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일에 거실에 앉아 TV를 시청하려는데 아내가 아이들이 다음 주부터 시험이니 당분간 TV 시청은 자제하란다. TV를 끄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초등 4학년인 막내가 방문을 열고 나와 수학 문제를 채점해 달란다.
수학의 그래프에 관한 문제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는 기본적인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나는 첫 페이지부터 틀린 것에 대하여 이것저것 지적을 해주고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서 풀어오라고 했다.
얼마 후 아이는 문제를 풀고 다시 가져왔지만 아이는 문제도 제대로 읽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풀어 온 것 같았다.
아이에게 “왜! 문제도 똑바로 읽지 않고 풀어 오느냐?”, “무슨 생각을 하면서 문제를 읽었느냐?”라고 지적하자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다. 그러더니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이에게 울지 말라하고 문제를 다시 읽고 풀어서 가져오라고 했다. 나의 채근에 아이는 울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아이의 울음에 약하다. 여린 가슴에 서러움을 준 것 같아 아내에게 한번 가보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내 되돌아왔다. 아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좀 기다렸다 아이의 방 앞에 가서 문을 열라고 했다. 그 소리에 아이는 기가 죽었는지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아이는 아까보다 더 소리 내어 울었다.
아이에게 물을 한 잔 마시게 하고 세수를 시키고 의자에 앉게 했다. 아이에게 “아빠 말이 그렇게 서운하냐?” 네가 미워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수학은 문제를 똑바로 읽고 풀어야 한다. 네가 풀기 어려운 문제는 언니에게 물어서 하라는 등 십여 분에 걸쳐 다독이며 달래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의 서러움도 누그러졌다.
자신의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참 어려운 문제다. 자녀교육은 아이의 입장과 지식의 수준을 고려해야 하는데 아이가 아닌 본인의 위치에서 가르치게 된다. 아이가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윽박지르게 된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넌 누구를 닮아 공부를 못하느냐?”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 말이 나온 순간부터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멀어지고 부부싸움으로 변질된다.
부부간에 “누가 아이를 낳으라고 했느냐?”, “왜! 씨를 주었느냐?”, “누구의 머리를 닮았다.”, “누구 집안의 머리가 더 나쁘다”라는 치졸하고 옹졸한 말을 주고받으며 싸움은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휴일 날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내 짜증으로 아이도 울리고 집안을 소란스럽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아이에게 차근차근 이치를 따져가며 바르게 가르쳐주는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자식의 못난 점이 드러나면 바로 공격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아내와 한판하고 나자 내 성질만 있는 대로 부린 것 같다. 아이를 집에서 가르치면 솔직히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 아이의 입장과 배움의 단계를 고려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내 눈높이 수준과 입장만 생각하게 된다.
아이도 내 수준의 사고체계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교육을 방해하는 것 같다. 공부를 끝내고 나온 막내는 좀 전의 일을 잊은 듯이 웃으면서 “아빠!” 하면서 곁으로 다가왔다.
자식이 무엇인지 공부가 무엇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음부터는 자녀교육에 나서지 말아야겠다. 괜스레 아이의 꿈을 접게 할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아이도 자기가 가고자 하는 꿈과 희망이 있을 터인데 내가 끼어들어 방해나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와 같은 시기에 공부를 잘했을까? 물론 혼나고 꾸지람을 수시로 들었다.
나도 아버지에게 똑같이 당했다. 단지 남자라고 울지만 않았을 뿐이다.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혼을 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나중에 그건 이렇다는 이치를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없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분풀이가 은연중에 내 안에 잠재해 있다가 아이에게 툭 튀어나왔는지도 모른다.
아이도 내가 한 말을 되새기고 있다가 나중에 자신의 자식에게 똑같이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내가 아버지에게 당한 서러움을 아이에게 전가한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앞으로 아이가 공부하면 그냥 좋다고만 하고 칭찬만 해야겠다. 자식과 척지면 자꾸만 나를 피하게 될 텐데. 아이가 내게 부담 없이 다가오게 하는 것도 자녀교육이 아닐까?
어차피 세상은 자신이 부딪치며 해결해야 할 삶인데 내가 나선들 무엇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비록 수학 문제 하나 풀지 못한다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해석하지 못한다고 달라질 세상도 아니지 않던가.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가르치려 해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인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아이를 불러 세워 가르쳐 본들 아이의 꿈과 희망을 깨트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자녀교육에 나서면 마음은 편협하고 속 좁은 방향으로 변하는 심정을 아이는 알고 있을까?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면서 지나간 시절의 아빠에 대한 심정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녀교육에 왕도는 없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일도 어렵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오늘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 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