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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Jun 19. 2024

몸이란 그릇

사람의 몸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는 그릇이란 생각이 든다. 겉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없는데 몸이 축 늘어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몸에 갑자기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엊그제 서울에서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날씨가 더워서 차 에어컨을 틀고 내려왔는데 세종에 도착하자 몸이 축 늘어지면서 이틀간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다.


마치 몸에서 공기가 빠져나간 듯 진이 쑥 빠져나가서 지난 이틀간 졸음이 쏟아지고 기침이 좀 나면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서 간신히 참고 버텼다.


때 이른 무더위를 먹은 것인지 아니면 몸살에 약간의 감기가 걸려서 그런 것인지 몸의 상태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근래 들어 이런 현상은 처음인데 내 몸은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그것도 아닌가 보다.


몸의 근력도 떨어지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 상태가 이틀 동안 유지되다 이틀이 지나면서 몸이 서서히 깨어났다.


지난 며칠간 무리하게 일을 한 것도 없고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하고는 싶은데 움직일 힘이 없어서 그저 가만히 앉아서 사무실 창문 밖만 내다볼 뿐이다.


아가들의 몸은 보드랍고 싱싱하다

살갗이 공같이 탄력성이 있고 탱탱하다


나무의 새순같이 하루하루 자라난다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몸이다.  


어느새 육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살다 보니

꽤 낡고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한  


나의 몸도 한때는 그랬을 것이다.(정연복, '몸')


시인도 나이가 들어 자신의 몸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보다 고장이 나면서 아기 시절의 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내 몸도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싱싱하고 탱탱하고 살갗에 탄력성이 있었다. 러다 시인의 말처럼 육십 년의 세월을 살다 보니 낡아지고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은 보드고 나무의 새싹처럼 하루하루 자라나서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몸이다.


그런 몸이 세월에 지쳐  시인의 몸처럼 거칠어지고 탄력성도 잃어가고 피부도 쭈글쭈글한 나무의 표피를 닮아간다. 나이 들어가는 피부를 바라보면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접어야 할 것 같다. 세월을 살아온 날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너무 변화무쌍하게 변해서다.


내 몸의 상태가 좀 가라 않으면 한번 찬찬히 내 몸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나 하는 과정을 돌아보려고 한다. 그나마 지금까지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는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들여다보려고 한다.


사람의 몸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변하게 마련이다. 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아기도 나이가  들면 나와 같이 저문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는 세월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전부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들 어떠리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워어즈 워드, '초원의 빛')


지난 한 시절 TV에서 초원 빛이란 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초원의 빛은 젊음이자 생명이자 내 청춘 시절을 보는 듯했다.


우리가 지금 겪는 모든 것은 영광의 순간이다. 비록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 초원의 빛을 잃어가지만 이런 몸 상태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추억으로 남는다.


초원의 빛과 영광의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 남아 있는 것에서 힘과 용기를 얻어 몸을 회복하면 새로운 영광의 시간을 찾아서 누릴 수 있릏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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