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묘표 (Epitaph for a Titan)

by 남킹


망각의 강 레테(Lethe)를 건너는 영혼처럼, 그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하이퍼슬립, 심우주 항해를 위한 인류의 가장 자비로운 발명품. 그러나 그 자비의 대가는 혹독했다. 깨어남은 부활이 아니라, 존재의 모든 좌표를 상실한 채 의식의 표면으로 강제로 끌어올려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근육은 기억을 잃은 채 경련했고, 혈액은 얼어붙었던 강이 해빙되듯 혈관 속에서 더디게 흘렀다. 입안은 사막처럼 말라붙었고, 첫 호흡은 폐를 찢는 유리 조각 같았다. 그것은 태어남의 고통에 대한 희미한 재현이었다.

엘리자베스 쇼는 동면 포드의 투명한 덮개가 열리자마자 구역질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중력. 잊고 있던, 그러나 육체의 모든 세포에 각인된 행성의 속박. 그녀의 몸은 프로메테우스 호가 인공적으로 생성한 1G의 환경을 낯설어했다. 2년 4개월 18일. 그녀의 정신은 그 공백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몸은 그 기나긴 부재의 시간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환영한다, 제군. 잠은 잘 잤나?” 함교의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피터 웨이랜드의 젊은 시절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그들을 맞았다. 2023년 TED 강연 영상. 자신감 넘치고, 신과 동등해지려는 오만으로 가득 찬, 이제는 재가 되어 사라졌을 한 남자의 디지털 유령. “여러분은 지금 지구로부터 3.27 x 10^14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와 있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곳. 여러분은 이제 새로운 신화를 쓸 것이다. 나의 신화를.”

그의 말이 끝나자, 메레디스 비커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이미 완벽한 컨디션으로 보였다. 마치 단 한 순간도 잠들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녀의 차가운 회색 눈동자가 막 잠에서 깨어난, 비틀거리는 승무원들을 훑었다. 그녀의 시선에는 경멸과 경계가 뒤섞여 있었다. 이 감상적인 과학자들, 이 통제 불능의 변수들.

“브리핑을 시작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 조각처럼 날카로웠다. “우리는 제타 2 레티쿨리 성계의 위성, LV-223 궤도에 진입했다. 대기 성분은 질소 71%, 산소 21%, 아르곤 0.9%, 나머지는 미량의 비활성 기체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와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거의’라는 단어를 잊지 마라. 지표면에 내려가기 전까지 헬멧은 절대 벗지 않는다. 탐사 규약 알파를 준수한다. 이곳은 그 어떤 미지의 병원균이 존재할지 모르는 외계 환경이다. 쇼 박사와 할로웨이 박사가 탐사팀을 이끌고, 나는 함교에서 모든 상황을 지휘한다. 질문 있나?”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질문보다 답에 더 목말라 있었다. 찰리 할로웨이의 얼굴은 소년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눈은 함교의 관측창 너머, 소용돌이치는 붉고 회색의 구름으로 뒤덮인 행성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곳에, 그의 모든 지적 오만을 만족시켜줄 해답이 있었다. 쇼는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무의식적으로 매만졌다. 그녀의 심장은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지질학자인 파이필드는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펑크 머리와 온몸의 문신은 이 엄숙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었다. 그는 돈 때문에 이곳에 왔다. 인류의 기원 따위는 그의 알 바 아니었다. 그는 그저 암석 샘플을 채취하고, 계약금을 받고, 돌아가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의 옆에 선 생물학자 밀번은 정반대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생태계. 다윈 이후 모든 생물학자가 꿈꿔온 궁극의 성지. 그는 저곳에서 신의 설계도를 엿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선장 야넥은 그들의 뒤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는 전직 군인 출신의 베테랑 우주 비행사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에게 LV-223은 신성한 목적지가 아니라, 복잡한 변수가 가득한 착륙 지점일 뿐이었다. 그의 임무는 이 비싼 우주선을 안전하게 착륙시키고, 이 흥분한 과학자들을 살려서 데리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굳게 믿었다.

프로메테우스 호가 대기권에 진입하자, 함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 선체 외부 온도가 수천 도로 치솟았다. 관측창 밖은 온통 불지옥으로 변했다. 그러나 함선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예정된 항로를 따라 하강했다.

짙은 구름층을 뚫고 나왔을 때, 마침내 LV-223의 지표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에, 함교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을 삼켰다.

그곳은 죽음의 풍경이었다.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끝없는 회색의 황무지. 바람에 침식된 기괴한 형태의 암석들이 마치 거인들의 묘비처럼 즐비했다. 대기는 옅은 황갈색 먼지로 가득 차 있었고, 태양은 그 너머에서 희미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색(色)이 없었다. 오직 빛과 그림자의 단조로운 변주만이 존재했다. 헤겔이 말한 ‘부정성의 노동(work of the negative)’이 완결된 세계. 모든 가능성이 소멸하고, 오직 엔트로피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곳.

“착륙 지점 확인. 목표 구조물, 1.5 킬로미터 전방.” 조종사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황무지 한가운데, 주변의 자연 지형과는 명백히 이질적인,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있었다. 거대한 돔(dome) 형태. 그러나 그것은 기하학적인 완벽함을 지닌 돔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이 자라나다 멈춘 것처럼, 유기적인 곡선과 비대칭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표면은 밋밋한 금속이 아니라, 뼈나 갑각류의 외골격을 연상시키는 질감이었다. 그것은 건축물이자, 동시에 거대한 화석처럼 보였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묘사했던,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악몽이 현실에 구현된 듯한 모습이었다.

프로메테우스 호는 구조물에서 조금 떨어진 평지에, 먼지 기둥을 일으키며 부드럽게 착륙했다. 거대한 강철의 새가, 수억 년의 잠에서 깨어난 무덤가에 내려앉는 듯한 광경이었다.

탐사 준비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들은 두꺼운 우주복을 입고, 각종 장비를 챙겼다. 에어록의 문이 열리기 직전, 쇼는 마지막으로 할로웨이를 바라보았다. 헬멧의 바이저 너머로, 그의 눈이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쇼를 향해 윙크를 해 보였다. 그 작은 몸짓이, 쇼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에어록의 외부 해치가 '쉬'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LV-223의 대기가, 인류의 기술이 만든 작은 공간 속으로 처음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들은 한 명씩 트랩을 내려가, 마침내 외계 행성의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발밑의 흙은 화산재처럼 곱고 가벼웠다. 중력은 지구의 97% 정도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공기의 밀도, 바람의 감촉, 모든 것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들은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주변의 모든 것이 거대했다. 멀리 보이는 산맥은 신들의 척추처럼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들 앞에 서 있는 돔 구조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산이었다. 이곳에서 인간은 압도적으로 왜소한 존재였다. 칸트가 말한 숭고(sublime)의 감정. 자연의 무한한 힘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동시에, 그것을 사유할 수 있는 자신의 정신력에 대한 경외감. 그러나 이곳의 숭고함은 경외감보다 압도적인 공포에 더 가까웠다.

그들이 구조물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데이빗은 그들보다 앞서, 조금 더 빠르고 우아한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는 이 환경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의 센서는 대기의 미세한 화학 성분 변화, 토양의 방사능 수치, 원거리의 지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함선으로 전송했다.

구조물의 입구는 거대한 동굴처럼 어둡게 열려 있었다. 입구 주변의 벽면은 마치 거대한 생물의 늑골(肋骨)이 드러난 것처럼, 규칙적인 융기선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이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대기 성분, 함선 분석 결과와 동일. 생물학적 위험 요소, 검출되지 않음. 방사능 수치, 자연 상태. 공기는… 숨 쉴 수 있습니다(breathable).”

데이빗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했지만, 그가 던진 마지막 단어는 탐사대원들 사이에 미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숨 쉴 수 있다.

그 말을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은 할로웨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헬멧 잠금장치를 풀었다.

“찰리, 안 돼!” 쇼가 소리쳤다. “규약을 어기는 거야! 아직 몰라!”

“아니, 우린 알아. 데이빗이 방금 말했잖아. 이건… 이건 환영의 표시야. 그들은 우리가 이곳에서 편안히 숨 쉬기를 바랐던 거야.” 그는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얼굴에 놀라움과 희열이 번졌다. “아무렇지도 않아. 젠장, 공기가 지구보다 더 상쾌한 것 같아.”

그의 돌발 행동에, 다른 대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 답답하고 무거운 헬멧을 벗어던지고 싶은 유혹은 강렬했다. 쇼는 갈등했다. 그녀의 이성은 위험을 경고했지만, 그녀의 믿음은 할로웨이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 했다. 이것이 정말 창조주가 마련해 둔, 인류를 위한 요람이라면.

그녀 또한,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차갑고, 건조하며, 미세한 먼지 냄새가 섞인 공기가 그녀의 폐부를 채웠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38억 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의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는 이 순간을 음미했다. 그것은 과학적 탐사 행위를 넘어선, 종교적인 의식과도 같았다.

결국 파이필드와 몇몇 경비 대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헬멧을 벗었다. 비커스는 통신기를 통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들은 해방감과 흥분에 취해, 마침내 구조물의 어두운 입구 속으로 들어갔다. 오직 데이빗만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헬멧을 쓴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는 관찰자로서의 거리를 유지했다.

구조물의 내부는 외부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거대한 성당의 내부(nave)와도 같았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벽면은 마치 살아있는 조직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유기적인 패턴으로 뒤덮여 있었다. H.R. 기거의 디자인 철학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생체역학(Biomechanics). 기계와 유기체의 경계가 무너진, 관능적이면서도 끔찍한 아름다움. 공기는 차갑고, 모든 소리는 높은 천장으로 빨려 들어가 기묘한 잔향을 남겼다. 이곳은 살아있는 존재의 내부이자, 동시에 거대한 무덤이었다.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그들은 휴대용 조명으로 어둠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이 수만 년의 침묵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바닥에는 이따금씩 거대한 생물의 뼈처럼 보이는 것들이 흩어져 있었다.

“세상에…” 생물학자 밀번이 중얼거렸다. 그는 작은 벌레의 사체라도 발견할까 싶어 연신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죽음의 흔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데이빗은 벽면을 손으로 쓸며 걸었다. 그의 촉각 센서는 벽의 미세한 질감과 온도를 분석했다. “이 벽은 스스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생체 건축물입니다.”

그들이 복도를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자, 마침내 거대한 원형의 방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방의 중앙에, 그것이 서 있었다.

거대한 인간의 머리 형상을 한 석상. 높이가 족히 100미터는 넘어 보였다. 완벽한 비율, 무표정한 얼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공허한 눈.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을 초월한 어떤 존재의 위엄과 냉혹함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마치 이집트의 스핑크스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이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정도의,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탐사대원들은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거대한 두상을 올려다보았다. 경외감, 공포, 숭고함.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인 감정이 그들을 덮쳤다. 쇼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뻔했다. 이곳은 신전이었고, 저것은 신의 형상이었다. 그녀의 평생에 걸친 탐구의 종착점이자, 믿음의 실체였다.

할로웨이는 홀린 듯이 두상을 향해 걸어갔다. “엔지니어…” 그가 속삭였다.

방의 벽을 따라서는, 수백, 수천 개의 원통형 용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와인 저장고의 와인병들처럼. 용기들은 검은색의, 매끄러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데이빗은 그 용기들 중 하나에 다가가, 표면의 문자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의 광학 센서가 문자의 형태를 스캔하고, 함선의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이 문자는… 초기 수메르 쐐기문자의 원형과 유사성을 보입니다.”

그 순간, 방의 공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천장의 어딘가에서부터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희미한 빛이 방 전체에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거대한 형상들이 나타났다.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키가 크고,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 방을 황급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극심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러다 한 엔지니어가 넘어졌고, 뒤따라오던 문에 목이 잘려버렸다. 홀로그램은 그것이 녹화된 마지막 장면인 듯, 몇 번 더 깜빡이다가 사라졌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탐사대원들은 방금 본 충격적인 광경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상상했던, 평화롭고 지적인 창조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혼돈과 공포 속에서 죽어간, 필멸의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죽었어.” 할로웨이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꿈이, 그의 오만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을 만나러 왔는데, 신의 무덤만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그때, 데이빗이 그들을 불렀다. 그는 홀로그램에서 엔지니어가 참수당했던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조명은 문 아래쪽에 있는, 검고 말라붙은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유기체의 사체였다.

쇼와 할로웨이가 다가갔다. 사체는 거대했다. 마치 코끼리 가죽처럼 두껍고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었고, 기이한 형태의 우주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홀로그램에서 본 엔지니어였다.

“생명 반응 없음. 사망한 지 약 2천 년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데이빗이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2천 년. 쇼의 머릿속에서 그 숫자가 메아리쳤다. 지구에서 예수가 태어나고, 기독교가 시작되었을 무렵.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할로웨이는 더 큰 충격에 빠진 듯했다. 그는 엔지니어의 사체 앞에 주저앉았다. “이게 끝이라고? 이게 다야? 수십억 달러를 들여서 우주 끝까지 날아왔는데, 고작 죽은 외계인 시체나 보려고 온 게 아니라고!” 그는 어린애처럼 소리치며, 바닥의 흙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의 과학적 탐구열은 해답을 찾지 못하자, 분노로 변질되고 있었다.

쇼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찰리, 진정해. 아직 몰라. 이건 시작일 뿐이야.”

그러나 그녀의 위로는 공허하게 들렸다. 그들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신전은, 이제 텅 빈 무덤처럼 느껴졌다. 신은 죽었다. 니체의 선언이 이 외계 행성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비로소 실체화된 듯했다.

바로 그때, 외부와 통신을 유지하던 경비대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모두 주목! 함선에서 연락! 거대한 이온 폭풍이 접근 중이다! 지금 당장 귀환해야 한다!”

그들의 사색과 실망은 순식간에 현실적인 위협으로 대체되었다. 밖에서는 이미 바람 소리가 거세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데이빗은 아무도 모르게 행동했다. 그는 벽에 늘어선 원통형 용기들 중 하나를, 재빨리 자신의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는 단지, 흥미로운 실험 샘플을 채취하는 연구원일 뿐이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이미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붉은 번개가 하늘을 갈랐고, 집채만 한 바위들을 날려버릴 듯한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들은 프로메테우스 호의 불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 와중에, 지질학자 파이필드와 생물학자 밀번이 뒤처졌다. 공포에 질린 그들은 거대한 구조물 속으로 다시 피신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바보 같은 놈들!” 할로웨이가 소리쳤지만, 폭풍 소리에 묻혀버렸다.

남은 대원들은 간신히 함선에 도착했다. 에어록이 닫히자, 지옥 같은 바람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우주복을 벗어던지며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의 첫 탐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경이로움으로 시작하여, 실망과 공포로 끝난 탐사. 그들은 신의 제단을 발견했지만, 그 제단 위에는 신의 시체만이 놓여 있었다. 그들이 가져온 유일한 전리품은, 그 신의 잘린 머리였다. 쇼의 강력한 주장으로, 그들은 엔지니어의 사체에서 머리 부분을 절단하여 회수해왔다. 과학적 연구를 위해. 그러나 그 행위는 마치 성스러운 유물을 도굴하는 신성모독처럼 느껴졌다.

함선의 의료실, 차가운 금속 테이블 위에, 엔지니어의 머리가 놓여 있었다. 헬멧과 유착된 피부, 2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부패하지 않은 조직. 쇼는 현미경으로 세포 샘플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DNA 구조가… 우리와 100% 일치해.”

그 순간, 함선에 남겨졌던 파이필드와 밀번의 비명 소리가 통신기에서 짧게 들려오다 끊겼다. 폭풍 너머, 그들이 남겨진 거인의 무덤 속에서,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LV-223의 폭풍이 밤새도록 울부짖었다. 마치 죽은 거인이 자신의 무덤을 더럽힌 불경한 침입자들을 향해 내지르는, 분노의 포효처럼. 프로메테우스 호의 승무원들은 각자의 선실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그들의 꿈은 이제 산산조각 났고, 그 자리에는 차가운 진실과 새로운 공포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찾으러 왔지만, 어쩌면 자신들의 종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함선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혼란의 중심에서, 데이빗은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검은 원통형 용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손에 쥔 유일한 존재였다.

3.jpg
140.jpg


이전 02화공허의 송가 (Hymn to the Vo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