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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y 02. 2024

가지 않은 길

내 생애 처음 짧은 기간이지만 고향에서 공직을 경험했다. 직장이란 조직의 체계도 알게 되었고, 직업의 세계에 눈도 뜨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사람은 마음속에 잠재된 배움에 대한 열망은 미래에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에 남은 갈망을 소진하고자 망설임 없이 대학 진학이란 길을 선택했다.


당시 직장에 남느냐 대학을 진학하느냐를 놓고 오랜 시간 갈등했다. 고향의 읍사무소에 다니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해결했는데 다시 부모님에게 그런 부담을 떠안기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때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읍사무소에서 그대로 지방공무원으로 지냈다면 현재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현재도 공직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경력은 줄어들고 직급은 현재와 같거나 한 직급 정도 높아졌을 것이다. 지방직 공무원을 사표 내고 국가직 공무원을 선택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몸을 반으로 나누어 살아갈 수는 없지만, 어느 선택이 나은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좌절과 고통과 인내를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면 과연 똑같이 겪었을까?


어차피 삶이란 시련 속에서 성숙하고 영글어 간다. 지방직 공무원을 그대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대학을 진학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대한 선택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내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렇게 숱한 갈등 속에 치솟는 마음의 불안을 떨쳐내고 배움에 대한 응어리진 한을 선택했다. 그래야 나중에 더는 가슴에 배움이란 불씨에 대한 미련을 갖거나 꿈꾸지 않을 것 같아서다.


미래에 대한 꿈은 젊었을 때나 꾸는 것이지 나이가 들면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읍사무소에 사표를 내고 배움이란 광야를 선택한 것이다. 기왕지사 미래를 선택했으면 가지 않은 길을 두고 후회한들 어떠한 이득이 있을까?


지나간 과거의 시계를 되돌릴 수도 없고, 미련을 갖는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시간이다. 어쨌든 이십 대 초반에 공직이란 직업에 발을 들여놓은 경험은 다른 직업을 넘볼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다른 직업의 길은 생각하지 않았고, 그리워한 적도 없었다. 사람은 학교 교육을 끝내고 처음 사회로 나가는 시점에 경험해 본 일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이른 나이에 공직에 근무해보지 않았다면 공직의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공직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시험이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격의 길이 열린다. 그 이후 공직을 가는 길은 내게 남들보다 가기 쉬운 길이 되었다. 지금도 공직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나름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공무원은 봉급은 그리 많지 않아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최소한 가족은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은 된다.


인생이란 단막극이 모인 종합예술이 아닐까. 삶이 대본대로 간다면 다행이지만 지금 걸어가는 길이 대본대로 간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사는 것도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공직에 들어와 일하면서 느낀 것은 공직은 무언가 하나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가 없다. 한 업무를 오랜 기간 맡아 처리하면 법과 제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데 공직은 때가 되면 자리를 이동하는 특성상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고향의 읍사무소에서 공직 생활을 마감하던 해 백곡저수지에 가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전날 송년회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수지 안에서 밤을 새워가며 노래와 게임을 하고 난 뒤, 이튿날 아침에 밖을 나오자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변해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고 내 미래의 인생도 흰 눈처럼 환하게 달라지기를 기대했다. 친구들과 뽀드득 소리가 나는 흰 눈을 밟아가며 저수지에서 읍내까지 걸어왔던 추억이 새삼 그립다.


그날 아침 온 세상이 하루아침에 맑은 순백의 흰색으로 변했듯이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버리고 가야 할 길을 선택해서 가는 길 위로 푸른 희망의 날개를 퍼덕이는 파랑새가 나를 향해 춤을 추며 다가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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