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월 중순이다. 어제는 천안에서 친구의 딸 결혼식에 가려고 나는 세종에서 아내는 서울에서 천안으로 내려와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결혼식에 참석해 결혼을 축하해 주고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시골집에 도착하자 큰 형네가 옥수수밭에 잡초를 뽑아내고 있었다. 형네 일을 잠깐 도와주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장터로 올라갔다. 아내와 옥수수밭 잡초 뽑는 일을 도와주고 시골집에 내려와 저녁을 먹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가 오늘은 봄 감자나 캐자고 하신다. 감자밭은 마을 한가운데 셋째 큰 집 앞에 있다. 오월에는 비가 몇 번 내려 괜찮았는데 유월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심한 상태다.
감자 캐는데 필요한 호미와 캔 감자를 담을 포대 등을 챙겨 감자밭으로 향했다. 감자밭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해서 가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감자밭에 도착해서 감자 심을 때 덮은 검정비닐을 먼저 걷어냈다. 감자밭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감자밭인지 묵정밭인지도 모를 정도다. 감자밭의 비닐을 걷어내고 어머니와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아내는 감자를 캐본 적이 없다며 캔 감자를 포대에 담는 작업을 도왔다. 그러다가 아내도 감자를 한번 캐보겠다며 호미를 들고 한 이랑을 맡았다. 가뭄이 심해서 그런지 감자가 잘 안지 않았고 감자알이 크지도 않다.
감자밭에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감자를 캐는데 무릎이 저려와 힘이 들었다. 아내에게 시골집에 가서 작업 방석을 갖고 오라고 해서 작업 방석을 엉덩이에 대고 앉아 감자를 캤다.
감자를 캐는 일보다 풀을 뽑아내는 일이 더 힘들다. 풀이 워낙 자란 탓에 호미로 풀의 밑동을 서너 번은 찍어 주어야 풀이 뽑혀 나왔다.
어머니와 나는 두 이랑씩 맡아 캐고 아내는 한 이랑을 맡아 캤다. 어머니와 아내와 셋이서 감자를 캐는 작업은 두 시간 만에 끝이 났다.
감자 캐는 작업을 끝내고 어머니와 아내는 캔 감자를 포대에 담는 작업을 하고 나는 감자밭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낫으로 베어 냈다. 감자밭 주변의 풀을 베어 내고 손수레를 이용해 감자를 시골집으로 가져왔다.
오늘은 오랜만에 봄 감자를 어머니와 함께 캐보았다.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에는 봄과 가을마다 감자를 캤다. 캔 감자 일부는 팔고 나머지는 시골집에 두고 반찬이나 솥에 쪄서 먹었다.
젊은 시절엔 동네 친구들과 담배 건조실 아궁이에 감자를 구워 먹거나 소쿠리로 한가득 감자를 캐서 소금을 뿌려 가마솥에 쪄먹곤 했다.
캔 감자를 집에 가져와 쪄서 먹어 보니 지난 시절의 추억이 송골송골 떠올랐다. 점심을 먹고 나서 어머니에게 집으로 올라간다고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감자와 대파와 아욱 등을 챙겨주셨다.
어머니의 사랑을 차에 싣고 아내를 천안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곳에서 서울 가는 버스에 어머니가 주신 짐과 함께 아내를 서울로 올려 보내고 나는 세종으로 내려왔다.
이튿날 사무실에 출근해서 아내에게 몸에 알이 배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란다. 아내는 내게 괜찮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했다. 평소에 걷기를 해서 그런지 몸에 알이 배지를 않았다.
농사일로 몸에 알이 배서 고생한 것은 학창 시절이다. 일요일이면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고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곳곳에 알이 배었다.
그러다가 몸이 서서히 풀어져 목요일쯤 회복되었다. 몸에 알이 밴 것은 농사일이 몸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몸에 알이 심하게 배면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싫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도 귓전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처럼 고향에 가서 땅속에 깃든 봄과 함께 감자를 캐면서 지난 시절의 추억을 되새겨보았다. 농사는 이래저래 몸의 고통을 참고 인내하는 신성한 노동이란 것을 배운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