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루비 Dec 19. 2024

친척이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김루비입니다.

저에게는 21년 말부터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저녁에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나랑 나이가 같은 사촌이 돈 100만 원을 갑자기 빌려달라네, 괜찮을까?"


저는 차분히 물었습니다.

"부모님 살아계셔?" "응." "직장도 다니고 있고?"

"응. 여자 문제로 빌려달라는 거 같아."

"여자 문제? 그럼 빌려 줄 필요 없어."


남자 친구가 그 사촌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는 느낌이 물씬 들었습니다.

빌려줄 수 없는 이유도 있는 것이, 남자친구는 아파트 분양을 받은 상태로, 빚이 있으며 중도금 이자도 갚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세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 나이(43살) 처먹고 여자문제로 돈 빌려달라는 사람은 최악 아냐? 직장도 있고. 부모님도 있는 데 뭐 하는 거람?"

이 말이 서운했는지 남자 친구와 저는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다투게 됩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저임금으로 아껴가며 생활 중입니다.

어제도 피자를 시켜 먹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라면을 끓여 먹었죠.


"오빠는 내가 나보다 열 살 넘게 어린애들 밑에서 굽신거리면서 일하는 거 몰라? 운전도 못하는데 겨우 면허 따서 아침마다 전쟁터 나가는 심정으로 나가는 데 내 생각은 안 해?"

"그건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하나도 안 불쌍해."



맞아요. 여기 들어온 것은 제가 돈 벌려고 선택한 길입니다.

돈 버는 건 자본주의 시대에서 좋은 일에 속하며, 해야 하는 일에 속하죠.

남자 친구도 금전적인 필요성을 느껴서 맞벌이를 처음에 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거든요.

근데 저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돈 벌려고 하는데, 남한테는 쉽게 그 돈을 빌려준다는 게...

나한테 돈 벌라고 말하며, 직장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이야기는 못하면서 못 받을 수 있는 100만 원은 빌려준다니.

용납이 안되더라고요.





저희 가족은 재산문제로 심하게 다툼을 한 집안입니다.

친할아버지가 용인의 땅 (현재 수백억의 가치)을 큰 아들에게 거의 다 물려주셨고 나머지 반도 안 되는 재산의 대부분을 둘째, 그리고 아주 조금씩을 고모 둘에게, 우리 부모님에게는 거의 물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더 웃기건 그 많은 수백억 재산은 큰 아들이 수년도 안 돼서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채 60이 되기 전에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고요..


나머지 재산을 받은 둘째아버지 역시 재산을 도박과 여자문제로 날려버립니다.

결국 집 하나 없이 지금은 스님이 되어 살고 계시네요.

가끔 엄마한테 용돈도 달라고 하시나 봐요.


엄마는 이 집에 시집올 때 셋째 아들이라 제사의 제도 생각하지 않았는 데 제사까지 현재 지내시고 계십니다.

더 슬픈 건 할아버지 생전 씀씀이가 커서 돈도 달라고 하셨나 봐요.

손에 든 선물이나 봉투를 보고 가볍게 느껴지면 인상부터 찌푸리셨다고 합니다.


"엄마, 엄마는 억울하지도 않아? 제사 왜 지내는 건데? 나 같음 밥에 침이라도 뱉었다."

"어쩔 수 없지. 땡중(둘째아버지)한테 지내면 수십만 원 돈 달라고 난리 치니까 내가 지내는 게 나아."

에고... 저희 엄마가 살아있는 보살이네요.




뿐만 아니라 IMF때 저희 집은 파산한 적이 있습니다.

그걸 만회하고자 부모님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고요. 저도 아버지가 검은색 중후해 보이는 세단을 타시다 마티즈로 차를 바꾸신 게 기억납니다.

알고 보니 고모부와 동업을 했는데, 쫄딱 망하고 빚까지 지신 거죠.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의 답은 없는 건데, 부모님은 너무 열심히 사셨습니다.

어렸을 적 길에 남이 버린 옷, 가구, 살림살이를 주워오셔서 깨끗이 씻어 사용하셨죠.

허투루 살림을 낭비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긴 합니다.





여기다 자세한 사항을 쓰긴 그렇지만, 저는 누군가의 거짓말에 의해서 시간, 금전적인 손해를 본 사람입니다.

그게 선한 의도였던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서로의 시간 낭비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돌다리로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며, '검은 머리 짐승 거두는 것이 아니다'가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될 줄 몰랐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재산싸움과 IMF, 결정적으로 누군가의 거짓말로 인하여 저는 꽤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겉으론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은 제 안에 야수가 살아있음을 실감합니다.


사기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거짓말이 밝혀졌던 그날의 기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겁니다.

아빠의 동업이 실패로 끝난 날, 엄마가 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오늘! 살아갈 가치가 없어!"이라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모릅니다.


세상이 동화 속 네버랜드처럼 평온하고, 서로를 위해주는 이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몇 년 살지는 않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가족이라고 해도 머리끄덩이 잡고 욕하면서 싸울 수도 있고, 잘 살아가더라도 갑자기 망할 수도 있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변하는 이 변동성 있는 세상을 모순적이게도 저는 껴안으려고 합니다.





능력이 없어서인지, 선택을, 때를 맞추지 못한 저는 최저시급을 받고 일합니다.

절약은 제가 세상에서 두 발로 버틸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어떤 것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지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던 바퀴벌레처럼요.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