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졸업사진

by 이상역

초등 시절에 공부나 예술에 대한 재능이 없어 상장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저 졸업식 때 받은 빛나는 졸업장이 유일하다.


친구들은 졸업반이 되어서도 틈만 나면 장난을 쳤다. 내 뒤에 앉은 친구는 운전기사가 되겠다며 쉬는 시간마다 침을 튀겨가며 입술로 ‘부릉부릉’하면서 왼손은 운전대를 돌리는 시늉과 오른손과 발은 클러치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며 책상과 의자를 흔들어가며 놀았다.


그리고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차를 운전하듯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면서 양손으로 핸들을 빙빙 돌려가며 운동장을 뛰어나갔다.


정말로 그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에 운전 연습을 그렇게 하더니 운전기사가 되어 먹고 살아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서 먹고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자신이 꿈꾸던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교에서 운전 연습을 열심히 하던 친구는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나는 커서 무엇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요즘은 사람의 지위나 자리를 보고 성공 여부를 평가한다. 나는 이런 평가방식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직업이 어울린 공동체다.


어느 한 사람에 대한 지위나 자리는 다른 사람의 존재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우리 사회에 지위나 자리가 높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다양성이 없는 획일화된 사회다.


누가 잘되고 못되고는 관념의 차이일 뿐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될 수가 없다. 졸업반 시절 담임은 5학년 때 선생님이 그대로 올라왔다. 선생님은 조회 때마다 이를 깨끗이 닦으라는 말을 많이도 하셨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치아 검사를 할 때마다 지적을 받았고 그때마다 친구들과 학교 옆 작은 개울가로 나가 가는 모래로 이를 닦고 들어와 치아 검사를 받곤 했다.


그때부터 치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지금은 어금니를 포함한 몇 개의 치아를 빼고 임플란트로 대체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선생님의 말씀처럼 치아는 정말로 그 어떤 보석보다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반 시절에 학교에 남긴 추억은 친구들과 식목일에 학교 앞 황톳길에 버드나무와 뒷동산에 잣나무를 심은 것이다. 지금도 학교 뒷동산에 잣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그리고 황톳길에 심었던 버드나무는 도로가 확장되면서 사라졌고 뒷동산에 심은 잣나무는 고향을 오고 갈 때마다 바라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무를 심기 위해 삽을 들고 구덩이를 파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선생님은 동화책 읽는 것을 적극 권장했다. 교실 뒤편에는 동화책을 읽은 숫자를 표시하기 위해 커다란 그래프용지를 붙여 놓고 동화책을 읽으면 자신의 이름 위에 한 눈금씩 빨간 색연필을 칠하게 했다.


선생님은 분기별로 빨간색 그래프가 제일 높이 올라간 학생에게 독서상을 주셨다. 마침 짝꿍이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친구가 읽고 나면 그 동화책을 읽고 내 이름 위에 빨간 색연필을 들고 색을 칠했다.


초등 시절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다. 그 시기를 함께 겪으며 성장한 친구와는 스스럼없이 지내게 된다. 초등 시절에는 학교 운동장이 넓게 보였는데 성인이 되어 바라보니 운동장이 아주 작아져 보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운동장 중앙계단에 모여 단체로 졸업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졸업앨범을 만들 것인지 졸업사진만 찍고 말 것인지를 조사했다.


그 조사에서 친구들은 졸업사진만 찍자는 의견이 모아져 졸업앨범을 만들지 못했다. 가정 형평상 졸업앨범을 살만한 친구가 많지 않아 사진만 찍은 것이다.


빛바랜 졸업사진을 들여다보면 앞줄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에 작고 까맣게 그을린 나의 옛 얼굴이 보인다. 그런 얼굴과 모습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진학해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마다 찾아왔다.


초등학교 졸업 전에 상급생과 하급생이 강당에 모여 연습을 몇 번 했다. 졸업식 연습을 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내게 중학교 원서를 써야 하니 아버지를 학교에 모셔 오라고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드렸으나 아버지는 학교에 오시지를 않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시골집에 가정 방문을 오셨다.


지금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데 아버지는 가을걷이 추수를 끝내고 마당에서 추수한 벼를 대문간의 광에 넣기 위해 삼태기로 벼를 옮기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선생님은 졸졸 따라다니면서 “재! 중학교는 보내야 한다며 중학교 원서 마감이 내일인데 어떻게 하시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아버지를 채근하셨다.


아버지는 나중에 "허허허 웃으시더니 그럼 선생님 마음대로 하셔유?”라는 말씀으로 중학교 진학에 대한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중학교 입학은 무시험제라 입학원서만 내면 갈 수 있었다. 삶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는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남긴 발자국은 교정의 이곳저곳에 흔적이 되어 남아 있다.


졸업식 날 고개를 푹 숙이고 흐느껴 울던 여자 친구가 생각난다. 나는 학교를 졸업해서 기분이 마냥 좋은데 그 친구는 왜 울었을까.


뒤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학부모가 되어 큰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더니 졸업식 노래가 아직도 옛날에 우리가 부르던 그대로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라는 노래를 듣게 되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졸업식 노래에 이별하는 감정이 배어있어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그 친구가 울었던 것은 아닐까. 졸업식 노래를 오랜만에 들으니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서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옛날에 흘렸어야 할 눈물을 수십 년이 지나서 흘리는 것을 보면 감정이 둔하긴 둔한가 보다. 졸업식 날 졸업장을 움켜쥐고 교실과 학교 건물을 돌아보고 계단을 내려오자 선생님들과 후배들이 운동장에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으며 환송해 주던 때가 엊그제 같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갈 생각이었다. 철부지 시절의 소견인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라는 세계도 알지 못했고, 중학교에 진학해서 학문을 배워보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학교 공부보다 집 밖에 나가 친구들과 자치기나 구슬치기나 비석치기 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자랐다. 그런 개구쟁이가 마을의 동구 밖을 나가 초등학교를 다닌 것은 세상을 향한 첫출발이 되었다.


가끔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가서 그 시절 친구들의 얼굴을 종종 마주한다. 초등 시절 친구의 얼굴에는 개구쟁이 모습은 사라지고 세월이 할퀴고 간 시간의 상처만 초췌하게 훈장처럼 남아 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풋풋하게 보낸 초등시절이 그립고도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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