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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30. 2024

송홧가루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 공원을 걸어가는데 소나무에서 송홧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송홧가루가 폴폴 날리는 사월이면 학창 시절 음악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배우던 노래가 생각난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 '윤사월')  


윤사월이란 노래는 중학교 시절 음악실에서 음악 선생님에게 배웠다. 음악실 옆 소나무에서 바람에 날리는 노란 송홧가루를 바라보며 음악 선생님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따라 불렀다. 


음악 선생님은 남자였는데 피아노를 치면서 윤사월을 따라 부르면 머릿속에는 문설주에 귀를 대고 엿듣는 눈먼 처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따라 중학교 시절 음악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생각나고 보고 싶다. 깔끔한 성격에 정장을 즐겨 입고 손가락이 길던 선생님. 저수지로 소풍 가서 팝송을 불러주던 멋진 선생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사람은 이래저래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가 보다. 당시 개구쟁이를 가르쳤던 국어, 영어, 수학, 미술 등 선생님들의 모습이 한 분 한 분 머릿속에 떠오른다.


배움의 시간이란 참 묘한 것 같다. 배우던 당시에는 그 시간이 소중한 줄 몰랐는데 배움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모든 시간이 추억이 되어 송골송골 피어난다.


오늘은 송홧가루가 가는 사월을 아쉬워하며 이리저리 휘날린다. 내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오월은 무언가를 기념하는 날이 참 많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이 차례로 기다린다.


가는 세월은 소나무에서 노란 송홧가루가 펄펄 날려도 갈 길이 바쁘기만 하다. 나도 이곳에 들어온 지 어언 일 년 반이 되어간다. 회사나 협회나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어! 하다 보니 시간이 저만치 지나왔다.


협회에 들어올 때는 무언가 대단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는데 캔버스에 스케치도 해보지 못하고 시간만 태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어디에 들어와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도 힘들다.


어떤 일을 진행하는데 앞을 가로막는 장벽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곳도 무슨 일을 하려면 사람에게 번번이 부딪쳐서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사람의 일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과의 관계다. 어떤 일의 추진을 가로막는 것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다.


세상 어디나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일이든 사람과 관련이 없는 일은 추진하기가 쉬운데 사람과 이해관계가 있으면 추진하기가 어려워진다.


중학교 시절에 배운 윤사월의 노래처럼 소나무에서 송홧가루가 눈처럼 쏟아져 내릴 때면 고향에서 어머니가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어 주시던 배고픈 추억이 생각난다.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거리에서 송홧가루가 날리면 지나간 학창 시절과 고향에서 보낸 아련한 시간들이 가슴을 비집고 나와 속삭여주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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