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나의 색깔

by 거북이

10대시절에는 골 넣는 스트라이커가 되고 싶었다.

경기장 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화려한 주인공.


20대시절에는 도움을 주는 어시스트 플레이어가 좋았다.

직접 빛나기보다, 누군가의 성공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서 오는 성취감.


30대시절에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전반적인 경기 조율을 하는 수미형 미드필더가 되고 싶었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묵직한 중심이 좋다.


10대일때는 멀리서도 시선을 강탈하는 강렬한 빨간색이 좋았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알리고 싶던 열정과 패기.


20대일때는 나름 생각한다는 의미로 화이트를 좋아했다.

세런되고 깔끔하게, 정돈된 나를 보여주려 애쓰던 시절.


30대인지금은 튀지 않지만 깊은 무드가 있는 검은색이 좋다.

어떤 색과도 조화를 이루고, 모든 빛을 흡수해 흔들리지 않는 고유의 깊이를 담고 싶다.


10대일땐 예쁜 여자가 좋았다.

본능적인 매력과 열정적인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했다.


20대일 때는 몸매가 좋은 여자가 좋았다.

본능적인 매력과 열정적인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했다.


30대인 지금은 함께 있을 때 편한 여자가 좋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고요한 편암함, 그 안정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되는 관계.


10대일때는 친구들이 많은 것이 좋은 줄 알았다.

소속감과인싸라는 타이틀이 중요했기에.


20대일때는 꾸준히 연락하는 몇몇의 친구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현명하게 관리하는 어른의 방식이라 여겼다.


30대인 지금은 혼자가 좋다.

가장 편안한 내면의 대화에 집중하며, 타인의 시선 없이 오롯이 나에게 시간을 쓰는 충전의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의 색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튀어나오지 않고, 숨는 것이 좋아지고, 이대로 존재감이 사라질 것 같아 걱정했다.

어쩌면 사라진다고 해도 오히려 더 좋아할 것 같아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깨닫는다.

이것은 색이 얕아지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이며,

오히려 내 안의 색을 가장 선명하게 압축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수미형 미드필더처럼,

어둠 속에서 모든 빛을 품는 검은색처럼,

고요함 속에서 가장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안정감처럼.


나는 얕은 물살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고유한 깊이를 찾아가고 있다.


고립이 아니라, 비로소 나 자신에게로의 귀환이다.

나의 색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뚜렷하고 깊은 명도를 얻었다.

나는 잘 살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나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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