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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y 18. 2024

금계국 사랑

너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느냐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어떻게 알고


환한 얼굴로 기다리며 가녀린 팔을 흔들며

온 세상에 내 마음을 가득 채워 놓았느냐


너는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았느냐

답답한 세상 떠나 골짜기를 찾아도 너는 거기에 있고


파아란 유월의 하늘이 좋아 들길 걸으며 따라오고

일상에 쫓겨 허둥대도 여전히 곁에 있구나


너는 언제까지 내 곁에 있으려느냐

시리도록 아름다운 노랑으로


하늘 나는 꿈을 찾아 빈자리를 남기려느냐

달려 올 사랑 위해 빈자리를 남기려느냐(황대성, '금계국')


이 시에는 금계국을 향한 시인의 지고지순한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해 놓았다. 시인이란 참 좋은 것 같다. 하나의 대상을 그림처럼 형상화해서 이미지로 나타내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침 출근길에 제천천 천변을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노랗게 핀 금계국이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바람에 하늘거린다. 봄꽃의 화려한 꽃잔치가 물러가더니 개성 있는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중에 하나가 금계국이다. 금계국은 내가 천변을 걸어오기 전부터 천변에서 꽃을 피우고 노랑 팔을 흔들어 가며 시절을 노래하고 있었다. 파아란 오월의 하늘이 좋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란 꽃을 피웠다.


매일 천변을 걸어오고 걸어가면서 금계국이 꽃을 피우기 전에는 개망초와 비슷해서 발로 툭툭 차며 지나갔다. 그렇게 발에 차이던 풀이 어느 날 "나 개망초가 아닌 금계국이오." 하고 노란 꽃을 피우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제천천 천변을 호기롭게 걸어오는데 금계국이 내 발자국을 따라 냇가애서 어슬렁어슬렁 몸을 흔들며 따라온다. 샛노랗게 핀 금계국은 코스모스와 비슷해서 미국코스모스로도 불린다.


금계국이란 이름은 낯설지만 꽃은 바라볼수록 언제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눈에 익숙한 모습에 친근감이 생겨난다. 금계국은 언제부터 천변에서 꽃을 피우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옛 시절에 금계국은 만난 적이 없는데 금은 전국 어디를 가나 천변이나 길가나 들녘을 가리지 않고 지천으로 피어 있다. 마치 가을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를 보듯 금계국을 바라보면 기분이 절로 상승한다.


금계국은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이고 노란 두상화가 줄기와 가지 끝에서 하나씩 핀다. 금계국의 꽃말은 '사랑의 망각', '여름의 추억'이란다. 꽃말이 참 부드럽고 귓가에 솔깃한 의미로 다가온다.


금계국은 번식력이 왕성한 식물이다. 개망초처럼 씨앗을 바람에 날려 묵정밭을 자기 세상으로 만들듯이 금계국도 꽃이 핀 자리에는 이듬해 개망초처럼 방향을 재지 않고 주변으로 번져간다.


금계국은 꽃말인 '여름의 추억'처럼 여름에 피는 꽃인데 지구가 더워지자 시절을 앞당겨 오월에 세상을 호령하듯 여기저기 피었다. 그동안 오월의 대명사는 장미꽃이었는데 이제는 금계국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금계국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거리면 사람의 마음도 금계국처럼 비슬거린다. 누구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이 없듯이 금계국 꽃대궁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아무 데나 피어 있다.


다른 색보다 노란색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노란색 옷을 입으면 흠이 없어 보이듯이 천지사방이 노란색 금계국으로 가득 차면 눈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사람의 시선을 흔들어댄다.


앞으로 오월은 담벼락에 핀 소담한 장미와 하늘거리는 금계국이 번성하는 달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장미의 아름다움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천변에 핀 노란 금계국은 청초하고 수수한 모습으로 사람의 시선을 이끈다.


오월의 파아란 물감을 먹은 하늘과 천변에서 노란 물결을 출렁이는 금계국.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의 망각. 내가 천변을 걸어가든 어오든 샛노란 꽃을 피워 시절과 사람을 반겨주는 금계국.


오늘도 너는 그 자리에서 노란빛 물결을 살랑이며 내가 오기를 기다려주고 내일은 다가 올 사랑을 위해 곁에 빈자리 하나 마련해 두고 사랑의 망각이 아닌 뜻깊은 여름의 추억을 생각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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