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여행

by 이상역

언젠가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4주간 관리자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그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한 교수가 자신의 인생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그 과제를 작성하면서 처음으로 그간 인생을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인생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애서 스스로 다짐했던 약속이 떠오른다.


과제에는 인생에 대한 많은 것을 담고 있었지만 그중에 직장을 퇴직하기 전까지 수필집 몇 권은 쓰겠다고 한 것이다. 그 약속을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고, 일부는 달성했다.


글을 멋스럽게 쓰는 재주는 없지만, 직장을 퇴직하면 글을 써보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이다. 나중에 글쓰기 동호회에 가입해서 문우들과 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직장에서 물러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취미 생활 하나는 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쓴 글과 새로 쓴 글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서너 권의 책으로 묶어 보았다.


글을 모아 컴퓨터 파일에 모아 보니 삶이 묵직해지고 생각이 단단해졌다. 직장에 다니면서 책을 읽는 틈틈이 글을 썼는데 그 양이 꽤 된다.


지금에 와서 다시 글을 읽어 보니 삶의 밑뿌리와 둥치가 풍성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몇 권의 글을 썼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글을 쓰는 솜씨랄까 글의 시작과 끝을 맺는 기술이 진일보한 느낌이 든다.


특히 공로연수를 앞둔 올해는 글쓰기가 더욱 활발해졌다. 꽃이 피는 계절에 한 권 분량 정도의 글을 썼다. 물론 글을 읽어보면 이전보다 감수성이 다소 떨어진 느낌은 들지만 이제야 글쓰기에 대한 감을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최근에 생활의 다양한 것을 접하면서 마음이 풍성해졌다. 세종에서 서울과 고향을 주말마다 교대로 오고 가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도 발견하고, 지난 시절의 것을 다시 만나면서 잊어버린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직장이 과천에 그대로 있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눈으로 바라보는 오감을 통해 닫힌 과거와 열린 현재를 누리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아직 글쓰기에 대한 솜씨가 부족하지만 천천히 진중하게 써볼 계획이다. 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다. 글도 생활의 규칙처럼 시간을 정하고 여유롭게 접근해야 한다.


직장을 퇴직하면 조용한 곳에 가서 글쓰기에 전념해보고 싶다. 나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든 알려지지 않든 오롯이 글쓰기에 침잠해서 빠져 들고 싶다.


글쓰기도 자주 연습을 하다 보면 나아지고 남들이 읽을 만한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간 써 놓은 글을 모아보니 십여 년은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물론 글 쓰는 기간이 오래되었다고 잘 쓰는 것은 아니다. 글도 고요한 상태에서 마음을 집중하고 생각을 바로잡아야 길이 열린다.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몸으로 체험한 글을 써보고 싶다.


글쓰기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향의 보탑사 같은 한적한 곳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산사를 한 바퀴 돌아보고 만뢰산 경치도 구경하고 산봉우리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느낀 생각과 감상을 글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나 자신과 대면하고 싶어서다. 물론 이를 실천하려면 장애물도 있겠지만, 나중에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볼 계획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글을 쓴 기간은 꽤 되었지만, 그간 다른 직장에 파견근무를 나가고 승진과 업무 등으로 몇 년은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뒤늦게 업무의 강도가 높지 않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금처럼 아침에 일정한 시간 글쓰기를 습관화해서 퇴직 후에도 유지해 볼 생각이다.


공직에 근무하면서 써보지 못한 글을 퇴직 후에는 마음껏 써보고 싶다. 내가 쓰고 싶은 분야는 산문 분야다. 아름다운 산문은 정제된 마음과 깊은 사고를 통해 나온다.


직장에 근무할 때는 글쓰기에 시간과 장소 등 제약과 한계가 따른다. 직장에서 물러나면 조용한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이지만 자신을 철저히 돌아볼 예정이다. 책도 부지런히 읽고 틈틈이 글도 쓰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돌아보려고 한다.


올해는 누군가가 일을 시켜서 바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바쁘게 보내는 중이다. 하루의 일과를 정해놓고 계획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사월이 가고 계절의 여왕 오월이 다가왔다.


비록 서툰 글이나마 하나둘 쌓여가는 것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든든하다. 무언가를 쓰고 생각하는 일에는 재미가 따른다.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그날그날 일어나는 느낌과 감정은 매양 다르다.


이런 연유로 하루란 일상의 의미를 규정짓고 글로 표현해 보면 날마다 색깔이 달라진다. 작가들은 여행이나 등산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마라톤을 통해 글 소재를 찾는다.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에 대한 삶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다. 나도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아름다운 산문을 위한 문학의 세계로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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