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휴일이다. 과천에서 근무하던 시절 휴일이면 종종 사무실을 찾아가 소일을 즐기다 세종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세종에서 수원에 소재한 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주말에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면 다시 사무실을 찾아간다. 이곳에서 근무한 지 근 두 달이 되어간다. 두 달이 어떻게 지나오고 지나갔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나가자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었다. 세월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서울에서 수원 사무실까지는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휴일 아침에 차를 운전하며 용인서울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데 고속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다. 주중에는 교통 체증이 심해서 차로 출퇴근하는 것이 힘든데 휴일에는 차가 별로 없어 운전하기가 수월하다.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려오는데 차 안의 라디오에서 오늘이 소한이라는 소식을 전해준다. 차창 밖의 계절은 소리 없이 갈 길을 부지런히 찾아만 간다. 소한은 절기상 대한 다음으로 추운 날이다.
그런데 계절의 절기와는 반대로 대기의 온도가 많이 내려가지 않았다. 휴일이라 사무실에는 따뜻한 스팀은 나오지 않지만, 몸을 오들오들 떨 만큼 춥지도 않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휴일에 사무실을 나오면 한가하고 호젓해서 좋다. 홀로 빈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고요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끄적거리면 홀로 존재한다는 것이 때로는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때로는 울적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런 감정과 느낌을 생각이란 실타래로 엮어 기호로 표현하는 곳이 서재다.
집에는 사무실처럼 고독한 공간이 없어 사무실을 종종 찾아온다. 비록 평소처럼 보일러는 돌아가지 않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기온이 평소보다 낮고 공기가 쌀쌀하면 정신은 맑아지고 마음은 명료해진다.
그런 맑은 정신에 무언가를 사유하려면 마음은 한없이 침잠하면서 평온해진다. 아마도 이런 마음을 즐기기 위해 휴일에 사무실을 찾아오는 것이 목적 아닌 목적이 되어간다.
오늘은 사무실에 나온 김에 업무와 관련한 것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손도 대지 못했다. 그렇다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아니다. 지난 두 달간 많은 것을 처리해서 해야 할 것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해도 절차와 순서를 지켜야 한다. 어떤 일이나 절차와 순서를 거치고 완성이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직장에서 사소한 일도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올해는 아직 강한 추위가 오지를 않았는데 소한이 지나고 추위가 차츰 누그러져 따뜻한 봄이나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겨울의 중턱에서 봄이 다가오기를 노래한다고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가슴은 봄을 기다리지만, 몸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걱정이다. 사무실은 사람 소리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없어 고요하고 적막하다. 오로지 컴퓨터의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린다.
그런 소리 나마 귀를 기울이며 지나가는 계절을 노래하는 신세다. 겨울은 제 기분에 취해 정신없이 비몽사몽 흘러갈 것이다. 약간의 온기를 머금은 전기난로를 곁에 두고 사무실에서 컴퓨터의 화면만 뚫어지게 응시하는 중이다.
오늘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서 표출해 본다. 앞으로 오늘과 같이 여유로운 날을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까. 그동안 연말이다 연초다 해서 몸이 정신없이 바빴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접어두고, 자판기에 마음을 실어 소란만 피우는 것 같다.
새해에는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볼 계획이다. 삶의 목표를 세운다고 이루어질 것은 없지만 나를 충실하게 하는 것은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 실천해 가는 과정이다.
겨울날 사무실을 찾아와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것도 어찌 보면 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런 과정을 즐기기 위해 아니면 시간을 축적하기 위해 집과 직장을 오고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나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책상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컴퓨터를 끄고 나자 사무실은 다시 고독과 적막감이 감돈다.
학창 시절부터 따라다닌 가방을 손에 들고 사무실을 뚜벅뚜벅 나가려니 사무실의 공기가 나를 휘감으며 가지 말라는 듯이 옷소매를 붙잡아 끈다.
사무실 냉랭한 공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문을 박차고 나가자 등 뒤에서 삶의 은은한 바람이 어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라며 나의 등을 슬며시 떠미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