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역 Oct 16. 2024

가을이 되면

지난여름의 무더운 기운이 사라지고 단풍이 물들어 가는 가을이다. 가을은 사람에게 겸손함을 지니게 한다. 나무나 풀들이 가을빛을 따라 한 올 한 올 물들면 사람의 가슴에도 그만큼의 성숙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가을은 무엇보다 풍성함이지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이 찾아오면 겨울을 생각해야 하고 지난 계절에 잊거나 아쉬웠던 것은 없었는지 등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가을은 수확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지만 반대로 겨울을 생각하고 대비하는 마음의 근육을 늘려야 한다.


여름에는 계절의 주변이 산만했지만 가을이 되면 차분해지고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들을 바라보면 그들처럼 나도 계절을 따라 여물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세종에 내려와 근무한 지도 그럭저럭 두 해가 넘어간다. 이번 가을에 근무기간이 끝나는데 몇 개월이 연장되어 내년 초까지 근무해야 한다. 아마도 올 가을을 더 알차게 보내라고 연장을 해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가을을 마무리하고 보낼 것인가 하는 것에 고민만 깊어간다.


그러고 보니 세종에서 보낸 세월도 꽤 깊어간다. 2012년에 정부청사 이전에 따라 내려왔는데 근 십여 년 이상을 이곳에 머물며 직장에 다니다 정년퇴직하고 다시 민간 협회에 들어와 다니고 있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하기 위해 협회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어디를 다니든 지나간 흔적은 남게 마련이다. 그 흔적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형태의 흔적을 남기든 좋은 인연과 만남으로 좋은 모습으로 남게 되기를 기대한다.


사람의 일이란 참 묘한 것 같다. 평일에 사무실에 앉아 근무하면서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지만 막상 일하다 보면 대부분이 허드렛일이다. 나만 바쁠 뿐 남들이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하나의 조직을 선택해서 근무하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요즈음 몇 달간 글을 쓰지 않았다. 서울에서 둥지를 옮기다 보니 이런저런 신경 쓸 것이 많아져서 글쓰기가 게을러졌고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가 되고 새로 이사 간 곳에서 세종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신세다.


서울과 세종을 오고 가는 일은 이사 간 집이나 옛집이나 별 차이가 없다. 서울의 장소만 달라졌을 뿐 환경적으로나 삶의 기반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살아가는 장소와 위치만 달라졌을 뿐 삶의 형태나 구조는 비슷하다.


아파트에서 단독으로 이사를 가면 환경이 달라질 텐데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 생활이 달라질 것이 없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텃밭이 있는 단독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의 삶의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일은 큰 결심과 마음이 서야 한다. 어설픈 마음과 고집으로는 삶의 환경과 구조를 바꿀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가을이 되니 제일 먼저 반가운 소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다.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중간층인데 어디서 우는지는 몰라도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이사 간 곳은 옛집보다 더 시골스러운 곳이다. 아침에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간간이 멍멍이가 짖어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바로 옆은 그린벨트라서 푸르른 신록을 언제든지 바라볼 수 있어 좋다.


강가가 아니라서 산책하기에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산이나 공원을 찾아다니며 산책을 즐긴다. 그나마 이사 간 곳은 운이 좋아서 재건축해서 입주하는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입주 시기가 좋았던 것 같다. 최근에 재건축 과정에서 시공사가 공사비나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를 중단하거나 대출 제한으로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나는 그런 고민과 문제에서 벗어나 무난하게 입주해서 살아간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삶은 언제나 뜻하지 않고 계획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문제에서 벗어나 안온한 삶을 추구하고 있어 고맙고도 감사하다. 무더웠던 여름날이 지나가고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찾아왔다.


이번 여름의 뜨거움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 무더위가 사라지자 단풍과 계절의 성숙을 노래하는 가을이 찾아와서 기분이 좋다. 가을이 좋은 것은 덥지 않아서 걸어 다니기에 편한다는 것이다.


가을에는 어디든지 걸어서 갈 수 있고 여행하기에 좋다. 그래서 가을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가을이 찾아왔으니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글이나 다시 써보려고 한다.


시골에서 보내던 시절에 가을은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계절이었다. 이제는 그런 바쁜 것에서 벗어나서 삶의 진실함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가을이 되면 무엇보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 시절에는 삶의 리듬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면 이제는 가을의 만추를 바라보며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의 아름다움처럼 멋진 글을 쓰면서 삶의 리듬에 젖어드는 삶을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 사랑은 누가 먼저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