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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Jun 11. 2024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희 노래, '세월이 가면')  


이 노래는 박인환 시인이 첫사랑을 못 잊어서 지은 시를 박인희가 부른 것이다. 세월이 가면 영원히 잊힐 것만 같은 사랑이나 아픔은 누구나 하나쯤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사랑은 가도 과거는 남듯이 세월은 앞을 향해 흘러가도 추억은 어떻게든 가슴에 남게 된다. 어떤 아픔이나 그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고 먼 훗날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요즈음 때 이른 무더위로 고생이다. 여름이 오지 않았는데 계절은 여름의 한가운데를 향해 돌진해 간다. 여름과 겨울은 점점 길어만 가고 봄과 가을은 짧아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내 눈앞에서 세월이 오는지도 가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지나가 버린다. 꽃을 피우는 봄이 와서 함박웃음을 짓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계절은 무더운 여름을 향해 달려간다.


먼저 살던 곳에서 이곳으로 이사 와서 느끼는 것은 바깥공기가 더 무덥다는 것이다. 베란다 문을 열어 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약간 더운 바람이 몰려온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서울에서 세종을 오고 가면서 지내다 보니 계절이 성큼성큼 널뛰기를 하며 널따란 강물을 뛰어넘어 가는 것 같다.


사람은 어디를 가든 살아가게 마련이다. 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살아가는 구조는 비슷비슷하다. 장인사는 구조와 자영업을 하는 삶의 구조가 약간 다를지 몰라도 직장인이 모여 사는 이곳은 비슷비슷해 보이고 그저 그런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무더운 날에 사무실에서 업무시간이 끝나면 마땅헤게 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퇴근해서 집에 와도 마땅하게 할 것이 없다. 사람은 일이 너무 많아도 괴롭고 너무 없어도 괴롭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세월이 가지 않아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이 강물의 흐름처럼 무심하게 내 주변을 서성이며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손주를 보러 가는 일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주변의 번잡한 일은 접어두고 오롯이 손주만 보러 다니다 보니 시간이 썰물처럼 숭덩숭덩 빠져나갔다.


세월이 가는 것이 손주가 자라는 모습에 반사되어 나타난다. 손주가 자라는 모습에서 세월의 성숙이 느껴지고 세월이 흘러가는 것에서 손주의 성장을 마주하게 된다. 세월과 손자가 성장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가 않.


퇴근해서 집에 오면 무언가 바쁜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나마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궁한 생각이 옆구리를 떠나지 않는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나 먹지 않으나 행동이나 생각의 틀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초등 시절에 함께 성장했던 친구의 행동이나 성격은 졸업 후 몇십 년이 지나도 그 시절 그대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것을 겪는 것은 경험일 뿐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에 별다른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사람의 근본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의 근본은 변하지 않지만 성장하면서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행동과 생각만 넓어질 뿐 그 사람의 근본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사람은 성장하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의 성장이다.


월이 가면 사람도 변하거나 달라지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변하거나 달라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의 주변만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도 세상을 향해 기도해 본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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