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여는 노래

by 이상역

몇 해 전 평창동계올림픽 전후로 남과 북에서 공연예술단이 오고 갔다. 그 과정에서 남한의 한 가수가 북한에 가서 부른 ‘뒤늦은 후회’란 노래가 누군가의 요청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창밖에 내리는 빗물 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으니까요

거리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슬픔이 밀려와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살며시 눈 감았지요


계절은 소리 없이 가구요 사랑도 떠나갔어요

외로운 나에겐 아무것도 남은 게 없구요

순간에 잊혀져 갈 사랑이라면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뒤늦은 후회’란 노래의 가사에는 사랑을 잃고 난 뒤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현이와 덕이’란 가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뒤늦게 그들이 부른 노래가 남과 북에서 다시 역주행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노래를 배우는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나도 남한 공연단의 뒷이야기를 듣고 ‘뒤늦은 후회’가 어떤 노래일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들어보았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애처로운 목소리와 음악이 가슴에 ‘쿵’하고 부딪치며 다가왔다. 노래를 듣고 곧바로 가슴이 뛰면서 손가락이 바빠졌다.


나는 볼펜을 들고 빈 종이에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몇 번을 노래까지 부르면서 가사를 적었다. 그리고는 노래를 적은 종이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어 불렀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일주일쯤 되어가자 노래 가사를 보지 않고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도 김범용의 ‘바람바람바람’이나 진성의 ‘안동역에서’, 우연이의 ‘우연히’ 같은 노래도 바로 배워서 부른 적이 있다.


사람마다 노래를 배우는 동기는 다양하다. 노래를 배우게 되는 것도 가수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배경음악과 가사가 심장에 꽂혀야 한다. 내게도 ‘뒤늦은 후회’란 노래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소리로 들려왔다.


누군가가 좋아하고 애창한 곡이라서 노래가 좋다기보다 노래를 부른 가수의 목소리와 배경음악과 가사가 심장을 파고들듯이 깊숙하게 들어왔다.


나중에는 ‘뒤늦은 후회’란 노래를 핸드폰에 저장해 아침 출근길이나 저녁 퇴근길에 틀고 따라 불렀다. 노래를 자주 듣고 부르다 보니 노래에 마음이 점점 빠져들었다.


그렇게 가슴의 심장이 뛰도록 다가온 노래도 몇십 번 부르고 나자 노래에 대한 호기심이 차차 가라앉았다. 노래를 지치도록 부르고 나자 노래의 관심도도 서서히 멀어져 갔다.


지난 시절 노래를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시골에는 라디오가 몇 대밖에 없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노래를 배워야 했다.


지금은 TV나 인터넷이 대중화되어 가수의 얼굴을 수시로 만나고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이전에는 가수의 얼굴은 모른 채 목소리를 통해서만 노래를 배우고 불렀다. 노래 가사를 종이에 적으려면 적어도 대여섯 번은 들어야 한 곡의 가사를 쓸 수 있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시절 라디오 외에 대중가요를 접할 수 있는 계기는 아랫마을에서 열리는 학예회 때다. 학예회는 초등학생을 위한 놀이이지만 찬조 출연으로 마을에서 좀 까분다는 형이 기타를 들고 나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가 유행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랫마을 학예회에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누나가 부른 노래가 떠오른다. 가수 조미미가 부른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라는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를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의 가슴속에 깊게 스며드는 노래를 듣고 배우는 것은 나이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비록 나이가 들어 기억력은 쇠퇴해졌지만, 노래를 듣는 감성은 오히려 풍부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마음에 와닿는 노래가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장년이 되어 노래를 배우는 것이 주책없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와닿는 노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행복인가.


젊은 시절에 느꼈던 감성만은 못하지만 ‘뒤늦은 후회’란 노래를 들으며 배우려니 마음은 한없이 젊어진 기분이다. 오늘도 퇴근길에 ‘뒤늦은 후회’란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가끔 노래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핸드폰에 저장된 노래를 다시 틀고 따라 부르곤 한다.


나이 耳順은 노래를 배울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많이 든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耳順에도 노래를 배울만한 열정과 낭만은 살아있고 즐길 수 있는 나이다.


따스한 봄날에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뒤늦은 후회’를 흥얼거리며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러자 지난 시절 노래를 배우지 못한 뒤늦은 시간이 ‘뒤늦은 후회’란 노래에 실려 다가오는 말랑말랑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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