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세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간 고향을 오갈 때마다 초등학교를 지나쳤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서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다.
올해는 초등학교 동문 체육행사를 순서에 따라 우리가 주관해서 진행하게 되었다. 동문 체육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함께 졸업한 동창생을 대부분 만날 수 있었다.
초등 동창들의 얼굴을 바라보자 ‘가는 세월이 무섭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동창생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초등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중년이란 나이테를 가슴에 두르고 세월의 언덕을 휘적휘적 넘어가고 있었다. 가수 박인희가 부른 ‘그림자 벗을 삼아 걷는 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지만 마음에 님을 따라가고 있는 나의 길은 꿈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길…’이란 ‘방랑자’ 노래가 생각난다.
우리 세대라면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씀바귀를 캐거나 밭에 가서 김을 매거나 어깨에 지게를 걸머지고 작대기로 지게 발을 두드려 가며 부른 노래다.
'방랑자’의 노랫말처럼 그림자를 벗 삼아 터벅터벅 인생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나이는 중년의 문턱을 휘적휘적 넘어간다.
삶이란 어떤 물줄기를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일까. 머릿속에는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미래의 시간이 중첩되어 밀려온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校舍는 예전보다 높아졌고 초등시절 그렇게 넓게만 바라보이던 운동장엔 플라타너스가 우둠지를 싹둑 잘린 채 우두커니 서 있다.
개구쟁이가 무시로 드나들던 울타리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변했다.
중년의 나이테를 몸에 두르고 초등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옛 그림자도 함께 따라왔다. 초등 시절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그립고 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 분도 만나지를 못했다. 한 분은 돌아가셨고, 한 분은 자제분 결혼으로 나머지 한 분은 거동이 불편해서 오시지를 못했다. .
담임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눈물과 함께 세월이 너무 야속하게 다가왔다. 그 시절 선생님은 우리와 손가락을 걸고 했던 약속은 영원히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졸업식 날 선생님은 친구들을 데리고 교정을 한 바퀴 빙 돌러보고 난 뒤 교실 앞 소나무 앞에 모아 놓고 “우리 이다음에 성인이 되어 소나무 앞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약속하셨다.
그날 선생님과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선생님과 후배들의 따뜻한 박수를 받으며 운동장을 나왔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른 소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동문 체육행사를 진행하는 것보다 동창들의 얼굴이 더 보고 싶었다.
동문 체육행사를 주관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말들도 많았다. 나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체육대회 찬조금을 보탰다.
동문대회 날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동창생을 만났다. 남자 친구들은 얼굴이 약간 변했어도 그럭저럭 알아보겠는데, 여자 친구들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얼굴도 있었다.
동창들을 만나서 반갑다며 “친구야!” 하며 학창 시절 부르던 이름도 불러보았다. 동창들의 얼굴에는 그간 살아온 삶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동창들과 나 사이에는 세월의 강이 놓여 있었다.
비록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동창들과의 만남은 짧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동문 체육행사를 끝내고 동창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데 운동장을 서성이며 만났던 친구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삶에서 초등 시절은 돌아보면 볼수록 그립고 되돌아가고 싶은 청라언덕이다. 성암초등학교 24회 동창들이여! 그대들의 삶에 영광과 함께 영원히 빛날 지어다.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