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커피를 한잔 마신다. 아침에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 마시면 출근하던 부산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참 좋다. 나는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리며 마시는 커피의 진한 향기를 좋아한다. 이 시간은 삶에 여유로움과 하루라는 세월의 단위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차를 마시는 것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직장에서 마시면 삶의 소중함이, 집에서 청소하고 난 뒤 마시면 상쾌함이, DJ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찻집에서 마시면 낭만과 젊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처럼 봄비가 내린 날에 커피를 마시면 솜사탕 같은 삶을 꿈꾸게 한다. 삶은 일상의 순간순간을 묶음으로 이어가는 집합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이란 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란 순간순간에 충실하면서 시간을 따라 느낌을 즐기고 명상하며 다듬어가는 것이다.
더불어 시간이란 매듭에 마음을 얹어 살아가는 것이 향기로운 삶이다. 매일 찰나와 같은 선택과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마음의 여유와 삶의 향기를 잔잔하게 꽃 피우면 진한 커피 같은 사람이 된다.
직장에 출근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어간다. 나는 미지근한 것보다 혀를 댈 수 없을 정도의 따뜻한 커피가 좋다.
미지근한 커피는 마음을 흐리게 하지만, 따뜻한 커피는 마음을 뜨겁게 달구며 삶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나는 이런 삶이 좋다. 커피 한잔에 마음을 달래고 작은 행복에 만족해하는 삶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나는 하루에 커피를 한 잔만 마신다. 그것도 출근하자마자 마셔야 느낌이 오래간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퇴근 후 잠자리가 불편하고, 일하는 도중에 마시면 아침에 마시는 커피처럼 진실한 맛을 느낄 수 없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창밖을 보니 대지에 물기를 머금도록 지난밤에 봄비가 내렸다. 아주 진한 봄비가 내렸다. 이런 봄비가 내린 날에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달구어진다.
봄비가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넣어 주었듯이 따뜻한 커피는 인생에 진한 향기를 가슴에 느끼도록 촉각을 작동시킨다. 한잔의 커피로 삶을 노래하는 것처럼 삶도 커피의 짙음처럼 진한 향기를 피웠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나에게 쓴 커피 한 잔 사주지 않았다고. 인생이란 고독한 길에 누가 커피를 사줄까.
인생이란 고독한 길에는 기나긴 기다림만 있을 뿐. 그 길에는 나를 반기는 것은 없고 늘 쓰디쓴 고달픔과 괴로움과 실패라는 단어만을 훈장처럼 남겼다.
어젯밤에 내린 봄비의 흔적을 바라보니 가버린 옛사랑의 추억이 떠오른다. 노란 개나리꽃과 분홍의 진달래가 아름답게 핀 산길을 봄비를 맞아가며 걷자던 첫사랑의 연인.
이제는 가버린 옛 시절이 되었지만, 서툴게 좋아하고 만나던 풋풋한 그 시절의 아스라한 모습이 떠오른다. 난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그립다.
지금처럼 살아가야 할 삶의 의무도, 어깨에 딸린 가족도, 나를 걱정하는 사람도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비는 옛 추억과 옛사랑을 그리게 하는 상념의 빗방울로 다가온다.
오늘은 출근길에 아내를 태우고 직장 근처까지 동행했다. 아내를 차에 태우고 오는데 새삼 아내와 함께한 지난 시절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차가 없던 시절 아이를 가슴에 안고 손에 기저귀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고 여행지를 돌아다니던 시절의 옅은 흔적이 연민처럼 생각난다.
삶은 지나면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추억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아내는 치아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손을 봐야 한다.
봄비가 내린 날에 병원에 가는 아내를 바라보자 갑자기 삶의 분주했던 날과 고생했던 일과 즐거웠던 날이 희미하게 교차한다.
아내와 헤어지며 치료 잘 받고 오라고 위로했지만, 왠지 걱정이 앞선다. 사람은 병원에 가면 환자가 되고 병원이란 말만 들어도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데 초조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아내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내심 여린 가슴의 떨리는 감정을 숨기고 헤어졌다. 사랑이란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밖으로 드러내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고 그 사람을 위로해 주고 걱정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난밤에 소리 없이 내린 봄비의 흔적처럼….
세월이 깊어갈수록 몸에 대한 걱정이 하나둘씩 늘어만 간다. 겉으로 보기에 몸은 정상인 것 같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무너져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몸이 평생토록 튼튼하게 유지될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점점 무너져간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앞선다. 몸이 이곳저곳 무너져 가는 소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이 들려오는 듯하다.
내 몸의 상태를 젊은 시절로 되돌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일은 내 영역의 일이 아니다. 직장에 출근해서 마신 한 잔의 뜨거운 커피처럼 남은 삶도 여유롭고 평화롭게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비록 몸은 서서히 무너져가지만, 오늘 아침에 마신 뜨거운 커피 한 잔의 느낌처럼 남은 삶도 멋지게 즐기면서 가버린 시간을 되돌아보며 가슴 아파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