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주중에 가족의 아침이나 아이들 등교를 챙겨준 적이 없다. 그저 내 몸 하나 챙겨 출근하기도 바쁘고 벅차 서다.
어느 날 하루는 아내가 성남에 소재한 고등학교에 한 달간 기간제 교사로 출근하게 되었다며, 아침에 아이들 등굣길을 챙겨줄 수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왔다.
아내는 눈 수술 이후 의사의 권유로 교직을 떠난 상태다. 오랜만에 학생들 가르쳐 보겠다고 하는데 반대할 수도 없어 당신 몸이나 조심하고 출근이나 잘하라며 아이들 등굣길은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출근 첫날 아내는 아이들 잘 챙겨주라는 말을 남기고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나는 아내가 준비해 놓은 것을 챙겨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세수하라고 시키고, 옷과 책가방 싸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라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준비하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는 일일이 챙겨주어야 했다. 막내가 적어 온 메모장을 펼쳐 준비물 챙기고, 가방에 책을 시간표에 맞게 넣었는지 확인하고, 학교에 입고 갈 옷이 막내가 좋아하는 색깔인지 등 신경을 써서 거들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 밥을 먹게 하고 옷과 가방을 챙겨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자아이라면 머리를 빗으로 쓱쓱 빗겨주면 그만인데, 여자아이는 머리를 빗으로 빗어 맵시 있게 묶어주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지금껏 아이들 머리를 땋거나 묶어본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큰아이에게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라고 시켰다. 그렇게 아침마다 아이들을 챙겨주며 등교시킨 지 일주일쯤 되어가자 막내가 퇴근한 아내에게 귓속말로 언니가 머리를 묶어주는 것에 불만을 표출했다.
막내의 말을 듣고 다음 날 큰아이가 막내에게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 입고, 머리 묶고, 가방을 챙기는 등 자기 할 것을 다한 뒤에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었다.
그러면서 큰아이는 “너 때문에 학교에 늦을 것 같다.”, “너는 왜 혼자서 머리도 묶지 못하냐.”, “나는 네 나이 때 머리도 묶고 옷도 스스로 챙겨 입었다.”라면서 이전에 아내가 큰아이에게 했던 잔소리를 그대로 막내에게 하고 있었다.
큰아이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인데 막내는 약간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큰아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정이 막내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결혼한 가정에서 겪는 공통점은 첫아이가 태어나는 시기는 결혼 후 가정이 안정되지 않은 시기고, 아이를 낳아 키워 본 경험이 없어 육아에 서툴고 실수를 거듭하며 키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첫아이를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을 안고 키우다가 둘째가 태어나면 부모의 관심은 저절로 막내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나는 막내의 말을 듣고 이튿날부터 머리를 직접 묶어주기로 했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등교에 필요한 것을 챙겨준 뒤 막내를 불러 세웠다.
아이 뒤에서 오른손에 빗을 들고 머리를 천천히 빗질하며 머리카락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머리를 모아 왼손에 움켜쥐었다. 그런 상태로 왼손 새끼손가락에 걸쳐 둔 고무줄 머리띠를 오른손으로 쥐고 살짝 잡아당겨 왼손 안쪽을 향해 서너 번 감아 돌려 왼손에 쥔 머리띠 고리에 엇걸어 묶었다.
나름 공을 들여 아이의 머리를 묶은 것 같은데 머리 꽁지가 매끄럽고 동글게 묶이지를 않았고 뒷머리 중심에도 오지를 않았다.
첫날은 할 수 없이 머리를 대충 묶어서 보냈다. 학교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머리 묶은 꽁지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고, 빗질을 잘해서 묶어준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삐죽삐죽 솟아 나왔다.
마치 엄마 없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차려입은 옷과 머리를 보면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내 아이도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막내야!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이 머리 묶은 것 보고 뭐라고 하지 않았니?”라고 묻자, “아빠!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며 웃는다.
다음날도 작은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기 위해 땀까지 흘려가며 애를 써보았다. 내 손은 크고 잡히는 머리숱이 얼마 되지 않아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솔솔 빠져나가고, 오른손으로 머리끈을 움켜쥐고 왼손 안쪽을 향해 감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를 않았다.
어제저녁에는 퇴근한 아내를 붙잡고 아이의 머리 묶어주는 것을 배우려고 연습까지 했다. 아니! 도대체 아내는 어떻게 아이의 머리를 잘 묶어주는 것일까? 아이의 머리를 묶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집안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아내가 해온 집안의 일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집안의 소소한 일도 별것이 아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머리를 제대로 묶어주는 것도 오른손으로 빗질하면서 깔끔하게 모으고 머리숱이 한 올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왼손으로 바짝 움켜쥐고, 머리띠 잡은 오른손을 왼손 안쪽을 향해 감되 머리숱과 꽁지가 뒤통수 중심에 모이도록 해서 묶어주는 것도 어느 정도 숙련이 필요했다.
이러한 머리 묶기 원리를 터득해 갈 때쯤 아내의 기간제 교사도 끝이 났다. 지난 한 달간 아이들의 등굣길을 챙겨주면서 가정의 행복은 아내의 보이지 않는 정성과 노력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그동안 출근이나 외출할 때마다 아내에게 “왜! 그렇게 꿈지럭거리느냐?”라고 채근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앞으로 출근할 때나 가족을 데리고 외출할 때 아내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거나 늦는다고 불만을 표시하지 말아야겠다. 지난 한 달간 아이들 등굣길을 챙겨준 시간은 易地思之라는 뜻을 가슴 깊이 새겨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