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낯선 세상에 대한 동경과 집시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나이 들어갈수록 과거라는 물레방아를 그리워하는 것이 정상인데 자꾸만 낯선 곳을 찾아가는 꿈을 꾸곤 한다.
내 마음엔 나도 모르는 집시가 들어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의 돛대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바람은 무엇일까. 무엇이 마음을 요리조리 흔들며 계절의 변두리를 서성거리게 하는 것일까.
삶은 살아갈수록 명료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문만 더해간다. 오늘도 평소처럼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흰 여백 위에 이것저것 변명해 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문만 높아간다.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일까. 마음에서 일어난 상념을 그대로 드러내면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포장하는 고상한 말과 낯빛을 바꿔가며 변명하면 솔직해질 수 있을까.
남이 쓴 글을 읽으면 나도 글을 써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그에 덩달아 무언가를 열심히 써보려고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름다움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무언가 뚜렷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닌 듯싶다.
내가 진심으로 써보고 싶은 것은 마음의 결을 따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자신에게 솔직하게 다가가고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고 싶어서다. 그 일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마음은 나로 인해 작용하고 나타난다. 몸이란 그릇에서 마음이 작용하지만, 몸이란 그릇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본래의 나는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나를 찾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동무 생각’이란 노래가 흘러나오는 사이트를 접속했다. 노랫말에서 청라언덕이란 단어가 푸르게만 들려온다.
청라(靑蘿)란 푸른 담쟁이란 뜻이다. 푸른 담쟁이가 언덕을 이룬 곳. 누구나 그리움과 꿈을 먹고 자란 가난이란 언덕. 이은상 시인이 박태준의 못다 이룬 짝사랑을 시로 지어 박태준에게 건네주고 박태준이 아름답게 노래로 승화시킨 것이 ‘동무 생각’이다.
우리 가곡도 영문으로 번역해서 부르면 아름다운 곡이 많다. 이 노래는 청라언덕이란 박태준의 마음과 백합이란 짝사랑하던 여인의 마음을 빗댄 푸른 사랑의 노래다.
내 머릿속엔 ‘동무 생각’이란 노래가 테이프에 감겨 돌아간다. 더불어 그간 잊고 지내던 동무의 생각과 함께 차가운 바람이 빈 들녘에서 불어온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고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 밭에서 불어오는 상념을 따라 변해가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이 세상은 살아가기도 살아내기도 퍽 외롭고 고독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이란 찰나적 순간에 가는 세월의 다리를 두드려 보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어디에 가 닿았나 하는 소소한 것만 얻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기호로 표현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세상을 방황하다 영원의 세계로 떠난다. 지금이란 찰나적 순간에 스스로 진실하게 다가간 계기는 되었을까.
삶은 목적과 의미만을 내세우며 살아갈 수는 없다. 어차피 삶이란 시간을 따라 마음자리를 여행하며 지나가는 과객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변명과 핑계를 많아졌다. 일상의 순간순간이 그저 허허롭기만 하다. 그 허한 가슴에 그리움이 잉태된 청라언덕이 그립고 그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옅은 꿈을 꾸어본다.
삶에서 겪는 풋풋한 일상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으로 남는다. 청춘 시절에 부른 청라언덕은 지금쯤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높고 푸른 언덕에 저 홀로 피었다 지는 백합꽃처럼 오늘따라 지나간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이 가슴에 파고든다. 청춘 시절에 소박하게 피었던 백합꽃은 지금 어디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인생의 사연이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