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글이란 신세계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 글을 통해 좋은 인연도 만들고 새로운 인생행로를 열고 싶었다.
글은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글을 쓸 때마다 내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없어 고민이다.
아직은 글쓰기에 대한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써보려고 자리에 앉으면 머릿속의 생각이 사라지면서 번번이 헛다리만 짚는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감정을 정리해서 써보려고 마음을 먹으면 길이 열리지 않아 답답하다. 글 쓰는 재주가 모자라는 것인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날은 마음을 위로할 겸 천변으로 산책을 나가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려면 마음이 좁아지면서 생각도 사라진다.
다른 것을 할 때는 생각이 부유하다가 막상 자리에 앉아 끄적이려면 가슴이 막히고 생각했던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살아가는 날에 대하여 틈틈이 기록해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는데 이마저도 접어야 할 것인지 고민이다.
책상에 앉아 끄적이는 시간이 깊어갈수록 기억은 망각의 늪으로 빠져만 든다. 그러다 끄적이던 글을 출력해서 읽어보면 가관이다. 도대체 무엇을 쓴 것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치하기 짝이 없다.
글을 읽으면서 이런 것도 글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나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지만, 나의 삶을 표현해보고 싶은데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아서 고민이다.
그런 생각에 젖어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전에 써 놓은 파일을 뒤적이게 된다. 하나의 글제를 선택해서 다듬기를 하다 보면 글 쓰는 일에 저절로 깊이 빠져 든다.
글은 마음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도구다. 글도 생각에 너무 좇아서 쓰다 보면 감정은 사라지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다. 글은 마음과 감정을 잘 다스려서 써야 하는데 마음에 번민이나 다른 생각이 들어서면 글이 나아갈 방향을 잃는다.
자신의 마음을 한 생각에 집중하여 표현하는 것이 글이다. 글에 자신의 마음이 아닌 타인의 마음이 바탕이 되면 그 글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되고 만다.
글쓰기도 따지고 보면 고단한 수행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허공을 가르듯이 생각을 밝혀 글을 쓰려면 맑고 밝은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글쓰기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끝없이 이어 가야 한다. 글의 이어짐은 마음의 연결이고 끊임없이 분출하는 감정의 잔잔한 표출이다. 그 표출을 부드럽고 굴곡진 길로 안내하는 것이 마음이다.
길이 서로 다른 길을 포용하듯이 글도 마음의 샛길을 하나로 갈 수 있도록 포용하고 이어준다. 글의 생명은 이어 짐이고 그 이어짐에 감정과 생각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실타래와 같이 여백에 풀어내야 한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어느 누가 나를 대신하여 마음을 전해주고 글로 표현해 줄 수 있을까.
나이 들어 자식에게 편지 한 장 아내에게 엽서 한 장 제대로 써서 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글은 평소 생각하고 느끼고 만지고 눈으로 보았던 것을 표출하고 연결 짓는 기호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걸러진 정서를 만난다. 지난 몇 년간 책을 읽으면서 만났던 아름다운 글과 잊지 못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살아가는 날에 대하여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 자꾸만 생각이 아무것도 없는 빈 상태로 돌아가는 마음의 공허가 아쉬울 뿐이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글을 써보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과 감정이 차오르지 않아 고민인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싶어도 文이라는 들녘에 나서지 못하는 서운함.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위로하고 나를 다독여 주는 세상과의 대화이자 만남이다.
계절은 자라서 곁으로 다가오는데 마음은 점점 추운 벌판을 향해 나서는 기분이다. 봄의 상징인 나뭇가지의 움틈처럼 내 마음의 움틈이 자라기를 기다려야겠다.
그리고 봄날의 따듯한 기운을 받아 자라는 푸른 새싹처럼 새로운 나와 푸른 만남을 기다려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글을 써보고자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