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유래

by 이상역

천관사 옛 사연을 들으니 처연하다

정 많은 공자가 꽃 아래 놀았더니

원망을 품은 가인(佳人)이 말 앞에 울었네

나의 말은 유정하여 옛길을 알았는데


하인은 무슨 죄로 부질없이 채찍을 더했던고

남은 한 곡조의 가사가 묘하여

“섬토(蟾免)가 함께 산다는 말”

만고에 전한다. (이공승, 청주 이 씨 6 세손, ‘천관사’)


이 시는 나의 조상인 이공승 할아버지가 남긴 것이다. 이공승이 어떠한 삶을 살다 갔는지 세세한 사연은 알지를 못한다. 그저 나의 조상이란 것과 전해져 오는 시를 통해 마음만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근원인 청주 이 씨가 남긴 글이나 시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고향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다. 내가 태어나 성장한 곳은 충북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멱수 마을이다.


고향은 길상산이 마을을 휘감은 궁벽한 산골이다. 지금까지 고향이 진천이라고 하면 “살기 좋은 곳 아니냐?”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生居鎭川 死去龍仁’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는 진천이요 죽어서는 용인이란 뜻이다. 이 말이 언제부터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는지 자세한 은 알지 못한다.


고향에는 청주 이 씨 중시조인 이거이 할아버지 산소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중시조 할아버지는 조선 초기 왕자의 난에 뛰어들어 이방원이 왕권을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왕권을 잡은 이방원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왕으로 만든 사병을 중앙군에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중시조 할아버지가 사병을 내놓지 않고 버티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게 되자 이방원은 할아버지를 고향인 진천으로 낙향시켰다.


고향에서 중시조 할아버지 산소를 대감 산소로 부른다. 대감 산소는 길이가 백여 미터에 이른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소풍을 몇 번 왔다. 이 산소는 마을의 개구쟁이들 놀이터였다. 유년 시절 또래들과 이곳에서 전쟁놀이나 씨름과 말타기 등을 하며 놀았다.


중시조 할아버지는 진천이 살기 좋다는 유래와는 반대로 ‘死去鎭川’을 택했다. 멱수 마을은 중시조인 이거이 할아버지가 묻힌 조선 초기부터 지금까지 청주 이 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고향의 이름과 관련한 유래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하나는 대감 산소 위에 절 안이란 골짜기가 있는데 그 골짜기에는 과거에 화려했던 절의 흔적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지금도 절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커다란 성벽처럼 웅장함을 간직한 석조 벽과 주인을 잃은 채 이리저리 뒹구는 깨진 기와나 절구 등 폐사지로 변한 절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폐사지에는 유명한 절(백련암)이 있었다. 백련암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스님들의 밥을 해주기 위해 미역을 씻었는데 떨어진 미역 줄기가 아랫마을까지 지천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멱수라고 부르면서 멱수가 되었다는 설이 전해져 온다.


백련암에 걸려있던 ‘영산회괘불탱’이란 그림은 진천군 초평면 두타산 영수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 보물은 초대형 걸개용 괘불 탱화로 석가탄신일에만 공개하는데 이 탱화는 백련암이 폐사지가 되면서 괘불만 영수사로 옮겼다는 내용이 두타산 영수사의 표지판에 기록되어 있다.


이 탱화는 석가모니가 제자를 모아놓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인데 조선 효종 4년(1653)에 명옥, 소읍, 현욱, 법능 등 4명의 승려 화가들이 모시에 그린 것이다.


밝은 채색과 부드러운 필치, 매끄럽고 인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17세기 ‘영산회상도’의 대표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문화재청에서 보물로 지정했다.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한 다른 하나는 대감 산소 밑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라는 옆으로 계곡물이 흘러간다.


길상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느티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폭포처럼 떨어졌는데 그 폭포에서 수초가 자랐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미역소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그곳에는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폭포에서 미역이나 수초가 자라려면 제법 큰 계곡물이 흘러가지 않았을까.


마을 이름도 미역소(미역이 나는 호소)라고 부르다가 차차 말이 줄어 멱수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고향 유래와 관련한 두 가지 전설 중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마을이나 전설이 없는 곳은 없다. 전설은 글자가 아닌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져 오는 내밀한 이야기다.


마을의 전설에는 사람이 살기 시작한 연원과 근원이 깃들어 있다. 멱수란 마을 이름의 유래를 따라 근원을 찾아가면 조상의 뿌리까지 다가간다.


비록 내 고향은 유명한 것 없는 외진 산골이지만 내게는 영원한 삶의 뿌리이자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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