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의 아침

by 이상역

결혼은 새로운 인생의 항로를 여는 출발점이다. 홀로 생활하다 연인을 만나 결혼하면 가족이란 인연을 고리로 두 가족이 연결되고 사회적 관계의 틀에 묶이게 되면서 행동에 제한을 받는다.


서울 성내동 여동생네 집에서 김포공항으로 출퇴근하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공항 옆에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경험한 자취생활은 재수와 대학과 직장생활까지 이어진 것이다.


김포공항은 지리적으로 공항동에 속해 있다. 공항동이란 명칭이 먼저 생긴 것인지 김포공항이 들어서면서 공항동이 생겨난 것인지는 잘 모른다.


공항동에 방 하나를 얻어 자취생활을 하는데 주인아주머니도 좋은 분이고 아저씨도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집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며 생활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 세계가 끝없이 펼쳐졌다.


공항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곳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푸른 하늘을 향해 이륙할 때 뿌리는 희뿌연 연기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공항은 한강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안개가 자주 꼈다. 어떤 날은 일 미터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조차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공항은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눈물과 환희가 교차하는 곳이다.


나는 김포공항에 근무하다 결혼했다. 결혼 전에 어쩌다 일이 생겨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은 그때마다 선을 보라고 했다. 나와는 사전에 약속을 하지 않고 장소를 정해 놓고 선을 보고 오라는 날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공항동에 자취하던 이웃 아주머니를 통해서도 선을 몇 번 보았다. 당시 공항에 근무하면서 시험을 다시 보는 문제 등으로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결혼은 가능하면 늦게 하려고 마음을 정했었다.


그동안 맞선을 통해 아가씨를 몇 번 만났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방랑이란 기질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도 쉽게 정이 가지 않았고, 한 사람과 오래도록 진득하니 사귀어 보지를 못했다.


이런 마음을 공항이란 장소가 더 자극하고 부채질했다. 공항의 화려한 조명과 무한대로 열린 하늘을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면 현실보다 이상을 더욱 동경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맞선으로 아가씨를 만나고 헤어지는 생활이 반복되었고 결혼을 서둘러서야 한다는 마음도 갖지를 않았다.


그러다 부모님이 어느 날 용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그날은 공항동 자취 집에서 쉬고 있는 날이라 전화를 받고 준비 없이 부랴부랴 용산에 나가서 부모님을 만났다.


용산에서 부모님을 만나자 아버지는 이전에 고향에서 읍내 아저씨가 말한 아가씨와 선을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용산에 오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으면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나왔을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하게 부모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맞선을 겸해서 보았다. 그렇게 사전에 준비 없이 식당에서 아가씨를 만나 식사하고 둘이 식당 근처 다방으로 차를 마시러 갔다.


아가씨와 다방에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나는 것은 없다. 갑자기 맞선을 봐서 정신이 없었고 맞선 자리인지 식사하는 자리인지 어중간한 상태였다.


둘이 다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식당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은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시고, 아가씨 부모님도 아가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셨다.


맞선 아닌 맞선을 용산에서 보고 며칠 지나 다시 아가씨를 만나 남산에 올라가 구경하고 시내로 내려와 극장에 가서 영화도 관람했다. 아가씨와 그렇게 몇 번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삶의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와 데이트를 시작하고 두어 달쯤 되었을 때 영등포 호텔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청혼을 하게 되었고 그 청혼을 아가씨가 받아들여 결혼한 사람이 지금의 아내다.


그 후 결혼식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고향의 문화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삶은 순서가 없는 것 같다. 결혼식을 마치고 제주로 신혼여행을 3박 4일 간 신혼여행을 가서 사진으로 많은 추억을 남겼다.


제주에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와 장인과 장모님께 인사를 했다. 결혼 후 신혼 기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보금자리인 광명시 철산동으로 돌아왔다.


광명시 철산동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은 그해 8월에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고비를 맞았다. 나는 아내에게 “직급을 높여 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겠다.”라고 했다.


나는 출입국관리직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장인어른은 총무처 인사국장에게 인사의 부당성을 말했는지 김포출입국사무소에 출근했더니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고 그 일로 사무실이 어수선했다.


결혼하기 전 공항에서 교육을 받을 때 근무하고 싶은 곳을 적어내라기에 몇 곳을 적어 제출한 적이 있다. 그때 기재한 것을 근거로 제주공항으로 발령을 냈다는 것이다.


현재의 변화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전에 희망했다는 것을 핑계로 발령을 낸 것이다. 인사에 불복해서 소청이라도 내고 싶었지만, 이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주공항에 출근해서 사표를 내기로 결정하고 인사발령을 수용하고 하루 전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서 동료들과 하룻밤을 새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서운한 감정도 수그러들고 부조리한 세상도 알게 되었다. 제주에 가서 잘 다니라며 장인어른은 비행기 표까지 끊어주셨다.


어차피 내가 가야 할 길의 주사위는 던져졌고 마음을 단단히 다져 잡았다. 제주에 도착해서 이튿날 제주출입국사무소에 사표를 제출하고 광명시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간 틈틈이 보아왔던 책을 들추며 다시 시험을 준비했다. 지금에 와서 세월을 돌아보면 삶에서 나를 시험했던 시험이란 제도가 나를 막다른 길에서 구원해 준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담보할 수 없는 아득한 터널에서 고비마다 나를 꺼내주고 구원해 준 것은 시험이었다. 시험이란 제도가 수렁에 빠진 마음을 위로해 주고 때로는 터널에 갇힌 마음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해 준 파랑새였다.


삶에서 시험이란 언덕은 허물어져 가는 자존심을 지켜 주고 자존감을 하나하나 되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밝혀준 등불이 되었고 지금도 그 빛의 서광을 따라 내일을 위한 소망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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