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동구에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늘 푸른 신호등이 자란다. 푸른 신호등의 안쪽은 내가 태어나서 성장한 고향이고, 바깥쪽은 현재 살아가는 타향이다.
오늘은 집 근처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 집을 나서서 약속 장소로 걸어가다 교차로가 나와 걸음을 멈추었다. 교차로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어떤 방향으로 건너갈지 잠시 갈등이 일었다. 직진할 것인지 다른 방향으로 건너갈 것인지 고민이 따랐다.
잠시 고민하다 갈 길을 정하고 나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생겼다. 마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사람이 적게 간 길을 선택한 결과 인생이 달라졌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에 직면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에는 늘 고민과 후회가 따른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어느덧 고향을 터전 삼아 산 것은 스물여덟 해고, 타관을 떠돌며 살아온 것은 그럭저럭 삼십 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삶의 시련과 고비를 만날 때마다 고향에 살지 못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애증처럼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동구의 푸른 신호등을 떠올리며 마음의 시름을 달랬다.
내 삶은 오롯이 공직이란 외길에 너무 매달리고 집착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하면서 지방직에 합격해서 읍사무소에 근무하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사표를 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입국관리직에 합격해서 김포공항에 근무하다 더 높은 공직의 길을 가기 위해 다시 사표를 냈다.
그리고 뒤늦게 국가직에 합격해서 부처를 전전하다 보니 어느덧 퇴직할 나이가 되어간다. 삶에서 공직이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해서 가는 길도 많았는데 왜 하필 공직이란 길만 고집해서 살아온 것일까.
아마도 그 배경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의 가업과 주변에 인생을 조언해 줄 스승이나 지인을 만나지 못하거나 스스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부족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공직에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속담이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직에 합격해서 국방부에 첫 발령을 받고 근무하다 근무 여건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교육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수능 비리 등으로 교육부 평가원이 폐지되고 교육부에 근무하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국토부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근무하는 중이다.
그동안 부처를 교류하며 느낀 것은 자신이 근무하는 부처의 좋은 점은 들여다볼 줄 모르고 단점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이 근무하는 부처는 자꾸만 싫어지고 다른 부처로 가기 위한 핑계만 늘어났다.
다른 부처는 근무 여건이나 조건이 괜찮아 보이고 대우도 제대로 해줄 것이란 착각과 환상에 빠져든다. 중앙부처는 부처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고, 장단점을 파악해서 전출을 가야 한다.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처럼 등잔 밑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부처만 이리저리 옮겨 다닌 꼴이 되고 말았다.
고향의 동구에 선 푸른 신호등을 바라보면 지나온 삶이 시시때때로 교차한다.
고향을 안고 살 것인가 등지고 살 것인가, 대학을 진학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부처를 이동할 것인가 그대로 근무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어떤 방향을 선택해서 살아갈 것인가 고민과 번민과 갈등이 따랐다.
지금에 와서 그런 순간을 되돌아보면 삶은 한 방향만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방향을 선택해서 살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동구의 푸른 신호등을 만나기 위해 언덕을 향해 몸을 저어갈 때면 가슴에 동심의 샘물이 솟아오른다. 그러다 고향을 등지고 언덕을 내려올 때면 몸 안에는 흰 파도의 거품처럼 허전함이 가득해진다.
내 인생의 시기를 구분하는 잣대는 푸른 신호동의 기울기에 따라 작동한다. 고향에 들어설 때는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고, 고향을 등지고 내려올 때는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다.
지금까지 고향을 들고 나는 시간의 누적이 육신의 나이테를 부풀렸다. 그 나잇살이 겹 쌓이면서 삶은 푸른 신호등 안과 밖에서 나누어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가지 않은 길’을 접고 가야 할 길을 선택해서 나타난 현현이다. 그 결과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람은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사막을 건너가듯이 인생도 자신이 선택한 고난의 길을 따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삶에서 자신의 삶은 남들보다 특별하고 남과는 다르다는 환상과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간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왔던 ‘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훌훌 털어내고 싶다.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의 동구를 지키는 푸른 신호등을 찾아가서 내가 없는 동안 신산한 삶을 잘 참고 견디며 살아온 것에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