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따라잡기 : 감정인식능력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할 때였습니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둥글게 둘러앉아 교실 피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무릎 아래로 공을 굴려서 하는 피구놀이였는데 한 친구가 공을 피하다가 모르고 자기 뒤에 앉아있던 진수의 다리를 밟아버렸습니다. 밟은 친구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며 바로 사과를 했는데 진수는 친구의 사과를 못 들었는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재차 사과를 했지만 밟힌 친구는 공을 집어던지면서 "이딴 피구 다시 하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즐거웠던 교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다리를 밟은 친구는 더 이상 사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놀이를 진행할 수 없어 아이들을 다시 자리로 앉힌 뒤 진수가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줬습니다.
"진수야, 친구가 발을 밟아서 많이 아팠지?"
"아니요."
"그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질렀니?"
"나도 모르겠다고요!"
저는 그 아이가 더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후 화를 낸 것이 아파서인지, 그 친구가 미워서인지, 피구가 싫어서인지 이유를 하나하나 생각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면 아직 내 감정이 무엇인지 이름 붙이기 어려운 나이니까요.
요즘 초등학생들을 만나면서 예전과 크게 다르게 느끼는 점 중 하나는 "감정"에 관한 부분입니다. 부정적 감정이던지, 긍정적 감정이던지 감정을 올바로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 친구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 친구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올바로 처리하지 못해 스스로를 많이 힘들게 하고 다른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말한 진수도 그러한 친구였습니다.
내가 어떤 현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감정을 느꼈을 때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능력을 감정인식능력이라고 합니다. 감정인식능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감정과 관련된 생각과 행동, 말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실 감정인식은 어른들도 쉽지 않습니다. 감정인식을 잘하려면 먼저 무엇이 필요할까요?
감정에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감정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화가 난다'라는 것으로 말하기에는 그 뒤에는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있습니다. 분노, 짜증, 미움, 슬픔, 증오심.... 아이들에게 이러한 감정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 실제 삶에 예를 들면서 '아 이럴 때 드는 감정의 이름이 이것이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림책 : 42가지 마음의 색깔
진수를 비롯한 2학년 우리 반 아이들과 읽었던 42가지 마음의 색깔입니다. 아이들은 감정단어가 42가지나 된다는 것에 대해 먼저 놀랍니다. 그리고 '색깔'이라는 말을 들으며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감정에 색을 덧입힙니다. 이 책에는 포근함, 사랑, 미움, 화, 짜증, 긴장, 안심, 차분함, 행복, 기쁨, 슬픔, 측은함, 후회, 뉘우침, 부끄러움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과 그 감정이 만들어지는 상황 등이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아이들은 나름 자신이 자주 겪는 감정과 관련된 경험을 정리해 보고 색으로 표현도 합니다. 사실 감정에 대한 학습은 절대 하루아침에 끝날 수 없죠. 아이들과 감정에 대한 대화, 그때 들었던 생각, 내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 자주 대화하고 이때 할 수 있는 올바른 말과 행동에 대해 꾸준히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요.
어린이책을 읽으면 어린이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린이책이 어린이의 마음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새 학기인 요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아이들의 감정이 요동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야말로 아이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이를 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42가지보다 훨씬 더 다양한 우리의 감정을 바르게 알고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를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