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진 백사천

by 이상역

진천이란 지명이 언제부터 유래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진천(鎭川)은 마한의 옛 땅이다. 삼국시대에 진천은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의 접경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삼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진천은 삼국 간의 영토 전쟁에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나라와 지배자가 바뀌는 지역이다. 진천이 중요한 요새지가 된 것이 아니라 지리적 위치가 삼국 간의 경계에 위치해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고구려에서 백제로 백제에서 다시 신라로 바뀌었다.


백사천은 백곡저수지에서 시작해서 진천 읍내를 관통해서 흘러가는 제법 큰 시냇물이다. 백사천은 진천의 너른 들판을 지나 미호천에 합류하고 세종 연기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물줄기다.


진천중학교 교가에도 ‘백사천 긴 내처럼 끊임이 없이 반만년 문화역사 날로 세우고….’라고 첫머리에 나온다. 이 물줄기의 근원은 백곡저수지다.


백곡저수지는 비가 올 때 저수지 수위가 올라가면 수위 조절을 위해 물을 방류할 때 일어나는 물보라로 유명했다. 물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 저수지는 진천에 소재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봄이나 가을 소풍 때 단골로 찾아갔다.


중학교 졸업반에 올라가자 수업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에 집중했다. 청주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학교에서는 청주고등학교 진학률을 높이려고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을 모아 밤늦게까지 공부시켰다.


아울러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체벌이나 기합이 일절 사라졌다. 우리는 단체로 기합이나 체벌도 받고 선배에게 매도 많이 맞았다. 그러던 것이 하급생을 대상으로 한 체벌이나 기합이 금지되었다.


학교 선생님은 오로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할 것을 종용했다.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제일 먼저 반을 고등학교에 진학하느냐 마느냐를 기준으로 반을 나누었다.


진학반은 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반이고, 비진학 반은 가정 사정이나 통학 사정으로 진학반에 갈 수 없는 학생을 모아 비진학반으로 편성했다.


진학반은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저녁 10시에 하교했다. 저녁 10시에 공부가 끝나면 진천에서 청주나 천안으로 가는 버스가 모두 끊긴다. 그렇다고 매일 택시를 타고 중학교를 통학할 수도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처럼 읍내에 방을 얻어 자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수도 없어 나는 비진학 반을 지원했다.


비진학 반은 정규수업은 똑같이 진행하고 수업시간이 끝나면 하교가 가능했다. 따라서 수업이 끝나면 통학차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매월 모의고사를 실시하고 그 모의고사를 본 것을 평균하여 청주 인문계 고등학교의 진학 여부를 결정했다. 매월 치르는 모의고사 성적에 친구들은 일희일비했다.


선생님도 모의고사 성적이 나쁘면 다음 모의고사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학생들에게 채찍을 가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모의고사 성적이 청주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기에는 약간 모자랐다.


수학과 국어와 영어 과목은 그런대로 잘했다. 특히 국어 과목은 선생님이 수업하기 전에 배울 부분의 요점 정리를 해 온 것을 발표시켰다. 학생이 집에서 예습을 해왔는가에 대한 일종의 테스트였다.


선생님은 해병대 출신으로 좀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가 종종 양손으로 바지춤을 움켜쥐고 바짝 당겨 올리며 헛기침과 동시에 한쪽 입술을 쭉쭉 빠는 행동을 했다.


친구들은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국어 선생님은 학생의 요점정리를 듣고 참고서를 베껴오거나 내용이 불성실하면 예습을 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초리로 손바닥을 다섯 대씩 때렸다.


나는 국어 선생님에게 맞아 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발표 자료를 준비를 잘한 적도 없다. 참고서 요약문에 내가 생각한 것을 첨가해서 발표하면 선생님은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내가 발표 자료를 잘 준비해 간 것이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이 괜찮다 보니 잘하는 학생으로 여겼던 것 같다.


국어 선생님은 운동장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공을 찰 때도 군대식이었다. 군대식이란 공을 잘 차는 것이 아니라 군대 시절의 행동을 그대로 했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공이 자기 앞으로 굴러오면 소리만 지를 뿐 공을 제대로 차지 못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공을 몰고 뛰어가면 소리만 크게 지르며 따라갈 뿐 공을 빼앗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배꼽을 잡고 웃었다.


당시 반 친구들은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수학 선생님도 수업 시간마다 칠판에 문제를 적어 놓고 당일 날짜나 아니면 줄 단위로 학생을 불러내어 풀게 했다.


그날 제시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수학 선생님에게도 손바닥을 회초리로 5대씩 맞았다. 나는 문제를 풀지 못해 맞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문제를 풀어 맞지 않았다. 수학은 재미있고 어느 정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월 치르는 모의고사 수학 성적은 잘 나왔고 가끔은 선생님이 제시한 문제를 풀면 칭찬도 들었다. 나는 인문 분야 과목의 성적은 괜찮은데 물상이나 생물 등 과학 분야 과목은 일정한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달마다 모의고사를 치르며 겨울이 다가오자 고등학교 원서를 쓸 때가 다가왔다. 어느 날인가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학부모 면담이 있으니 아버지를 학교에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진학 문제로 학교에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는 끝내 농사일이 바빠서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학교에 오시면 청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려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끝내 고등학교 원서 마감일까지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선생님은 진천에 소재한 고등학교 원서를 써주셨다. 선생님이 내게 청주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으셨다면 나는 떨어져도 좋으니 원서를 써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 시절엔 왜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진학에 대한 욕심도 청주로 진학하겠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날 시험을 보고 고향 집에 도착하자 형이 건넌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형은 라디오에서 발표된 정답지를 들고 내가 갖고 온 시험지에 표시한 성적을 맞추어 보았다.


그리고는 이 점수면 청주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도 남을 점수대란다.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다. 청주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중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고 교정을 나왔다.


내 인생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나의 운명을 걸고 배움이란 시간 앞에 진지하고 고독하게 마주하고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배움에 대한 나의 능력의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다. 무슨 과목을 좋아하고 무슨 과목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싫어한 과목은 과연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인지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많다. 학창 시절에 책도 많이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인생에 대한 많은 것을 물어보고 배우라는 말을 이곳에 남겨둔다.

keyword
이전 12화아련한 배움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