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유연성 혹은 회복탄력성
얼마 전 과학의 날 수업을 할 때였습니다. 풀러렌 축구공에 담긴 다면체의 원리를 살펴보고 하나하나 조각을 끼워서 정오각형 12개와 정육각형 20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3학년 친구들 수준에서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합체 원리를 이해하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작업을 하면 금세 완성할 수 있는 과업입니다.
승민이는 평소 손이 빨라 뭐든지 금방 완성하는 친구이고, 스스로도 이 부분에 자신감이 있는 친구입니다. 먼저 정오각형 12개를 만드는 것은 승민이가 제일 먼저 완료했습니다. 승민이는 손이 느려 아직 다 완성하지 못한 친구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반 전체가 첫 번째 단계를 완료하고 다음 조립단계로 넘어갈 때였습니다. 성미가 급하고 이해력이 빠른 친구들은 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조립을 시작했습니다. 승민이도 그렇게 넘치는 자신감으로 설명을 듣지도 않고 조립을 시작했는데 그만 실수를 해서 육각형이 아닌 사각형이 나오도록 완성을 했고, 최종 축구공 모양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조립 단계에서 잘못 조립하게 되면 구조물을 다시 분해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상반된 학생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래. 이럴 때도 있지.
처음부터 다시 하지 뭐!
VS
아오, 난 망했어. 안 하고 말아!
안타깝게도 이 순간 후자의 선택을 하는 아이들의 비율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실수, 어려움을 만나면 아이들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바로 '망했어.'입니다.
승민이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가 결국엔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저의 도움도 거부한 채 구조물을 다 해체해 버리고 울기만 했습니다. 저는 일단 승민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다행히 승민이는 잠시 울다가 멈추고 실패한 친구들과 함께 차근차근 처음부터 축구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구조물을 완성해 냈습니다. 승민이가 스스로 해낸 것에 대해 저는 마음껏 격려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나 문제, 어려움들이 시시때때로 내 앞에 나타납니다. 그런 어려움들과 문제들을 하나하나 부딪쳐 해결해 가는 것이 아마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그런 인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적응유연성, 혹은 회복탄력성은 스트레스나 역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시련을 견뎌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특히 어린이에게 '시련을 견뎌낸다'는 것은 아이들의 능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를 의미합니다.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을 때 이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회복탄력성은 지난 연재 글에서도 언급한 정서지능의 요소인 감정조절력, 자기 통제력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문제의 원인을 생각해 보는 원인분석력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승민이는 갑작스러운 실패 상황에서 처음에는 혼자 우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잠시 힘들어하는 듯했지만 다시 친구들과 모여서 다시 작업하는 태도로 바꾸었습니다.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나갔습니다. 승민이의 태도에서는 회복탄력성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과의 소통능력과 그 관계를 통해서 나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자아 확장력과도 관련 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비가 온 다음 날, 한 소녀가 ‘어떻게 하면 웅덩이를 밟지 않고 건널 수 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소녀는 작은 웅덩이부터 커다란 웅덩이까지, 웅덩이를 밟지 않고 지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그 과정에서 소녀는 도망치거나 꼼수를 부리지 않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씁니다. 이처럼 이 책은 한 가지 ‘정답’보다는 소녀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리뷰 중>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두 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녀는 웅덩이라는 걸림돌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을 무려 아홉 가지나 생각해 냅니다.
하나, 눈과 귀를 모두 가리고 피해 가자
둘, 컴퍼스 전략을 세워 볼까?
셋, 캥거루 뜀뛰기도 좋아
넷, 외나무다리로 건너자
다섯, 징검다리를 만들어 볼까?
여섯, 친구 자전거를 타고!
일곱, 커다란 개를 타도 돼
여덟, 그네로 건너자
아홉, 곡예사 흉내를 내 보자
하지만 사실 이 방법 자체가 얼마나 효과적이냐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녀가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힐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올바르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려움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함께 마음을 나눌 때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마음의 바탕을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가길 희망합니다.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를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