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삶

by 이상역

직장에서 공로연수를 가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한 업적하나를 쌓았다. 아직도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발간된 수필집을 들여다볼 때마다 식사한 후의 포만감처럼 마음은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사무실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해 놓은 두툼한 글들을 바라보면 그 속에는 지나간 시절의 치열했던 삶의 순간들이 궤적으로 담겨 있다. 그것을 하나둘씩 꺼내어 읽어보면 때로는 웃음이 피어나고 때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도 있다.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현직에 근무할 때와 현직을 떠나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직장인은 현직에서 근무는 하지만 머무를 곳 없이 떠도는 신세가 아닐까.


단지 몸의 위치에 따라 직장에 머물고 있다는 잣대로 구분할 뿐이다. 금년 봄부터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계절까지 직장과 집을 오고 가면서 딸의 결혼식 준비와 고향을 오고 가는 소소한 것에 대하여 글을 써왔다.


모든 글에는 지난 시절 고향에서 부모님과 가족과 함께 했던 시간과 땀방울이 들어 있다.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바탕은 가족과 부모와 친지와 직장의 선후배와 학창 시절의 친구다.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삶의 영역이 넓은 것 같지만 그리 넓지도 않고 그렇다고 좁지도 않다. 그 속에는 가장으로 직장인으로 사회인으로 각각의 역할을 부여받아 살아가는 모습과 삶의 질서가 들어 있다.


사람살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것 같지만 결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직장이나 사회나 가정이나 복잡한 구조와 체계를 갖고 서로 사슬이 되어 하루하루 연결되어 돌아간다.


자연계의 먹이사슬이 복잡한 것처럼 사람살이의 관계사슬도 아주 복잡하고 정교하게 작동한다. 이런 복잡한 관계사슬에서 나름 의미 있는 사연을 하나둘 건져 올려 글을 써서 하나의 책으로 묶고 나니 감사함과 대견함과 작은 희망까지 생겨났다.


출간하지 못한 글이 하나둘 완성될 때마다 삶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글 하나가 인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하나의 글에 담아 책으로 엮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앞만 바라보며 글을 써볼 계획이다. 무언가에 도달하거나 의미 있는 목적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이해하고 복잡한 사람살이의 관계 사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직장과 사회라는 구조와 틀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엮어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사람의 말은 입을 떠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지만 그 말을 기억해서 글로 쓰면 영원한 것이 된다.


직장의 선후배나 사회의 친구나 친지와 말을 나누는 것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들과 말을 나누는 과정에서 사연으로 엮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나는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자판기를 두드린다.


누군가와 말을 나눈 이야기를 글로 담으려면 기억력도 좋아야 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쓰는 진정성도 중요하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는 좋은 글감이 떠올랐는데 이를 문자화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그동안 책을 하나둘 엮으면서 느끼는 것은 글을 쓰는 속도와 생각이 좀 빨라졌다는 것이다. 좋은 말과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컴퓨터 자판기에 손을 얹어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내년부터 공로연수 기간에 컴퓨터로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고민이다. 집이든 도서관이든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노트북을 마련하여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직장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사무실 컴퓨터에 의지해서 글쓰기를 했지만 공로연수를 가면 직장에 출근할 수 없어 카페 같은 곳으로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글을 써야 한다.


집에는 글을 쓸 만한 여건도 안 되고 장소도 없다. 어쨌든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기 전에 삶의 성과물인 수필집을 하나 엮어 발간하고 보니 기분은 좋다.


글을 쓰는 장소가 어디든 그간 써놓은 글과 새로 쓴 글을 모아 다시 책으로 묶어 발간하면서 퇴직 후를 대비해서 하루하루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진지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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