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령산에 깃든 봄

by 이상역

겨울의 추위가 사그라들고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다. 절기상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고 며칠 후면 춘분이다. 춘분은 일 년 중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절기다.

춘분이 지나면 밤보다 낮의 길이가 서서히 길어지기 시작한다. 봄기운에 온도가 올라가자 날씨도 따뜻해졌다. 봄이 다가오는 느낌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마음에 설렘을 갖게 한다.


봄기운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며 너울춤을 추듯이 푸릇한 새싹이 성장의 움을 틔우며 희망을 노래한다. 종종 시골집에 가서 머무를 때면 아침에 운동 삼아 김유신 장군이 탄생한 곳까지 걸어갔다 온다.


시골집에서 장군의 탄생지까지는 약 2킬로다. 아침에 일어나 그곳에 가기 위해 시골길을 터벅터벅 걷다 보면 길가에 푸른 새싹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 모습이 눈에 띈다.


고향 마을 입구를 내려가면 비석거리다. 청주 이 씨 비석이 나란히 서 있는 곳을 지나면 마을이 훤히 열리면서 문안산과 태령산과 아랫마을을 둘러싼 너른 들녁이 펼쳐진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면 윗상거리에 이르고 마을의 상징인 느티나무와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아랫상거리 삼거리에 다다른다.

삼거리에는 밤색 무늬에 흰 글씨가 새겨진 작은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표지판에는 연곡리 석비와 이거이 묘소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다. 연곡리 석비 방향으로 가면 김유신 탄생지이고, 이거이 묘소 방향으로 가면 어머니가 계신 고향이다.


삼거리에서 연곡리 석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우측에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은 태령산이 따라 나선다. 태령산을 우측에 끼고 상계교와 주차장을 지나가자 목적지인 장군의 탄생지다.


장군의 탄생지에는 태를 묻은 태령산을 비롯하여 우물인 연보정과 활을 쏘며 놀던 화랑정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은 서기 595년에 충북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장군은 유년 시절을 이곳에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하면서 보냈다. 그때부터 장군의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이 탄생지와 주변에서 살아가고 살아왔다.


장군이 성장하던 시절에 느꼈던 봄날과 지금의 내가 느끼는 봄날은 무엇이 다를까. 아마도 1,400년 전이면 이곳은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역이었다.


그때는 고구려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봄날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고구려가 아닌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 봄날을 즐기는 신세다.


장군과 나 사이에는 1,400번 이상의 봄날이 오고 갔다. 그렇게 수많은 봄날이 오고 가면서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던 사람들이 느낀 불안한 봄날이 아니었을까.


장군의 탄생지를 비롯한 주변에서는 무수한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라졌다. 물론 그 속에는 나의 조상도 포함되고 나도 포함된다.


오랜 세월에는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과 근대와 현대라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 세월 동안 장군을 비롯한 후손과 나의 조상들이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것이다.


비록 장군은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고구려의 위협을 벗어나고자 삼국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고 신라의 서울인 경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성장하던 시절에 느꼈던 봄날은 죽을 때까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삼국통일이란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전쟁터를 누비며 전쟁터나 아니면 경주에서 봄날을 즐기지 않았을까.


장군의 탄생지 주변에는 소나무, 낙엽송, 참나무, 밤나무 등이 어울려 숲을 이루었다. 그 숲속에서 멧비둘기 우는 소리와 숲에 깃들어 사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


숲속의 멧비둘기 우는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장군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봄날이면 되풀이해왔다. 장군의 탄생지에서 가볍게 운동을 하다가 태령산을 올려다보자 산이 신성하게 다가온다.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것과 탄생지 주변에 장군의 유년 시절 추억이 서려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오랜 시공간을 뛰어넘어 장군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진다.


장군의 탄생지에서 운동을 마치고 어머니가 살고 계신 시골집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장군의 탄생지 앞 도로에는 이른 아침부터 버스와 차량이 연곡리 방향을 향해 속력을 높이며 달려간다.

장군의 탄생지를 벗어나자 탄생지에서 들었던 멧비둘기 울음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탄생지를 뒤로하고 태령산을 왼쪽에 두고 내려오면서 산의 정상을 올려다보자 산의 전형적인 모습이 힘차게 드러난다.

길을 따라 내려오며 여기저기 바라보며 기웃거리다 보니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 중앙에는 태권도의 성지라는 조형물을 돌조각에 새겨 걸쳐 놓았다.


주차장에는 캠핑카를 비롯한 차량 서너 대가 주차되어 있고, 주차장 앞 길가에는 장군의 나라 사랑을 기리기 위해 무궁화를 심어 놓았다.

주차장을 지나자 붉은 태양이 태령산 정상에서 불쑥 솟아올랐고 숲속에 잠자던 봄의 전령도 기지개를 켠다. 이른 봄날 아침에 걷는 것은 봄이 다가오는 완상의 즐거움과 마음의 상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길에서 김유신 장군이 느꼈던 봄날과 내가 느낀 봄날을 함께 공유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치 긴 역사의 터널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아랫상거리 삼거리의 표지판을 뒤로하고 시골집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자 태령산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어서 좀 전에 걸어왔던 윗상거리 작은 다리가 나온다.


아침에 떠오른 태양을 등지고 고향의 시루봉을 바라보며 저벅저벅 걸어가자 비석거리에 이른다. 조상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읽어가며 발걸음을 재촉하자 마을을 지키는 시냇가의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고향은 언제나 냇가에 고즈넉하게 선 느티나무가 반겨준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시골집이 가지에 걸린 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 걷기에도 좋고 봄이 다가오는 싱그러움을 온몸으로 느껴본 소중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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