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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숙 Mar 03. 2024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

 어느덧 새로운 커피숍을 오픈한 지 2년이 넘어선다.  커피숍을 새롭게 오픈하며 일상을 마주하는 것이  전보다  편안해졌으며 훨씬 더 여유로운 모습으로 사람들과 친근감을 유지한다.  점심시간 동시에 물밀 듯 들이닥치는 사람들로 인해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황들과 자주 직면하지만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단골손님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년이란 기간 동안 주변엔 커피숍이 서너 개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숍의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커피숍의 바쁜 일과로 시간을 보내며 바깥의 공기를 마시고 싶은 생각에  잠시 밖으로 나와 시선을 돌려 본다. 작고 예쁜 까만 눈을 가진 털이 많은 푸들 강아지가 눈에 띄어 쳐다보았다. 그리고 위를 올려 본 순간 아주 익숙한 모습의 하나도 변하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바로 예쁜 강아지 옆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고3시절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 집 근처 교회옆 2층의 낡은 목조 건물의 작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나 가까운 시간이 지나왔다. 지난 시절을 회상해 보면 그림을 그렸던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많은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나들이 온 여자 손님이 있었다. 나의 소품이 놓여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자꾸 나를 져다 보던 눈빛이 서로 아는 듯한  시선으로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우리  대학동창인 것 같다' 고 가까이 얼굴을 보니 그제서야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시간을 더듬어 어림잡아  35년 만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첫 발령지인 옥천과 영동의 중간지역인 이원에서 미술교사로 직장의 첫 출발을 했었다. 그 당시 같은 학교에서 6개월을 근무를 하고 같은 집에서 생활했던 친구를 만난 것이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걱정스러워하며 대화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시절 함께 했던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공유했던 탓에  학창 시절 친구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잘 되는 부담이 없는 편안함이 있어 좋다


 커피숍의  오픈 준비가 끝나자마자  방문한 손님 중의  한 사람은 '커피숍의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요'라고 하며 흡족한 표정으로 커피숍을 떠난다.  휴대폰의 카톡을 알리는 문자와 사진이 올라온다.  초임발령지인 이원에서 만난 제자 석이의 반가운 메시지였다. 눈 덮인 지리산 여행 중 차량운행이 통제되어  정상까지 걸어 올라갔다

  하얀 눈이 덮인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한 장 한 장씩  나레이션과 함께 우수에 찬 목소리로 동영상을  올린다.  

  석이는 수업이 끝난 후 미술반 아이들과  수채화를 그리며 보냈던 시간을 가장 인상 깊게  생각하며  그 시간을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손꼽아 말한다. 그 당시 그림을 그리고 난 후 김치 사발면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매일 사 주셨던 것을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다.

아마 나에게도 고3시절 늦은 밤 그림을 그리며 먹었던 라면의 맛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젓가락이 없어 붓끝으로 젓가락을 대신 사용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매일의 일상 중에 그림을 그리고 난 후 해가 뉘엿 뉘엿 넘어갈 즈음 해질녘이 되면 가장 가까운 근처에 사는 미술반 아이들을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논두렁가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며 석이는 나의 집 앞에 데려다 준 후 자신의 집을 향해 가곤 했었다.


 나의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행복했던  것처럼  지금 나의 곁엔 그림을 같이 그렸던 친구,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님, 제자 석이와 함께 동행의 기쁨을 나누며  지금 우리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그림을 그렸던  것'이  매개체가 되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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