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삼각지

by 이상역

시골 촌놈이 공직에 뜻을 두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고 직장의 인사로 사표를 내고 다시 공부해서 총무처 7급 행정직 시험에 합격했다.


이듬해 국방부 발령이 날 때까지 몇 개월 공백 기간이 생겨 서울신문사에서 기업의 결산자료인 재무제표 오탈자를 수정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재무제표는 계정을 한자로 표시해서 한문을 좀 아는 사람을 뽑아 작업을 시켰다.


아르바이트 작업은 신문사 편집실 바로 옆에서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문사 편집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신문사 편집실은 매일 같이 마감을 위해 전쟁을 치르는 말 그대로 피 튀기는 현장이다.


마감이란 신문 편집을 마치고 곧바로 인쇄에 들어가는 시간을 말한다. 신문은 지방에 배포하는 지방용과 수도권에 배포하는 수도권용으로 나누어 인쇄했다. 결과적으로 신문의 마감 시간도 지방용과 수도권용이 다르고 게재 내용도 지방용과 수도권용이 조금은 달랐다.


편집 마감은 인쇄 작업에 들어가는 최종 시간이다. 그에 따라 마감 작업은 글자 하나 단어 하나가 생명이다. 편집실은 신문사에서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마감시간이 되면 팀장 주도하에 서너 명이 모여 앉아 작업하는데 분위기가 살벌했다. 신문에 싣는 내용은 기자들이 작성하고 편집은 기사를 일정한 틀에 맞추어 내용이 들어가도록 내용을 축약하고 제목을 뽑아내고 강조할 부분이나 그림 배치 등을 작업하는 종합예술이다.


신문사 편집실 옆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 국방부에서 발령이 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봄이 되자 국방부로 출근하라는 인사 명령을 받고 출근길에 나섰다.


처갓집에서 출근하기 위해 사당역으로 걸어가면서 지난 삶을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직을 그만두려고 제주공항에 가서 사표를 내고 광명시로 올라와 신혼집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하다 경기도 지방직 7급 행정직 시험에서 합격하고 전입 기간 미달로 불합격했다.


그렇게 다시 공부하다 충북도청에서 설립한 충북경제연구소 사무직 시험에 합격해서 충북도청 옆에서 근무하다 이듬해 봄 총무처 7급 행정직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다시 사표를 내고 올라왔다.


사당역에서 전철 4호선을 타고 삼각지역에서 내려 국방부 청사를 향해 걸어가는데 머릿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강물의 모래가 이리저리 떠돌다가 상처를 입고 바다와 만나는 삼각지에 모이듯이 인생도 이것저것 경험하다 인생이란 삼각지에 모이는 것이 아닐까.


모래나 사람이나 삶의 행로는 같다지만 모래보다 더 많은 길을 에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올라와 성내동 동생네 집에서 김포공항에 출퇴근하다 결혼 후 다시 용산으로 삶의 방향이 틀어지자 자부심이 생겼다.


총무처 시험에 합격하고 국방부로 배정을 받자 장인어른은 국방부에 아는 분이 있다며 그분이 근무하는 곳을 희망하는 부서로 써내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국방부가 어디에 있는지 그곳이 공무원이 근무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국방부는 재정국 원가관리과로 발령을 냈다. 인사발령이 나기 전에 재정국의 모 사무관이 점심을 같이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대방동 식당에서 재정국 직원을 만나 식사하면서 국방부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이며 앞으로 어떤 업무를 맡게 될 것이란 말을 전해 들었다.


그날 국방부 직원과 식사하면서 중앙부처는 그래도 사람 대접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받았지만, 발령 전에 미리 식사하자고 연락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국방부의 근무 분위기를 전해준 것이 고마웠다. 공직에 처음 출근했던 고향의 읍사무소와 두 번째인 법무부 김포출입국사무소에 출근했던 경력을 합치면 공무원이란 간판을 달고 국방부는 세 번째 출근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머리가 좋아서 아니면 공부를 잘해서 공직을 두 번씩이나 사표를 내고 다시 시험에 합격한 연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시험이 아니면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없었고 사표를 내고 나면 불확실한 미래가 가슴에 밀려와 오롯이 공부에만 전념하고 매달렸다.


뒤늦게 공무원이란 꼬리표를 달고 국방부로 출근하자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용산의 삼각지역에서 국방부를 찾아가는 길목엔 허름한 음식점들이 자리해 있었다.


삼각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국방부 정문에 도착하자 군인이 직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국방부의 첫인상은 왠지 군대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지금까지 공직에 근무하면서 군인이 안내하는 곳은 처음이다. 국방부는 첫날부터 좀 낯설게 다가왔다. 국방부 총무과에서 인사 발령장을 받아 들고 본관 뒤 별관에 자리한 사무실을 찾아갔다.


국방부 원가관리과에 근무하라는 발령장을 바라보자 대학 시절 공인감정사를 공부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공무원도 원가를 다루는 부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원가를 계산하기에 중앙부처에 원가관리과를 두고 업무를 하나 하는 호기심도 작용했다.


국방부 별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주임이 과장과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주임에게 담당업무와 동료와의 관계 등에 대한 주의사항을 전해 듣고 자리에 앉자 업무에 대한 의욕보다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공부해서 국방부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간 고향의 읍사무소와 김포공항 출입국 같은 현장부서에만 근무했을 뿐 제도와 정책을 다루는 중앙부처는 처음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중앙부처에 다닌다는 것을 자랑하고 다니셨다. 아버지의 심정과 마음을 이해한다. 당신 때문에 자식의 앞길을 막았다는 자책감과 무거운 짐을 털어내고 떳떳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을 잘 이해하고 알아서다.


내가 아버지라도 남들에게 자랑했을 것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떳떳하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식이 한 명이 아니라 아들 셋이 공직의 길을 가고 있으니 농사를 지으면서도 대견했을 것이다.


공무원은 조직의 직제에 따라 국과 과의 업무를 정하고 과 업무는 계로 분리하고 계는 다시 개인별로 업무를 나누는 체계다. 자신이 맡은 업무는 오롯이 자신이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원가관리과에 발령을 받고 처음 맡은 업무는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서 제비율을 산정하는 것과 과의 일반업무였다. 원가계산은 회계학을 공부해서 들어봤지만, 제비율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고 생소했다. 제비율은 간접비를 계산하기 위한 간접가공비율, 일반관리비율, 이윤율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원가는 직접비와 간접비로 나누는데 직접비는 현장에서 재무관이 산정하고, 간접비는 국방부 원가관리과에서 제비율로 산정하여 내려주고 방산 원가를 정할 때 적용하는 시스템이다.


대학에서 복학을 준비하면서 공인감정사를 대비한 회계학 공부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원가계산은 원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국방부에 인사발령을 받은 그해에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업무에 대한 정확한 방향도 모른 채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함께 근무하는 회계사의 도움을 받아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사무실 동료들과 가끔 이태원에 나가 볼링도 치고 저녁도 먹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원가관리과에 적응해 가며 흥미를 갖게 되었다.


국방부 원가관리과에 근무하면서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은 동료와 설악산에 등산을 간 것이다. 가을로 기억되는데 과 주임이 주선해서 직원들과 하루 전날 오색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새벽 오색에서 설악산 대청봉까지 올라가서 내설악 방향으로 6시간 동안 등산을 하고 내려왔다.


내설악으로 내려오며 바라본 울긋불긋하고 화려한 단풍과 갖가지 형상을 띈 웅장한 바위의 모습은 지금까지 머릿속에 풍경처럼 남아 있다. 등산을 마치고 속초 대포항에 가서 횟집에 앉아 바로 잡아 온 오징어 회를 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등산한 설악산은 내 생애 가장 높이 올라간 산이 되었고 인생의 기념비적인 일로 남았다. 그렇게 직장 동료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지내다 총무처 인사교류를 통해 국방부를 떠나게 되었다.


국방부에서 원가계산 업무는 흥미가 있었지만, 방산 업체의 로비에도 시달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딱히 국방부를 떠날 마음은 없었다. 그저 주변의 환경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 국방부를 떠난 이유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하는데 국방부에 근무하는 기간에는 자긍심이 생기지를 않았다. 국방부는 겉으로는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삭막하고 정이 가지를 않았다.


그간 부처를 옮기면서 느낀 것은 부처는 외형적으로 크게 보이는데 한 개인이 하는 일은 아주 작고 미미하다. 사람은 자신의 영혼 외에 또 다른 영혼을 품고 사는 것 같다. 그 영혼은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도 하고, 방해를 놓기도 한다.


영혼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다르게 보면 자신이 느끼는 마음의 매력이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앞길이 보이 지를 않는다. 반대로 자신이 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집중하고 매진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국방부에 매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내 인생을 걸만한 그런 영혼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매력을 느끼고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그리고 그 길로 가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끌려가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어쩌면 나는 보이지 않는 헛된 미련과 욕망에 유혹을 당해 수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국방부에서 근 4년간 원가계산 업무만 하면서 보내고 그 이후 인사교류를 통해 부처를 옮겨 온 길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


가끔 국방부에 함께 근무했던 옛 동료를 만나 술 한잔 나누면 국방부로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때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하는 업무가 싫지도 않고 매력을 느끼고 있어서다.


말이란 한번 입 밖을 떠나면 취소할 수 없고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떠나온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은 삶의 질서와 순리만 꼬일 뿐이다.


지금도 공직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제는 살아갈 터와 방향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국토부는 민원도 많고 알아야 할 법률과 해야 할 업무도 많다. 그리고 업무 대부분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나중에 공직을 퇴직하고도 사회에서 상당한 도움이 되는 업무들이다.


국토부에 근무하면서 나름 인생의 희망도 맛보았다. 지금에 와서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며 기록하는 것도 커다란 행복이자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국방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이란 가정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며 글을 쓰는 순간이 과연 찾아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처럼 과거를 돌아보며 글을 쓰는 것도 의미 있고 소중한 자산이다.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자신이 아닌 후손의 몫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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