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존재의 소멸까지도 생각한 시련의 계절이다. 치과에 가서 양쪽 어금니를 빼고 잠을 자는데 잇몸에서 계속 피가 나오고 음식을 씹는 것조차 버겁고 고통스러웠다.
‘나의 운명은 진정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까지 생각했다. 나는 참 못난이란 생각이 든다.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세상살이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 같아서다.
그저 삶을 주어진 시간에 순응하며 몸을 수수방관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치아의 고통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불면의 밤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이어졌다.
몸은 어느 한구석이라도 아프거나 불편하면 많은 고통이 뒤따른다. 잇몸이 안 좋아 잠을 잘 때 피가 나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하고 양쪽 어금니를 뽑아서 먹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한다.
사람의 기본 욕구인 먹고 잠자는 것에 고통이 생기자 존재 자체도 초라해졌다. 몸에 고통이 지속되자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구가 자꾸만 꺾여간다.
모든 일이 귀찮아지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이대로 나의 몸을 그대로 주저앉힐 것인가 아니면 치료를 받으면 회복이나 가능한 것일까 하는 것에 회의감도 생겼다.
정신의 나약함은 시간과 성찰을 통해 회복한다지만, 몸의 고통은 성찰을 통해 회복시킬 수도 없다. 몸에 난 상처의 회복은 오롯이 과학과 시간이란 운명에 맡겨야 한다.
겨우내 잇몸을 앓고 난 후 이듬해 봄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집 앞의 치과를 찾아갔다. 치과의사는 치아 상태를 보더니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수수방관했느냐?”는 자괴감 섞인 말을 건넨다.
그러더니 치과 치료가 시급하다면서도 바로 치료해 주지를 않고 날짜를 예약하고 다시 찾아오라는 말만 한다. 나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내에게 괜찮은 치과를 예약해 달라고 했다.
아내가 딸아이가 다녔던 치과에 예약을 하더니 내주에나 가보란다. 예약한 날에 치과에 가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치과의사와 마주 앉았다. 치과의사는 또다시 “그동안 어떻게 먹고살았느냐?”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내 치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인가. 치과의사는 앞니는 그래도 괜찮은데 좌우 양쪽 어금니가 정상이 아니란다. 그리고는 오른쪽 아래 어금니 두 개를 먼저 뽑자고 한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는 지난번에 되게 앓았던 곳이다. 그때도 아픈 치아를 깨물고 집 앞의 치과를 찾아갔더니 다짜고짜 치아를 뽑자고 해서 통증만 줄이는 약만 먹고 견뎠다.
치과의사가 치아를 뽑아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의사에게 몸을 맡겼다. 의사가 잇몸에 마취제 주사를 놓고 얼마 후 두 개의 어금니를 뽑았다.
첫 번째 치아를 뽑을 때는 감각이 없더니 두 번째 치아를 뽑아낼 때는 뿌리까지 뽑히면서 통증이 따랐다. 그 통증에 눈물이 몇 방울 찔끔 솟아났다. 마취제를 투입했지만 제대로 마취가 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치아의 뿌리가 깊어 아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개의 어금니를 뺀 자리에 거즈를 대어 물고 근 4시간 지나서 떼어냈다. 그러자 그곳에서 이틀간 피가 조금씩 나왔다. 잇몸을 앓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피가 멈추지 않자 걱정이 앞선다.
이를 뽑아낸 잇몸에서 피가 며칠씩 나면 두려운 생각이 든다. 피가 멈추지 않는데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것인지 피가 계속 나면 몸이 쓰러질 것 같은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잇몸에서 나는 피와 고통을 참아가며 일주일 후에 다시 치과를 찾아가자 이번에는 오른쪽 위 어금니의 잇몸 수술과 왼쪽 사랑니를 뽑았다. 보름 사이에 3개의 치아를 뽑았다. 잇몸 치료를 위해 잇몸을 열어본 의사는 엑스레이로 볼 때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다고 한다.
나는 눈으로 볼 수가 없어 잇몸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근 한 시간을 잇몸 속에 있는 치석을 제거하고 잇몸을 꿰맸다. 치과의사는 다음 주 치과에 올 때까지 수술한 부분에 칫솔질도 금하고 술도 마시지 말고 뜨거운 음식과 목욕도 피하란다.
그리고는 며칠간 잇몸에서 피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하란다. 사랑니를 뽑은 자리에 거즈를 대어 물고 집에 와서 누워있다가 두 시간 지나서 거즈를 빼고 살기 위해 죽을 먹었다.
오복 가운데 하나가 치아의 건강이라더니 맞는 말 같다. 먹는 음식을 자유롭게 씹지 못하게 되자 밥맛도 없어지고 먹는 것도 고역이다.
눈앞에 음식만 보이면 두려워지고 씹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 손이 가는 음식도 없다. 치아의 치료가 제대로 될 것인지 아니면 더 힘든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걱정이다.
이제는 다른 것을 선택할 여지가 없어졌다. 현재의 상태에서 잇몸 치료를 받고 임플란트 수술까지 그대로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도중에 치료를 중단할 것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내 몸에 붙어 있던 치아 몇 개를 영원히 잃었다. 사람이 태어난 그대로 자신의 몸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새삼 건강한 치아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부러워졌다.
다음 주에는 어떤 수술이 진행될지 모른다. 오로지 치과의사만 아는 일이다. 잇몸 수술을 하는데 긴장을 너무 했는지 어깨와 머리가 뻐근하다.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긴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도 몸에 무리가 간 것 같다.
치과 치료를 받는 동안 몸은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술 한 잔도 마실 수 없고,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기도 먹을 수 없고 오직 죽과 먹기 편한 음식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신세다.
밤에 잠을 잘 때 꿈도 옛 시절이 자주 등장한다. 그에 따라 몸도 자연스럽게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내 잃어버린 치아도 과거로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꿈속에서나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과천에서 근무시간에 치과 치료를 받으러 평촌을 오고 간다. 출근길에 따스하게 바라보던 풍경도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에는 그저 그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건강하고 건강하지 않은 것에 따라 바라보는 창이 달라지는 것 같다. 건강할 때는 창밖의 풍경이 밝게 들어오는데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는 피사체에 불과하다.
이제는 내가 치아에 대하여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치과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만 한다.
아!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일 줄이야. 치아를 잃고 나서 후회해 본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치아 치료를 잘 받아 건강하게 몸을 회복하는 소원이라도 두 손 모아 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