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여동생 아들이 결혼했다. 결혼식 날 축의금 접수를 맡아 달라는 매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승낙했다. 집안에 젊은 사람도 있는데 내게 부탁하니 안 해줄 수도 없었다.
결혼식 당일 예식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선릉역 근처 예식장을 찾아갔다. 매부와 여동생과 조카는 예식 옷을 차려입고 손님맞이할 준비를 했다.
결혼식을 하려면 여유가 있어 축의금 접수대에는 방명록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축의금 접수를 같이 보기로 한 동생은 시골에서 오는 버스가 늦게 출발해서 좀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혼식 시간이 다가오자 손님을 맞을 접수대가 준비되어 먼저 온 조카를 데리고 축의금 접수를 시작했다.
결혼식에 찾아온 손님이 내미는 봉투를 받아 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조카는 옆에서 봉투를 낸 손님에게 식권을 나누어 드리면서 피로연 장소를 안내해 주었다.
조카와 둘이서 정신없이 축의금을 받고 있는데 남동생이 도착했다. 남동생과 둘이 축의금 접수를 하기에는 힘들 것 같아 조카를 다시 붙들고 셋이서 접수를 보았다.
조카는 식권을 나누어 주고 피로연 장소와 주차권 발급장소를 안내하고, 동생은 축의금 봉투를 받아 봉투에 일련번호와 금액을 확인해 적고, 나는 봉투에 기재된 번호대로 방명록에 이름과 축의금 액수를 적어 내려갔다.
고향에서 성장하던 시절 애경사마다 접수를 보는 사람은 마을에서 한문을 배우고 계산에 밝은 사람이 도맡아 처리했다. 그에 따라 집안마다 애경사가 발생하면 접수를 보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나도 이십 대 중반부터 집안에 애경사가 발생하면 축의금이나 조의금 접수를 몇 번 맡아서 처리했다. 그때는 봉투에 이름을 대부분 한글이 아닌 한자로 썼다.
문제는 한문을 정자가 아닌 초서로 휘갈겨 쓴 봉투를 접수받으면 난감했다. 한문을 배운 사람도 알지 못할 정도로 휘갈겨 쓴 봉투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라봐도 도무지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는 한문 꽤나 아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물어 방명록에 한문을 그려 적었다. 장례식은 며칠간 진행해서 부의금은 그날그날 정산하면 되지만, 결혼식은 당일에 접수해서 예식비와 식대를 바로 정산해야 한다.
축의금 접수에서 어려운 것은 방명록에 기재한 금액과 봉투에서 꺼낸 금액을 정확하게 맞추는 일이다. 혼주가 식대 등을 카드로 계산하면 간단하지만, 대부분은 접수된 축의금으로 식대와 예식비를 지급한다.
따라서 축의금 접수가 끝나면 예식장 사무실에 가서 돈을 맞춰보고 정산해야 한다. 이번에도 축의금 접수를 끝내고 사무실에 가서 방명록에 기록한 금액을 계산하고 동생과 조카는 현금과 수표를 분류했다.
봉투에서 꺼낸 현금의 분류를 마치고 돈 세는 기계로 세어 총금액을 적고 방명록에 기재된 금액과 대조해 보니 다행히도 방명록에 기재된 금액과 봉투에서 꺼낸 현금의 합계액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동생과 축의금을 들고 예식장 사무실로 이동해서 예식비와 식대를 정산했다. 가끔 축의금 접수를 보다 보면 방명록에 기재된 금액과 봉투에서 꺼낸 현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럴 때는 방명록의 금액을 수차례 계산하면서 봉투에서 꺼낸 금액과 일치할 때까지 몇 번을 대조해야 한다. 축의금을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금액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주 난감하다.
몇 번에 걸쳐 축의금 액수를 대조해 보고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확인 작업을 포기하고 혼주에게 맞지 않는 사유를 알려주고 식대와 예식비를 정산하고 남은 잔액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
축의금 접수를 보면 점심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식장 측에서 점심 먹을 수 있는 자리는 마련해 주지만 접수된 돈을 계산하고 사무실 측과 비용을 정산하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
결혼식 축의금 접수를 보면 축의금을 내는 세태의 변화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이전에는 축의금을 천 원 단위로 냈는데 지금은 천 원 단위로 내는 사람이 없다.
최소가 3만 원이고 5만 원에서 10만 원이 대세다. 매부와 여동생 친구나 친척은 5만 원이나 10만 원을 내고, 결혼하는 조카의 학교 교직원이나 친구는 대부분 3만 원이나 5만 원을 낸다.
십여 년 전만 해도 3만 원이나 5만 원을 많이 냈다. 십여 년 동안 축의금을 내는 액수도 올라갔다. 피로연장 식대 값이 5만 원이니 축의금도 최소한 5만 원은 내야 밥값을 하는 셈이다.
예식장 사무실에서 식대 등의 정산을 마치고 피로연장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나머지 잔금은 매부에게 넘겨주었다. 다음부터 축의금 접수는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모처럼 축의금 접수를 보고 숫자를 계산해서 그런지 머리가 좀 멍하다. 사실 누군가의 축의금을 접수해서 현금을 맡아 관리하는 것은 민감한 사안이다.
혼주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축의금 접수를 맡길 수가 없다. 축의금 접수를 보는 내내 정신이 없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자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앞으로 결혼식 축의금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축의금 문화가 지속된다면 부익부 빈익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예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풍선처럼 불어날 것이다.
사회적으로 ‘나 혼자 산다.’라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는데 언제까지 축의금을 챙겨주며 살아가야 할까. 축의금을 많이 받는 것은 자신의 인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갚아야 할 채무를 떠안는 것이다.
애경사로 받은 돈은 갚아야 할 채무다. 나이가 들어 갚아야 할 채무가 없다면 마음이 가볍지만 반대로 갚아야 할 채무가 많으면 마음에 부담만 되고 살아가는데 힘들고 방해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