데 주민센터 담당자가 이사를 하지 않아 받아줄 수 없다고 한다. 전세보증금 보호를 위해 전입신고 하는데 왜 받아주지 않느냐고 따지자 담당자가 집주인 동의를 받아 오란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자 바로 동의해 주고 이어서 주민센터 담당자가 집주인과 통화를 하더니 전입신고를 받아주었다. 오늘은 직장에 연차까지 내고 은행 대출과 전입신고를 도와주었다.
딸과 사위는 사회 초년생이라 집과 관련한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본인들이 잘 알아서 하겠다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 신경을 써주지 않을 수 없다.
결혼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집 문제인데 뒷짐만 지고 바라볼 수 없었다. 딸과 사위의 전입신고를 마치고 주민센터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내가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딸과 사위는 지금 자신들의 내일을 설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부모가 나서서 은행 대출과 전입신고까지 돌봐주는 부모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차로 집에 돌아왔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딸과 사위는 둘이 가전제품 보러 시내에 나간다고 하기에 헤어졌다.
결혼은 결혼 전에 준비하는 과정과 둘이 상의해 가며 하나둘씩 살림을 장만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결혼 살림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수많은 상념과 잡다한 생각이 혼재한다.
눈앞에 다가오는 미래를 그리며 설계하고 준비하는 것은 즐겁고 웃음이 나는 일이다. 그런 생각에는 설렘과 희망이 깃들어 있다.
둘이 시내로 나가는 것을 배웅하고 집에 들어오자 마음이 텅 비어 버린 것처럼 속이 허전하다. 딸이 시집가서 허전한 것이 아니라 삶이 허전해서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하는 돌아봄과 신혼집을 구하고 살림을 장만하는 과정에서 나는 아내와 상의 한번 제대로 나눈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런데 딸과 사위의 모습을 보고 부러움을 느꼈다.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다. 결혼은 제도권 생활이다. 지금까지 연인의 관계에서 벗어나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지 않아도 후회라고 말한다. 기왕에 후회를 하려면 결혼하고 후회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결혼을 하지 않고 하는 후회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삶에도 많은 후회가 따른다. 삶은 후회를 통해 반성하고 성찰을 통해 성장해 간다. 어떠한 일에 후회가 따른다면 일단 저질러 놓고 후회하는 것이 성장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삶은 잘 살아도 후회가 따르고, 삶에 만족하지 못해도 후회는 따른다. 단지 삶의 후회를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서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결혼해서 후회가 된다면, 그 상황을 수정하거나 애초에 바라는 목표에 맞게 고쳐 살면 된다. 후회는 삶의 새로운 시작점이자 돌파구인 변곡점이다.
딸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현명하게 취사선택해서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삶에는 늘 취사선택이 기다린다. 그리고 어떤 것을 선택해도 후회가 따르고 선택하지 못해도 후회가 따른다.
그 과정에서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삶은 성장하고 성숙해 간다. 신혼집을 정했으니 이제는 가전제품이나 침대나 식탁과 같은 가구를 들여놓아야 하고 생활에 필요한 숟가락과 젓가락과 그릇과 같은 부엌살림도 준비해야 한다.
자잘한 살림은 둘의 취향을 고려해서 준비하게 맡겨 두었다. 사람에게 의식주가 중요하듯이 신혼살림에도 의식주가 중요하다. 그중에 어느 하나가 빠지거나 부족하면 삶이 버거워진다.
이제 남은 신혼살림은 둘이 의논해 가면서 천천히 준비하도록 맡기고 나는 뒤에서 응원이나 하려고 한다. 그것이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