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옆 개울 건너 야트막한 언덕에는 초가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초가집은 쓰러지고 작은 창고만 남아 있지만 그 집의 큰아들이 은표다.
고향에 살던 시절 동네 아줌마는 큰아들 이름을 붙여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해서 불렀다. 은표는 나보다 서너 살 아래고 은표 엄마는 키가 작고 땅딸막했다.
당시 고향집에서는 십여 마리의 닭을 방목해서 길렀다. 그중에 몸에 붉은색을 두르고 벼슬도 크고 생김이 부리부리한 커다란 수탉 한 마리가 있었다. 수탉은 바깥마당을 어슬렁거리다 은표 엄마가 우리 집에 오기 위해 다리를 건너오면 쏜살같이 달려가 부리로 쪼아 대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수탉은 우리 식구나 다른 사람은 쪼지를 않았는데 유별나게 은표 엄마만 보면 달려가서 부리로 쪼곤 했다. 은표 엄마는 일이 있거나 저녁에 일이 없을 때면 종종 마실 삼아 고향집에 놀러 오셨다.
아버지가 마을 이장을 보고 있어 은표 엄마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이 마을 일이나 집안일 등을 상의하기 위해 찾아왔다. 아버지는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을 때 TV나 전화기를 제일 먼저 들여놓았다.
그리고 마을 일을 보고 있어 고향집 사랑방에는 앰프를 설치해 놓았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이라 객지에 나간 자식들이 시골집으로 전화가 오면 아버지는 사랑방에 가서 엠프를 켜서 마이크를 들고는
"아! 아아!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소리 나가냐! 아! 아아! 누구 엄마 전화 왔으니 전화받으러 와유!" 하면서 감나무에 매달린 확성기를 통해 알려주셨다.
그러면 이웃집은 밭에서 일이나 아니면 집에서 식사하다 말고 부모 중 한 분이 허겁지겁 달려와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로 인해 마을에 돌아가는 소식은 우리 집이 제일 먼저 알게 되었다.
마을의 누구네 아들이 결혼한다거나 직장에 취업했다거나 아프다거나 누가 돌아가셨다는 좋고 나쁜 소식은 엿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었다. 그런 소식은 입에서 입을 타고 마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은표 엄마는 우리 집 수탉에게 쪼이면서도 마실을 왔는데 가끔 아주머니는 자식에게 전할 말을 한 모금씩 물고 찾아오셨다.
아버지는 마을 일을 보면서 마을 아주머니들이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필로 써주셨다. 아버지가 필기구와 편지지를 준비해서 구들방에 몸을 구부려 엎드리면 은표 엄마는 아버지 옆에 앉아 자식에게 전할 말을 순서 없이 구술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은표 엄마가 전하는 말을 추슬러 편지지에 써 내려갔다. 아버지와 은표 엄마 사이에 자식에게 전할 말에 대한 흥정이 끝나면 아버지는 최종적으로 은표 엄마에게 대필로 쓴 편지를 읽어주셨다.
은표 엄마는 아버지가 읽어준 것을 듣고 난 후 되었다고 하면 아버지는 편지지를 접어 봉투에 넣어 은표 엄마에게 넘겨주었다. 편지가 담긴 봉투를 넘겨받은 은표 엄마는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래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밤이 이슥해서 돌아갔다.
이튿날 은표 엄마는 편지와 함께 자식에게 보낼 물건을 머리에 이고 읍내에 나가 우체국에 가서 자식에게 부쳤다. 당시 아버지가 편지를 대필로 써 줄 만큼 편지를 잘 쓰셨는지는 모른다.
마을에는 은표 엄마 외에도 다른 아주머니들이 종종 시골집을 찾아와 아버지에게 편지 대필을 부탁했다. 남의 집안 사연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편지를 써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편지 대필은 나도 모르는 남의 사연을 마음으로 읽어 그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써야 한다. 대필로 쓴 편지를 받아 든 은표나 마을 아주머니의 자식들은 그 편지가 아버지가 써준 대필 편지임을 알고나 있었을까?
당시 마을에는 학교를 나오지 못해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 몇 분 계셨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대필하기 위해 오는 날이면 나도 아버지 곁에 앉아 아주머니가 불러주는 말과 아버지가 받아 적는 소리를 엿들으며 사연이 가서 닿을 곳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 마을의 온갖 사연이 가슴속에 전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나도 뒤늦게 글을 끄적이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아버지가 볼펜에 필요 없는 침을 묻혀가며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썼던 편지의 내용과 아련한 기억들이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바탕과 원천이 된 것 같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려면 어느 정도 감정과 정서를 먼저 추슬러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들어있는 한 아름의 사연을 글로 구체화시켜 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편지를 쓰는 것은 또 다른 글쓰기의 행위다. 단지 누구를 향해 글을 쓰느냐 하는 방향성과 목적만 다를 뿐이다. 편지를 구성지고 아름답게 잘 쓰면 글도 풍성하고 아름답게 쓸 수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사연을 대필로 써 준 적은 없다. 지금 세대는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까지 졸업해서 자신의 편지는 스스로 쓸 줄 알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지금껏 편지 한 통 써 본 적도 없고 반대로 아버지에게 편지 한 통 받아 본 적도 없다. 아버지와 나는 편지 한 통조차 나눌 만큼 다정한 관계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편지 한 통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아버지는 남의 편지 대필은 잘 써 주었어도 자식에게 보낸 편지 한 장 남기지를 않았다. 그 이유와 사연을 알고 싶어도 아버지가 세상에 계시지 않아 그저 허공을 향해 외쳐볼 뿐이다.
지금도 고향집 안방에만 들어서면 대필 편지를 쓰던 아버지의 구수한 목소리와 은표 엄마가 전하던 말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그 소리가 내 가슴에 아련한 궤적을 그리며 먼 곳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의 기적소리처럼 그리움과 수런거림의 목소리로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