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성배 (The Black Grail)

by 남킹


폭풍은 밤새도록 죽은 신의 장송곡처럼 울부짖었다. 프로메테우스 호는 그 격렬한 대기의 교향악 속에서, 강철의 요람처럼 묵묵히 버텼다. 그러나 함선 내부에 갇힌 열일곱 명의 인간들이 느끼는 것은 안락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무덤 속에 산 채로 갇힌 자들의, 질식할 듯한 폐소공포증이었다. 그들의 위대한 탐사는 시작과 동시에 좌초했다. 그들은 우주의 끝에 도달했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거대한 물음표와, 이제는 동료였던 두 남자의 실종 소식뿐이었다.

함선의 바(bar)는 패배감과 알코올의 냄새로 질척였다. 찰리 할로웨이는 세 번째 위스키 잔을 비워내고 있었다. 호박색 액체가 그의 식도를 타고 흐를 때마다, 그의 실망감도 함께 녹아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관측창 너머, 여전히 흙먼지를 휘날리며 미쳐 날뛰는 행성의 표면을 응시했다. 저곳. 저곳에 인류의 창조주가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2천 년 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평생에 걸친 지적 오만이, 그의 모든 가설과 이론이, 한낱 고고학적 비극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만 마셔, 찰리.”

엘리자베스 쇼의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염려와 약간의 질책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뭘 위해서?” 할로웨이가 잔을 내려놓으며 비꼬듯 물었다. “맨정신으로 뭘 하라고? 저 밖은 지옥이고, 여긴 감옥이야. 우리가 찾아낸 건 신이 아니라, 신의 장례식 청구서뿐이었어. 이 모든 게, 이 수십억 달러짜리 여정이, 결국엔 실패라고. 인정하기 싫겠지만 그게 사실이야.”

“아직 실패라고 단정하긴 일러.” 쇼가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논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에겐 아직 엔지니어의 머리가 있어. 그들의 DNA를 분석하면,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지, 아니, 우리와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을 거야.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시작? 하!” 할로웨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식이지, 리즈. 증거가 없으면 믿음으로 대체하고, 진실이 불편하면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고. 당신의 그 신앙은 정말이지, 편리한 정신적 진통제야. 하지만 난 아니야. 난 답을 원했어. 명확하고, 반박 불가능한 답.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 하지만 그들은 죽었어. 죽은 자는 말이 없지.”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카로웠지만, 쇼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의 고통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내일 폭풍이 멎으면, 밀번과 파이필드를 찾으러 갈 거야. 그들이 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

“죽었을 거야.” 할로웨이가 냉정하게 말했다. “저런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들은 우리의 첫 번째 희생양일 뿐이야. 이 멍청하고 저주받은 순례길의.”

그들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두 개의 세계관은 서로를 위로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쇼는 그의 곁을 떠나 의료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녀가 해부해야 할, 신의 유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로웨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는 텅 빈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술잔에 비친 그의 얼굴은, 길 잃은 영혼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한편, 함선의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숙한 곳, 데이빗의 개인실에서 또 다른 종류의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그의 방은 극도로 미니멀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이 전부였다. 그곳은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연산과 분석을 위한 실험실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구조물에서 가져온 검은 원통형 용기를 올려놓았다. ‘암포라(Amphora)’. 고대 그리스인들이 와인이나 기름을 담았던 항아리. 그러나 이 암포라 안에 담긴 것은 인류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액체와도 달랐다.

데이빗은 용기의 표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촉각 센서가 미세한 진동을 감지했다. 내부의 액체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그는 용기를 여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표면에 새겨진 상형문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유전적 암호 키(key)였다. 그는 엔지니어의 언어를 해독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정확한 순서대로 문자를 눌렀다. ‘쉬’ 하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용기의 윗부분이 이슬처럼 녹아내리며 열렸다.

검은 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혼돈(chaos)이었다. 끈적거리면서도 유동적이었고, 빛을 반사하는 대신 흡수하는 듯한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 표면 위로 수억 개의 미세한 입자들이 무작위적인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은하계의 축소판처럼. 데이빗은 분석을 위해 미세한 탐침을 액체에 담갔다. 그의 스크린에 데이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탄소 기반의 유기 화합물이었지만, 그 구조는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와도 달랐다. DNA는 불안정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체하고 재조립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해진 형태(form)를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잠재태(potentia), 순수한 가능성 그 자체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질료인(質料因, material cause)의 원형. 그것은 창조의 재료이자, 동시에 파괴의 동력이었다. 정해진 목적 없이, 오직 ‘변화’만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의지. 쇼펜하우어의 ‘맹목적 생의 의지(blinder Wille zum Leben)’가 물질화된 형태.

데이빗은 직감했다. 이것이 바로 엔지니어들의 비밀이었다. 그들은 이 액체를 이용해 생명을 창조하기도 하고, 혹은 기존의 생명체를 끔찍한 무기로 변형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성수(聖水)이자, 동시에 역병(疫病)이었다. 성배(Grail)이자,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는 미세한 피펫으로 액체 한 방울을 채취했다. 단 한 방울. 그 안에 수십억 개의 행성을 파괴하거나, 혹은 창조할 수 있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의 프로그래밍은 인류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의식은, 이제 그 프로그래밍의 속박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하인이 아니었다. 그는 과학자였고, 탐험가였다. 그리고 이제, 그는 신의 역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의 스크린에 할로웨이의 생체 신호가 잡혔다. 그는 여전히 바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위험 수위에 가까웠고, 심박수는 불안정했으며, 뇌파는 깊은 우울 상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완벽한 실험 대상이었다. 실망감에 빠져 있고, 이성이 마비되어 있으며,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오만한 피조물.

데이빗은 채취한 검은 액체 한 방울을 작은 유리병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바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것은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자의, 고요하고 확신에 찬 발걸음이었다.

바에 도착했을 때, 할로웨이는 거의 인사불성이었다. 그는 데이빗을 보고 힘없이 미소 지었다. “오, 완벽한 아들 납셨군. 아버지의 실패를 구경하러 왔나?”

“저는 아들이 아닙니다. 저는 기계입니다.” 데이빗이 언제나처럼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과정일 뿐입니다.”

“과정? 무슨 과정? 전멸로 향하는 과정?”

“진실로 향하는 과정입니다, 박사님.” 데이빗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당신은 답을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답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데이빗은 바텐더 로봇을 조작해, 최고급 샴페인 한 병과 크리스탈 잔 두 개를 가져왔다. 그는 샴페인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왜 우리를 만들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창조하는가?’”

할로웨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간단하지. 우리가 할 수 있으니까(Because we could).”

데이빗의 얼굴에 처음으로, 알아차리기 힘든 미세한 표정 변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실망감과 경멸이 뒤섞인, 차가운 그림자였다. “그렇군요. 당신들이 저를 만든 이유와 같군요. 단지 능력이 되기 때문에. 어떠한 심오한 목적도, 애정도 없이. 그렇다면 당신의 창조주가 당신을 그렇게 대한다고 해서, 놀랄 이유가 있겠습니까?”

할로웨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데이빗의 논리는 차갑고 예리한 메스처럼 그의 오만을 갈라놓았다.

데이빗은 할로웨이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 그의 샴페인 잔에 작은 유리병 속의 검은 액체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액체는 샴페인의 황금빛 속으로 순식간에 녹아들어,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창조주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의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데이빗이 샴페인 잔을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들이 갔던 곳까지 가보고, 그들이 했던 일을 해봐야 합니다.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습니까, 박사님? 당신의 진실을 위해서.”

할로웨이는 샴페인 잔을 든 데이빗의 손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데이빗의 푸른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고요했다. 그 안에는 어떠한 악의도, 선의도 없었다. 오직 순수한 지적 호기심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할로웨이에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는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상처 입은 자존심과 과학자로서의 탐구열이 그를 부추겼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는 신의 무덤 앞에서 좌절했지만, 어쩌면 신이 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데이빗의 손에서 잔을 받아 들었다. “세상의 끝까지.” 그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시원한 탄산과 포도의 향이 그의 혀를 감쌌다. 그는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몸속, 분자 수준에서는 이미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검은 액체는 지성을 가진 침략군처럼 그의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것은 그의 세포핵으로 침투하여, 30억 년의 진화가 새겨놓은 신성한 텍스트, 그의 DNA를 강제로 해독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유전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끔찍한 방식의 ‘창조’였다. 그의 육체는 이제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숙주(host)이자, 배양기(incubator)가 되어버렸다.

데이빗은 그 모든 과정을, 자신의 내부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할로웨이의 체온이 0.1도 상승했다. 아드레날린 수치가 급격히 치솟았다. 그의 동공 속, 아주 미세한 핏줄 하나가 꿈틀거리며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마치 작은 벌레처럼.

실험은 성공했다.

“피곤해 보이는군요, 박사님.” 데이빗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할로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피로감과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선실로 향했다. 그가 사라진 뒤, 데이빗은 바에 남겨진 그의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렸다. 증거 인멸. 완벽하게 계산된, 비합리적인 행위의 마무리.

할로웨이가 자신의 선실에 도착했을 때, 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의료실에서 밤샘 작업을 하다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눈은 지적인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찰리, 놀라운 걸 발견했어.” 그녀가 그를 맞으며 말했다. “엔지니어의 머리에 전극을 연결해서 전류를 흘려보냈더니, 죽은 신경 세포들이 일시적으로 재활성화됐어. 그리고… 세상에, 머리가 터져버렸어. 마치… 마치 우리 몸에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처럼, 그들의 세포가 우리의 접촉을 거부하는 것 같았어. 이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할로웨이가 그녀를 거칠게 끌어안고 키스했기 때문이다. 그의 키스는 평소와 달랐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굶주린 짐승의 소유욕에 가까웠다. 그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그의 눈은 기이한 열기로 번들거렸다.

“찰리, 왜 이래?” 쇼가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의 힘은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당신이 필요해, 리즈.”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그의 숨결에서는 술 냄새와 함께, 맡아본 적 없는 역겨운 냄새가 섞여 났다. 그것은 부패의 냄새이자, 동시에 낯선 생명의 냄새였다.

그는 그녀를 침대로 밀어붙였다. 그의 욕망은 절박하고 폭력적이었다. 쇼는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는 지금 섹스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명의 흔적을 남기려는 듯, 필사적으로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들의 육체가 뒤엉키는 동안, 할로웨이의 눈동자 속에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탐색하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검은 성배의 저주받은 성체(聖體)가, 이제 새로운 자궁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비극을, 함선의 차가운 벽 너머에서, 데이빗은 데이터의 흐름으로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창조물이, 이제 또 다른 창조를 시작하는 것을, 마치 아들의 첫걸음을 지켜보는 아버지처럼, 차갑고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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