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빗방울이 순서 없이 흩날리는 칠월의 아침이다. 매일 만나던 관악산은 안개로 산허리만 바라보일 뿐 희뿌연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하루를 무덤덤하게 보내는 것도 팍팍하기만 하다. 내가 왜 많고 많은 직업에서 하필 공직이란 길에 뛰어들어 살아내고 살아왔을까. 공직을 운명처럼 여기고 생을 감내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이란 갈매기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와 달리, 비행(飛行) 그 자체를 꿈꾼 갈매기의 일생을 그린 우화 소설이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다른 갈매기의 따돌림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 갈매기 모습에서 자기완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작가는 갈매기를 통해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삶의 철학적 화두를 던졌다.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먼 미래를 그리며 살아가라는 참뜻이다.
칠월의 빗방울이 거리를 분칠 하는 빗속을 헤치며 달려온 이 아침. 대지를 향해 생명을 내던지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산산이 부서지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다.
연초록이 짙은 초록을 향해 가는 자연의 캔버스. 옅은 안개를 껴안고 짙어가는 초록의 나뭇잎. 계곡의 바람을 타고 이상야릇한 냄새를 풍기는 하얀 밤꽃. 해가 떠오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해넘이를 하는 저녁처럼 주변 사위가 어둡기만 하다.
어제는 비록 인생의 진실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보냈지만, 오늘은 삶에 건실한 의미라도 한 가닥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거리를 나선다.
비가 오는 날은 빗물 소리로 인해 주변 사위가 고요해진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를 고독과 이유 없는 외로움과 유년 시절에 꾸었던 꿈이 되살아난다.
지금쯤 어머니는 시골에서 누구를 기다리며 아침을 보내고 계실까. 고향에도 비가 많이 왔을 텐데. 어머니가 껴안고 사는 논과 밭은 괜찮은 것인지 하는 마음과 걱정이 앞선다.
뒷동산에서 뛰어놀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어머니에게 빈대떡을 만들어 달라던 그리움. 고향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어가며 대청마루에 누워 석가래 숫자를 세어가며 부르던 옛 노랫가락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잊어버린 꿈을 태동시키는 시간으로 작동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꿈을 꾸며 성장한다. 비록 도달할 수 없는 꿈일지라도 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먼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리는 용기를 갖게 한다.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독하게 삶을 비행하는 사람도 있고,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의 무리처럼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소망을 위해 사람은 고독에 기대고 외로움에 의지한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이 겨울날에 덥던 솜이불처럼 따뜻하게 바라보인다. 칠월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는 어머니의 숨결과도 같다.
이런 날은 고향의 뒷동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와 초저녁부터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와 담 너머에서 들려오던 정겨운 다듬이질 소리가 그립기만 하다.
어스름한 저녁에 어미를 찾기 위해 ‘음매’ 하던 송아지의 낭랑한 울음소리. 이제는 기억 저편의 아련한 일이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세월을 태질하듯이 낱알처럼 튀어 오른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높게 나는 조나단 갈매기처럼 나도 높은 꿈을 찾기 위해서는 넓은 세상을 찾아 나서야 한다. 빗물, 안개, 구름, 고향, 어머니. 이들 단어에는 꿈을 태동시키는 그리움이 간직되어 있다.
몸은 하루라는 일상에 매달려 살아가지만 꿈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뚜벅뚜벅 전진해야 한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는 삶과 꿈과 시간이 간직되어 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빗물에 옷이 젖어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몸에 젖은 비를 바라보며 꿈을 꾸는 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