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보다 배려

by 이상역

아침에 천변 산책을 마치고 집을 향해 오는데 남한산성 위로 솟아오른 태양볕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가을볕이라 그리 뜨겁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햇빛이 눈에 비취자 걸음걸이마저 흐트러졌다.


우리 속담에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낸다."라는 말이 있다. 가을볕은 부드럽고 봄볕은 뜨거워서 살갗이 타고 거칠어져 며느리보다 딸을 위하는 행위를 두고 한 속담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처럼 며느리는 얼굴이 타든 말든 괜찮지만, 시집갈 딸의 얼굴은 고와야 한다는 차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 "죽 설거지는 딸 주고 비빔 설거지는 며느리 준다.", "여름 불은 며느리에게 때게 하고 겨울 불은 딸에게 때게 한다."라는 속담도 있다.


이런 속담이 언제 생겨나서 어떻게 유래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여성 간 차별하는 속담이나 말은 부지기수다. 문제는 남녀를 차별하는 말보다 같은 여자를 차별하는 말이 더 서럽고 모질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는 한 집만 건너가도 사돈의 팔촌 간으로 연결된다. 집에서 아무리 곱게 키운 딸도 시집가면 다른 집의 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팔이 안으로만 굽어 함께 사는 며느리의 입장은 헤아리지 않는 시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며느리는 영원한 남의 딸이고 내가 낳은 딸만 딸이라는 아집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도 한 몫한 것 같다.


문제는 시집온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당한 서러움과 차별을 나중에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에게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자신이 낳은 딸이 성장하고 며느리가 들어오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겪었던 차별적인 말과 행위를 며느리에게 행한다.


이런 행위는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졸병 시절 상급자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자신이 상급자가 되면 졸병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자신이 상급자가 되면 졸병 시절 겪었던 괴롭힘은 잊어버리고 하급자에게 그대로 투사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투사된 행위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그대로 투사한다고 한다. 이런 행위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행위를 다시 상대방에게 가하는 것은 정당하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된다.


TV에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시청한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말과 행위는 자기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말과 행위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 환경을 되돌아보고 상대방의 위치에서 바라보게 될 때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최후의 수단으로 상대방과 역할을 바꾸어 연기하는 역할 연극을 통해 자신에게 투사된 말과 행동을 떨쳐 내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남녀를 차별하는 말보다 여성끼리 차별하는 말과 행위가 더 세고 자극적이다. 간호사가 태움을 통해 같은 간호사를 괴롭히고, 여학생이 같은 여학생을 때리거나 따돌리고, 스튜어디스가 같은 스튜어디스를 괴롭히는 행위가 종종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말을 할 때는 여성들이 목울대를 세우면서도 정작 여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에 대하여는 목소리를 높여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가을볕이 따뜻해서 좋으면 며느리나 딸이나 차별하지 않고 내보내면 그만이다. 그 가을볕에 둘을 함께 내보지 못하는 속내에는 시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받았던 좋지 않은 말과 행위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다.


좋은 시어머니는 딸보다 며느리를 더 위하는 사람이다. 그런 시어머니는 가을볕에 며느리를 내보내고 봄볕에 딸을 내보낸다. 남의 자식 귀한 줄 아는 사람이 내 자식도 귀한 줄 안다. 또 그런 자식은 남의 집에 가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봄볕이나 가을볕에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 은밀하게 배어있는 여성이 여성을 폄훼하고 차별하는 문화를 하루빨리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내가 한번 그런 과정을 겪었으니 너도 한번 된통 당해보라는 것보다 너는 나처럼 그런 삶을 살지 말라고 배려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앞서야 한다. 시어머니는 낯선 곳에 와서 살아가는 며느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문화가 차별을 없애는 시작이자 출발점이다.


우리 속담에 고리타분하게 남아 있는 남녀차별이나 여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말들은 청산해야 한다. 이런 차별적인 말과 행위를 없애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길이자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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