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피해자 보호

by 이상역

최근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가슴 아픈 것은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뺑소니로 목숨을 잃은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교통사고로 가족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것도 가슴 아픈데 사고 후의 고통과 슬픔을 남은 가족이 떠안는 것도 사회적 문제다. 사고로 인한 고통은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가해자가 무일푼이라며 "법대로 처리하라."라고 버티면서 경제적 보상을 포기하면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은 극에 달한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전쟁이나 사고로 인한 책임을 국가나 사회가 떠안지 않고 개인이 떠맡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이런 행위는 생명의 가치를 소아적 기준에 두는 것으로 2차적 가해자를 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상처를 입으면 국가에서 공공부조 성격의 보험이라도 마련하여 피해자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국가가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 배상을 청구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무보험이나 뺑소니로 인한 피해를 피해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더구나 교통사고 피해자가 가장일 경우 남은 가족이 거리에 나 앉거나, 때로는 부양할 사람이 없어 시설로 들어가는 것은 생명의 존중이 아니라 멸시를 조장하는 행위다.


결국에 그로 인한 손실은 국가가 안게 된다. 소득 몇만 불 시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보다 소득에 걸맞은 사회보장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질보다는 양, 정신보다는 물질, 내실보다는 외양, 실질보다는 체면이란 유교적 사상이 곳곳에 팽배해 있다.


고려 시대 몽골 침입으로 끌려간 고려인, 조선 시대 임진왜란으로 끌려간 조선인, 6. 25 전쟁 때 이북으로 끌려간 남한인, 바닷가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강제로 잡혀간 납북인. 이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쟁과 타의로 끌려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책 어디에도 그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송환한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이에 대한 역사적 문제를 제기하려 하면 외교나 경제적 문제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나서지 못하도록 막는 실정이다.


이는 국가가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일로 치부하는 행위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 그 나라를 탈출해서 돌아왔을 때 국가는 그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배척하고 감시까지 해왔다.


그들은 죽음의 사선을 뚫고 국경을 넘어왔지만,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도 하지 못한 채 세월 속에 묻혀 가고 있다. 신문 기사를 통해 판문점에서 50년이 지난 미군의 유해를 넘겨받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미군의 유해 송환을 바라보며 우리는 왜 북한에 있는 포로는 송환받지 못하더라도 죽은 사람의 유해나마 송환받지 못하는 것일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국가가 배척하면 이는 반인륜적인 행위다.


국가 간 경제나 외교가 인간의 생명보다도 우선시 될 수 있을까? 일본도 납북 일본인에 대하여 어떻게 해서든 본국으로 송환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보면서 우리는 전쟁당사자로 수많은 생명의 피해를 보았음에도 죽은 자의 유해나 납북된 사람을 송환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 너무나 서글프다.


우리가 이전보다는 잘 산다고 하지만 생명 존중에 대한 인식은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의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피해를 당한 사람만 억울하고 자기 가족만이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피해 가기를 바라는 기회주의적 사고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바랄 수가 없다.


교통사고로 뺑소니나 무보험으로 크게 다쳤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 교통사고를 개인의 일로 치부한다면 우리 사회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만 있을 뿐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슬프고 억울한데 남은 가족의 경제적 정신적 부담마저 국가가 외면하면 누가 국가를 위하고 애국심을 갖겠는가? 이제라도 국가가 교통사고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을 보듬어 안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당리당략에 매달린 정치인이나 통치권자 재임 기간에 업적을 만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사람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올바른 사회보장은 피해받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떳떳하게 사회인으로 만들어 국가 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국가에서 치료하고 남은 가족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빨리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장례를 치러주고 남은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돌보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었다고 시설로 보내버리고, 남은 가족은 스스로 알아서 먹고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살기 힘들면 자살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도록 방조하고 교사하는 행위다.


국가가 국민을 진실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회보장시스템을 만들면 국민소득 몇만 불은 저절로 따라온다. 국가를 구성하고 받쳐주는 근본은 국민이다. 국가가 국민을 위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국가보다 국민을 앞에 세울 것인가 뒤에 세울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국가에서 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직장인의 경제적 부담을 늘려야 한다면 기꺼이 찬성하고 동참할 것이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을 위한 일이고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루라도 빨리 교통사고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보장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재산은 다시 모으면 되지만 생명은 다치거나 잃어버리면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생명 존중은 올바른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지속적인 관심과 주의를 다할 때 꽃을 피운다. 교통사고로 더는 고통과 슬픔 속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밝은 세상에서 생명의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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