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루비입니다.
저에게는 21년 말부터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저녁에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나랑 나이가 같은 사촌이 돈 100만 원을 갑자기 빌려달라네, 괜찮을까?"
저는 차분히 물었습니다.
"부모님 살아계셔?" "응." "직장도 다니고 있고?"
"응. 여자 문제로 빌려달라는 거 같아."
"여자 문제? 그럼 빌려 줄 필요 없어."
남자 친구가 그 사촌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는 느낌이 물씬 들었습니다.
빌려줄 수 없는 이유도 있는 것이, 남자친구는 아파트 분양을 받은 상태로, 빚이 있으며 중도금 이자도 갚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세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 나이(43살) 처먹고 여자문제로 돈 빌려달라는 사람은 최악 아냐? 직장도 있고. 부모님도 있는 데 뭐 하는 거람?"
이 말이 서운했는지 남자 친구와 저는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다투게 됩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저임금으로 아껴가며 생활 중입니다.
어제도 피자를 시켜 먹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라면을 끓여 먹었죠.
"오빠는 내가 나보다 열 살 넘게 어린애들 밑에서 굽신거리면서 일하는 거 몰라? 운전도 못하는데 겨우 면허 따서 아침마다 전쟁터 나가는 심정으로 나가는 데 내 생각은 안 해?"
"그건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하나도 안 불쌍해."
맞아요. 여기 들어온 것은 제가 돈 벌려고 선택한 길입니다.
돈 버는 건 자본주의 시대에서 좋은 일에 속하며, 해야 하는 일에 속하죠.
남자 친구도 금전적인 필요성을 느껴서 맞벌이를 처음에 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거든요.
근데 저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돈 벌려고 하는데, 남한테는 쉽게 그 돈을 빌려준다는 게...
나한테 돈 벌라고 말하며, 직장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이야기는 못하면서 못 받을 수 있는 100만 원은 빌려준다니.
용납이 안되더라고요.
저희 가족은 재산문제로 심하게 다툼을 한 집안입니다.
친할아버지가 용인의 땅 (현재 수백억의 가치)을 큰 아들에게 거의 다 물려주셨고 나머지 반도 안 되는 재산의 대부분을 둘째, 그리고 아주 조금씩을 고모 둘에게, 우리 부모님에게는 거의 물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더 웃기건 그 많은 수백억 재산은 큰 아들이 수년도 안 돼서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채 60이 되기 전에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고요..
나머지 재산을 받은 둘째아버지 역시 재산을 도박과 여자문제로 날려버립니다.
결국 집 하나 없이 지금은 스님이 되어 살고 계시네요.
가끔 엄마한테 용돈도 달라고 하시나 봐요.
엄마는 이 집에 시집올 때 셋째 아들이라 제사의 제도 생각하지 않았는 데 제사까지 현재 지내시고 계십니다.
더 슬픈 건 할아버지 생전 씀씀이가 커서 돈도 달라고 하셨나 봐요.
손에 든 선물이나 봉투를 보고 가볍게 느껴지면 인상부터 찌푸리셨다고 합니다.
"엄마, 엄마는 억울하지도 않아? 제사 왜 지내는 건데? 나 같음 밥에 침이라도 뱉었다."
"어쩔 수 없지. 땡중(둘째아버지)한테 지내면 수십만 원 돈 달라고 난리 치니까 내가 지내는 게 나아."
에고... 저희 엄마가 살아있는 보살이네요.
뿐만 아니라 IMF때 저희 집은 파산한 적이 있습니다.
그걸 만회하고자 부모님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고요. 저도 아버지가 검은색 중후해 보이는 세단을 타시다 마티즈로 차를 바꾸신 게 기억납니다.
알고 보니 고모부와 동업을 했는데, 쫄딱 망하고 빚까지 지신 거죠.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의 답은 없는 건데, 부모님은 너무 열심히 사셨습니다.
어렸을 적 길에 남이 버린 옷, 가구, 살림살이를 주워오셔서 깨끗이 씻어 사용하셨죠.
허투루 살림을 낭비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긴 합니다.
여기다 자세한 사항을 쓰긴 그렇지만, 저는 누군가의 거짓말에 의해서 시간, 금전적인 손해를 본 사람입니다.
그게 선한 의도였던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서로의 시간 낭비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돌다리로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며, '검은 머리 짐승 거두는 것이 아니다'가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될 줄 몰랐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재산싸움과 IMF, 결정적으로 누군가의 거짓말로 인하여 저는 꽤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겉으론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은 제 안에 야수가 살아있음을 실감합니다.
사기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거짓말이 밝혀졌던 그날의 기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겁니다.
아빠의 동업이 실패로 끝난 날, 엄마가 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오늘! 살아갈 가치가 없어!"이라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모릅니다.
세상이 동화 속 네버랜드처럼 평온하고, 서로를 위해주는 이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몇 년 살지는 않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가족이라고 해도 머리끄덩이 잡고 욕하면서 싸울 수도 있고, 잘 살아가더라도 갑자기 망할 수도 있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변하는 이 변동성 있는 세상을 모순적이게도 저는 껴안으려고 합니다.
능력이 없어서인지, 선택을, 때를 맞추지 못한 저는 최저시급을 받고 일합니다.
절약은 제가 세상에서 두 발로 버틸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어떤 것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지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던 바퀴벌레처럼요.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