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취미

by 이상역

공직을 퇴직하기 앞서 공로연수 중이다. 요즈음은 공로연수란 말 대신 퇴직준비 교육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공로연수나 퇴직준비 교육이나 직장에 다니면서 신경 쓰지 못한 것을 찾거나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준비하라는 기간이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직장 외에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제대로 된 취미를 갖지 못했다. 남들은 주말에 테니스나 골프나 등산이나 낚시를 즐기러 다닌다.


그들에 비해 나는 취미 하나 제대로 살리지를 못했다. 공로연수 기간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취미생활이다.


직장의 동료와 인연은 퇴직하면 끝이다. 동료와는 업무적인 관계로 맺어져 퇴직과 동시에 정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취미는 직장에서 사회생활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퇴직 후 사회에 나오면 직장에 다니던 시절과 주변 사람이나 생활 패턴이 달라져서 그에 적응하는데 꽤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변화와 적응에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 취미다.


사회는 직장과 환경이 전혀 다른 곳이다. 며칠 전 친구가 활동하는 문학모임에 같이 간 적이 있다. 그 모임은 글을 쓰는 작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을 만나서 놀란 것은 글쓰기 외에 취미 하나씩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악기를 다루거나 시를 낭송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만 제외하고 모두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몹시 부러워했다.


그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내가 취미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동안 직장에 다니며 무엇을 한 것인지 의혹만 가득해졌다.


친구가 가입한 문학 모임의 사람도 대부분 직장에 다니면서 치열하게 글도 쓰고 틈틈이 취미를 살려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던가. 그들과 비교했을 때 누가 과연 멋진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직장에 다니면서 취미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제라도 취미 하나 살려서 열심히 노력해 볼까. 너무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어떤 것을 취미로 삼아야 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공로연수 기간에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두가 자신이 갈 길은 스스로 잘 개척해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이 취미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가 사람을 평가하는 수단은 아니지만, 글도 쓰고 고상한 취미를 즐기며 사는 사람이 멋지게만 보였다. 내가 그들과 같이 취미생활을 즐기려면 앞으로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취미로 삼을 만한 것이 마땅하게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악기 다루는 것을 배운 적도 없고, 골프나 테니스를 치는 것도 배운 적이 없다.


뒤늦은 나이에 산악회에 가입해서 등산을 가는 것도, 낚시회에 가입해서 낚시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에 와서 골프나 테니스를 배울 수도 없고, 산악회나 낚시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도 무리란 생각이 든다.


그나마 노래 부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친구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노래도 접었다. 그들은 노래는 기본적으로 잘 부를 뿐만 아니라 악기에 춤사위도 좋았다.


내가 인생을 너무 건조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사는 문제에 너무 매달려 제대로 된 취미 하나 건사하지 못한 것 같다.


고상한 취미는 인생의 후반부를 아름답게 빛내주는 소금이다. 취미는 직장에 다니면서 꾸준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학창 시절부터 다듬고 만들어 즐기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즈음 코로나와 장맛비로 집에 콕 틀어박혀 사는 신세다. 취미라도 즐기는 것이 있었다면 회원을 만나 시간을 보내기라도 했을 텐데 시간이 생겨도 무료하고 따분할 따름이다.


이제라도 산악회에 가입해서 등산도 가고, 골프 연습장에 가서 골프도 배우고 싶지만 마음만 앞설 뿐 행동은 나서지를 못한다. 새로운 취미를 배워 보고 싶은데 떠오르는 것도, 무엇을 잘하는지 찾을 길도 막막하다.


지난 육십여 동안 무엇을 하면서 살아온 것인지 회의만 가득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취미도 부지런하고 반은 미치도록 빠져 들어야 자리를 잡는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생활해 온 내가 잘못이 아니던가. 앞으로 사회생활을 어떻게 연착륙할 것인지 고민이다.


그간 취미를 즐겨왔다면 회원을 만나 상의라도 해보겠는데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다. 지금이라도 고상한 취미 하나쯤 만들어 시작해 볼까 아니면 빈약한 가슴이나마 끌어안고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취미가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상한 취미 하나쯤 만들어 사는 것이 윤택한 삶이 아닐까.

어떤 취미가 내 몸과 적성에 맞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몸과 적성에 맞는 취미가 떠오르지를 않는다. 앞으로 고상한 취미 하나 만들어서 즐기고 싶다. 비록 그것이 나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더라도 삶을 여유롭게 즐기며 사는 길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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