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20대 결혼은 ‘약간의 답답함’이었고 30대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른다. 결혼보다는 혼자의 삶의 순례에 흠뻑 취해있었고 그렇게 흘러 40대의 나에게는 결혼은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노년이 외로울까 봐 혹은 나이 들어 ‘주변을 괴롭히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결혼에 대한 깊은 생각보다는 ‘이 삶을 어찌할꼬’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나에게는 이득이 별로 없어 보였다. 누구는 결혼이 사업이라고,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안정을 위해 경영을 하는 거라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단지 종족의 번식을 위한 제도적 장치일 뿐이라 하기도 하고, 두 사람의 눈이 번쩍여서 마음이 순식간에 멈춰버리는 운명 같은 사랑의 결과물이라고도 하지만 난 그런 영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결혼은 건조하고, 영양가는 표면에만 존재하다가 단물이 빠지고 나면 애증만 남는 그런 삼류 드라마처럼 여기곤 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그를 만나고 불과 일주일 만에 결정한 일이다. 그런 결정은 나를 포함해 주변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그러나 그냥 같이 살아야 할 인연인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를 처음 만나게 해주신 스님의 인연으로 절에서 몇 분만 모시고 조촐한 언약식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생략하고 둘이 법당에서 서로의 마음을 약속하자는 걸로 계획은 되어 있었으나 꼭 오시고자 하는 증인 몇 분 더 모시고 평온한 언약식을 함께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맹세하고 난 그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고.
2019년 5월 어느 좋은 날 언약식
부처님, 오늘
산이 듣고 새가 듣고 소중한 친구가 듣고
지나가는 나그네도 듣고 풀도 듣고
이곳의 모든 것 앞에서 귀한 약속을 하고자 합니다.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큰 도로도 있었고
오솔길도 있었고
저 하나 빠져나갈 작은 구멍도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길이 없었지만
어느 날 이 사람을 만난 그날이
제게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기쁜 비가 내렸습니다.
가슴을 찢고 꽃이 피었고
신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행복하길 원합니다.
처음 본 그때부터 아니 처음 이 사람을 만나러 가는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먼 날 언젠가부터
이 사람이 행복하길 바랬습니다.
당신이 저를 알아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밥을 해줄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걷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과 이 자리에 함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와 인연이 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나란히 이 길을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 어떤 길도 감사하며
마땅한 마음으로
천천히 가겠습니다.
당신에게 진실한 눈을 주시고
당신의 여정에 제가 힘이 될 수 있게 해주시고
우리가 함께 자유로워지길 기도합니다
우리와 인연이 되는 모든 것들과
함께 자유로와 지길 기도합니다.
당신을 만난 처음처럼 난 지금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