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봉 아랫마을

by 이상역

고향에서 제일 높은 곳을 시루봉으로 부른다. 시루봉이란 이름을 언제부터 불러왔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시루란 떡을 찔 때 사용하는 질그릇이다.


마을에서 시루봉을 바라보면 떡시루를 뒤집어 놓은 형상이다. 길상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빙 둘러싸서 해가 늦게 뜨고 제일 먼저 기운다.


중시조 할아버지가 묻힌 조선 초기부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 육백 년 이상을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살아왔다.


마을은 겹겹이 산자락이 둘러싸여 있고 계곡도 깊다. 계곡은 계절마다 새색시와 같이 색동옷으로 갈아입는다.


봄이면 진달래꽃, 벚꽃, 복사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와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면서 멋진 풍광을 쏟아낸다.


계곡의 산세가 험하고 깊어 마을 주변만 밭이나 논으로 경작한다. 마을에서 산으로 조금만 올라가도 경작할 땅이 없다.


산에서 온갖 것을 구하는 것을 시기라도 하듯 농사를 짓는 땅은 제한적이다. 게다가 돌도 많고 토질도 좋지 않아 농사짓기에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유년 시절 마을에는 육십여 가구가 살았다. 마을이 번성하던 시절에는 농사짓기가 수월했지만, 지금은 십여 가구도 채 안 되고 사람도 팔순을 넘은 노인뿐이다.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농사 외에는 할 것이 없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은 학교를 마치고 대처로 나가는 바람에 세대와 세대를 잇지 못하는 농촌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났다.

길상산 깊은 계곡에서 내려온 냇물은 마을의 한가운데를 지나 아랫마을로 흘러간다. 그 냇물에는 대처로 나간 자식의 소식과 마을에서 일어난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 문이 열리는 곳이 냇가다.


냇물을 중심으로 동쪽은 양달 마을, 서쪽은 음달 마을로 부른다. 양쪽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냇가에 모여 이웃의 소식과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며 살아갔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사라졌다.

길상산 시루봉과 계곡에서 발원한 냇물은 아랫마을을 지나 미호천에 합류하고 금강에서 몸을 풀고 바다로 간다. 마을의 냇물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 물이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


지금도 물이 맑고 시원하다. 물이 차서 한여름에 오 분 이상 몸을 담글 수 없을 정도다.

이 마을에 들어오면 농사 외에는 다른 것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가 없다. 마을 산자락에 붙은 농토 라야 계단식 논과 밭이 전부다. 마을 안에는 넓은 논과 밭이 없다.


넓은 논은 아랫마을에나 가야 만난다. 아랫마을에는 넓은 뜰이 있는데 이 뜰은 사석의 여섯 개리에 사는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

마을에는 해마다 중시조 이거이 할아버지를 비롯한 조상의 시제를 지낸다. 시제 때가 되면 청주 이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이전에 중시조를 비롯한 조상을 잘 모시기 위해 산지기를 들였다. 산지기는 위토 형식으로 받은 집과 논밭을 경작해서 살았다.


그리고 가을에 시제를 지내기 위해 찾아오는 종친들에게 식사와 숙식을 제공하고 시제에 올릴 제사 음식을 만들었다. 산지기가 마을을 떠난 후 산지기 할 사람도 없어졌다.

마을의 풍습과 문화가 사라지는 변화의 바람이 이곳에도 불어왔다. 길상산 정상에 산등성을 깎아 고압선 철탑을 세워 놓았다. 고향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가꾸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마을을 지키는 사람도 줄어들고 대를 이을 사람도 사라져 간다. 머지않은 장래에 시루봉 아랫마을을 지키는 토박이가 사라질 것 같다.

그런 고향이지만 그저 아무 때나 찾아가도 따뜻하게 반겨준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과도 같다. 비록 마을의 풍습과 문화는 사라져 가지만,


그런 곳이나마 가슴에 품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시루봉 아랫마을은 내 마음의 영원한 둥지이자 삶의 정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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