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향수

by 이상역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옆 주막

그 수 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김용호, ‘주막에서’)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읍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시절 장날은 농사일로 바쁜 농가의 민원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날이다.


달력 숫자의 끝에 0이나 5인 날은 오일장이 서는데 그날은 읍사무소도 장터처럼 어수선해진다.


장날이면 사무실은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달라, 영세민 배급을 받게 해 달라는 등 온갖 민원이 쏟아진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장날은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고, 그간 만나지 못한 지인과 막걸리를 마시며 회포도 풀고 이웃 마을 소식이나 애경사를 주고받는다.


언젠가 하루는 담당 마을 이장이 장날 아침에 읍사무소에 들어서더니 내게 급한 볼일이 있다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잔다.


그리고는 사무실 앞 대폿집에 들어가더니 아주머니에게 다짜고짜 막걸리를 시켰다. 한쪽이 움푹 들어간 찌그러진 주전자에 시원한 막걸리가 나오자 이장은 대접 한가득 따라주며 마시라는 눈짓을 보냈다.


이장은 “다른 사람 눈이 있어 일을 핑계 대고 나왔노라.”라면서 막걸리 한잔할 겸 데리고 나왔단다. 젊은 기분에 막걸리 한 잔 정도야 하면서 마셨는데 술기운이 올라오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렸다.


내가 술을 늦게 배운 탓도 있고, 아침에 술을 마시지 않던 생활로 인해 그날은 하루를 몽롱한 기분으로 보냈다. 마치 술지게미에 취해 비틀거렸던 유년 시절처럼….


당시 대부분 농가에서는 밀주(동동주)를 담가 마셨다. 좀 살만한 농가는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주문해서 마셨지만 그렇지 못한 농가는 밀주를 담가 마셨다.


양조장에서 발효시킨 것은 막걸리고, 농가에서 발효시킨 것은 밀주다. 밀주는 농가에서 제조해 마셔서 단속이 꽤 심했다.


부모님은 세무서 단속이 나올 때마다 술독을 건조실에 놓고 거적으로 덮거나, 뒤란의 장독대에 묻거나, 마당 옆에 묻어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다.


아마도 양조장에서 막걸리가 팔리지 않으면 세무서에 민원을 제기하여 자주 조사를 나왔던 것 같다.


아랫마을에 세무서 단속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집마다 산으로 건조실로 밀주가 담긴 항아리를 들고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던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 고향 집 안방의 아랫목에는 술이 익어가는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발효가 끝난 독을 들고 부엌으로 들고나갈 때면 자라처럼 목을 쭉 내밀고 부엌을 향해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것이 일과였다.


물과 당원을 타서 술지게미를 만들어 자식을 부르는 구원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목마름과 갈증을 해결하는 마법과도 같은 소리로 들렸다.


군것질거리도 없던 시절이라 술지게미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면 술지게미에 남은 알코올 기운으로 몽롱하게 보낸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막걸리는 원액이 진할수록 맛이 좋다. 그만큼 진한 것은 끈적끈적한 것과 연관이 있다. 막걸리의 끈끈한 힘이 사람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막걸리는 소주와 같이 투명한 관계를 요구하지 않고 길가의 정자나무 아래로 사람을 모으는 인심과 구심력을 작용한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거쳐 가는 주막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삶의 여유와 정서를 즐겼다.


주막집은 마을 입구나 사람이 오고 가는 교차로에 터를 잡았다. 커다란 정자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주막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막걸리를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정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술독 옆에 다 쓰러져가는 탁자 위에 놓인 굵고 시커먼 소금. 다른 사람의 입술 자국이 수없이 묻은 사발. 시커먼 소금을 안주 삼아 사발을 손에 들고 주막집에 앉아 삶을 이야기하고 정을 나누던 시절은 사라졌다.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시인의 노래처럼 오늘날 세태는 소금보다 짠 세상이다. 비정한 세상을 안주 삼아 막걸리 대신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났다. 저녁노을마저 비껴간 각박하고 고단한 삶의 길을 터벅터벅 가야만 한다.


지금은 막걸리에 서린 훈훈한 인심보다 맑고 투명한 소주와 같이 깨끗하고 독한 관계를 요구한다. 내 입술이 닿은 사발에 다른 누군가가 입술을 대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내 입술이 닿은 사발은 곧바로 버려야 하는 세태를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한다.


막걸리에는 훈훈한 인심이 배어있지만, 소주에는 냉정함과 차가운 바람만 솔솔 풍긴다. 막걸리와 소주는 태어나는 과정은 비슷하지만, 소줏집과 주막집은 품어내는 정경이 사뭇 다르다.


소줏집은 화려하고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사람을 유혹하지만 주막집은 정자나무를 거느리고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사람을 불러 모은다.


네온사인은 삶에 찌든 사람의 마음을 훔치지만, 막걸리 대접은 마음을 열고 넉넉함과 인심으로 마음을 감싼다.


읍사무소에 다니던 시절 직원들은 순두부 식당을 자주 찾아갔다. 순두부처럼 순하게 생긴 아주머니는 외상술도 잘 주고, 가끔 공짜 술도 얻어 마셨다. 지금은 외상술을 달라고 하면 쫓겨난다.


게다가 공짜 술을 달라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다. 외상도 없고 공짜도 없고 순한 마음을 가진 아주머니도 만나기 힘든 세상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막걸리보다 소주를 더 찾는다. 삶의 여유와 낭만을 찾기보다 스트레스 해소라는 괴팍한 이름을 붙여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찾아다닌다.


농부는 기운을 내기 위해 막걸리를 마신 다지만, 도시 사람은 기운을 소비하기 위해 소주를 마신다. 직장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막걸리보다 독한 술을 마시면서 마음을 달래려는 것이다.


지금은 정자나무를 거느린 주막집도 사라지고 이전에 느꼈던 막걸리 맛도 만날 수가 없다. 막걸리 대신 도심 변두리에서 다양한 색깔의 알전구가 유혹하는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은 다른 일 모두 접고 주막집이나 찾아가서 빈대떡에 막걸리를 기울이며 ‘번지 없는 주막’이란 노래나 목울대가 튀어나오도록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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