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안식처를 찾게 된다. 안식처란 세상의 번잡한 일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다.
뒤늦게 글이란 신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글은 잘 쓰지 못하지만 글쓰기에 푹 빠져 지내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다.
아직은 글이란 신세계의 깊이와 속내는 알지 못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글쓰기는 또 다른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바탕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에 안식처를 안고 살아간다. 내 가슴에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태어나서 성장한 고향이 안식처다.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고달프거나 일이 꼬여 풀리지 않거나 좀처럼 진척되지 않을 때는 종종 고향을 찾아가서 어머니를 만나 회포를 풀고 온다.
나이라는 유전자는 햇수가 늘어갈수록 연어처럼 자신이 태어난 모천을 본능적으로 찾아가게 한다.
삶의 경험이 많고 연륜이 쌓이면 어른스러워져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천을 찾아가려는 동물적인 감각만 강하게 작동한다.
지금까지 삶이 고독하거나 팍팍해지면 안식처를 찾아가서 회포를 풀어왔다. 그것도 미진하면 친구를 만나 술 한잔을 나누면서 마음을 달랬다.
그때마다 가슴에 끌어안고 있던 고민이 해결되거나 풀리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어머니가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이다. 그 밥상에는 배고픔도 해결해주고 삶이 뒤틀린 것을 바로 잡아주는 보약이 들어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나면 삶의 고단함과 매듭이 저절로 풀리면서 생의 의지가 새록새록 샘솟는다. 어머니 밥상은 온갖 근심을 잊게 하는 그리움의 화수분이다.
직장이 과천에서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다양해졌다. 몸은 비록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신세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직장과 집과 고향을 오고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대상도 많아졌다. 지난 시절에 성장하면서 발로 밟던 곳을 다시 밟게 되자 새로운 감정과 느낌이 든다.
삶은 과거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은 오롯이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사는 기분이 든다. 그 과정에서 나를 돌아보고 삶을 돌아보며 다시 배우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에 만나던 대상을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들을 다시 만나면서 이제는 직장에서 물러나 안식처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싫고 귀찮아진 것이 아니라, 그저 홀로 조용하게 지내며 고독하게 지내고 싶다. 내 마음의 영원한 안식처는 그리움이 성장하는 고향이다.
그곳에서는 상록수처럼 변하지 않는 푸르름과 백합꽃과 같은 어머니의 순백한 숨결을 느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