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바위

by 이상역

최근에 가수 박정식이 부른 ‘천년바위’란 노래를 즐겨 듣고 있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노라면 물 흐르듯 막힘 없이 유장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감이 더 간다.


게다가 가수의 목소리에는 판소리와 민요의 가락이 담겨있어 긴 여운의 맛이 나고 소리도 깊고 매끄럽다. 이 노랫가락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아름다운 詩語처럼 내용이 멋지다.


동녘 저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마음 줄 곳을 집시 되어 찾으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서산 저 넘어 해가 기울면 접으리라 날개를

내가 숨 쉬고 내가 있는 곳 기쁨으로 밝히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이제는 아무것도 그리워 말자 생각을 하지 말자

세월이 오가는 길목에 서서

천년바위 되리라(천년바위, 장경수 작사)


하늘에서 비가 섬섬하게 내리는 날에 책상에 앉아 ‘천년바위’란 노래를 듣는 중이다. 촘촘하게 내리는 빗소리와 노랫소리가 어울려 주변 분위기도 고요해서 음악에 빠져들게 한다.


이 노랫말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부분은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라는 가락이다.


삶이나 죽음에 대한 선문답은 산사의 스님들이 해야 어울리는데 대중가요인 노랫가락에 들어있어 노랫말이 마치 삶의 철학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불교는 마음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종교다. 마치 이 노래를 부르면 불교에 심취한 듯 불교적인 색채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이 노래를 듣노라면 마음이 엄숙해지고 진지해지면서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내려놓으라는 화두처럼 들려온다.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라며 가수가 목울대를 높이고 노래를 부르면 가슴에 품고 있는 욕심을 버리라는 죽비 같은 소리로 들려온다.


마치 스님의 게송처럼 삶에 진지한 화두를 던지고 깨달음을 얻으란 소리로 들린다. 가수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노래를 듣노라면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고 가슴에 무언가가 탁하고 묵직하게 부딪쳐온다.


사람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원한다. 그러다 사랑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면 홀로 가슴을 움켜쥐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너만을 바라보고 오롯이 살아왔는데 너는 어떻게 내 사랑을 몰라주고 마음이 변할 수 있느냐. 그날부터 사랑이 왜 변하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며 사랑도 삶도 덧없고 부질없다는 것을 깨우친다.


사람은 바위가 아닌 이상 마음도 세월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이 노래는 상대방의 사랑을 영원히 믿기 위해 천년바위에 빗대어 오롯이 한 곳에서 망부석이 되어 너를 기다리겠다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이 세상에 천년바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단단한 바위에 이름을 붙여 존재하는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천년바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년바위와 이름이 비슷한 사자바위, 울산바위, 흔들바위, 마당바위, 장군바위도 마찬가지다. 그 바위에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전설이 깃들어 있다.


가수가 부른 천년바위에도 남모르는 사랑의 전설이 들어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가슴에도 천년바위와 같은 마당바위가 망부석처럼 간직되어 있다.


고향의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 마당바위다. 개구쟁이 시절 저녁을 먹고 마당바위에서 만나자고 하면 그곳이 어딘지를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찾아왔다.


그 바위는 개구쟁이들이 냇물에서 목욕하다 맨몸으로 올라가 햇빛에 몸을 그을리던 곳이다.


가을이면 마당바위는 마을 아주머니들이 빨간 고추나 무말랭이나 호박고지 등을 말리는 장소였다. 고향의 마당바위에는 천년바위보다 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지금도 고향의 마당바위는 세월이 오가는 길목에서 망부석처럼 고향을 떠나간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래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듯이 아름다운 詩도 사람에게 심금을 울린다. ‘천년바위’는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자 올곧은 마음의 상징이다.


바위는 그 자리에서 백 년이고 천년이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동녘에 해가 뜰 때면 철새처럼 어딘가로 날아갈 수도 없고, 세상 어딘가에 마음을 주고 싶어도 집시처럼 떠나갈 수도 없는 묶인 몸이다.


모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 ‘천년바위’란 노래를 들으며 오랜만에 참사랑에 대한 진한 감정을 느껴보고 고향의 마당바위를 떠올려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천년바위 하나쯤은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 바위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게 된다.


가수 박정식은 ‘천년바위’란 노래로 가슴에 큰 사랑을 얻었지만, 나는 고향의 산자락을 지키는 마당바위를 통해 지난 시절의 그리움을 맛보았다.


가수의 노래는 이미 끝났지만, 귓전에는 아직도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라는 유장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여름날의 태풍이 연이어 올라오는 불안한 마음에도 삶은 꺼지지 않고 불꽃처럼 태양의 정수리를 향해 돌진해간다.


태평양 적도에서 태풍 하이난이 세상을 휘어잡듯 올라와도 가슴에 샘솟는 천년바위의 사랑은 멈출 수가 없다.


'천년바위’란 노래는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가 않고, 가슴을 묵직하게 후벼 파는 깊은 울림의 노래로만 들려오는 오붓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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