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 이전에는 돌이 있었다. 시간의 중력에 짓눌려 제 존재의 밀도 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었던, 원소들의 차가운 합의체. 그리고 그 돌의 침묵을 깨는 것은 언제나 물이었다. 스코틀랜드 스카이섬의 새벽은, 물의 언어로 축축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대서양의 포말이 현무암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는 욥의 탄식처럼 장구했고, 이탄(泥炭)을 흠뻑 적신 안개는 태고의 기억처럼 질척였다. 그 기억의 자궁 속으로, 두 개의 인영(人影)이 하강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쇼와 찰리 할로웨이. 21세기라는 오만한 시대가 낳은, 가장 총명하고도 저주받은 탐구자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지표면 아래, 행성의 내장을 향해 레펠을 타고 있었다. 암벽을 긁는 카라비너의 금속성 마찰음만이 수직의 정적에 간헐적인 흠집을 냈다. 쇼의 헤드램프가 비추는 원추형의 빛 속에서, 축축한 암벽은 땀 흘리는 거인의 피부처럼 번들거렸다. 벽면을 따라 흐르는 물방울 하나하나에 수천 년의 용해(溶解)와 침윤(浸潤)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쇼는 자신의 호흡마저 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불경한 소음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무덤이자, 동시에 태반이었다. 인류라는 종(種)이 아직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시절의 꿈이 화석처럼 굳어있는 곳. 그녀는 과학자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제단에 들어서는 순례자의 경건함으로 충만했다.
“산소 농도 20.8퍼센트. 이산화탄소 410ppm. 라돈 수치 안정권. 대기는 깨끗해, 리즈.”
인터컴을 통해 들려오는 할로웨이의 목소리는 그녀의 명상적 침잠을 깨뜨리는 명징한 현실의 언어였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세계를 측정 가능한 데이터의 집합으로 환원시키는 남자. 그에게 이 동굴은 신성한 공간이 아니라, 가설을 입증할 데이터를 품은 현장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발견을 눈앞에 둔 지성인의 흥분과,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과학적 오만이 기분 좋게 뒤섞여 있었다.
쇼는 대답 대신, 로프를 잡은 장갑 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합성 섬유의 감촉과, 그 너머 암벽의 냉기가 대조적이었다. 하나는 인간의 발명품, 다른 하나는 행성의 살. 그녀는 이 둘의 경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아버지의 유품인 낡은 십자가가 차가운 금속성을 피부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과학적 이성과는 양립 불가능한, 그러나 그녀의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단단한 핵이었다. 신앙. 증명할 수 없기에 더욱 절실한 믿음. 할로웨이는 그것을 ‘아름다운 아포리아(aporia)’라 불렀다. 해결 불가능한 막다른 길, 그러나 그 자체로 완결된 논리. 그는 그녀의 믿음을 사랑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들의 발이 동굴 바닥에 닿았다. 거대한 암피테아트룸(amphitheatrum)과 같은 공간이었다. 수만 년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린 탄산칼슘이 빚어낸 종유석과 석순들이 천장과 바닥에서 서로를 향해 자라나고 있었다. 마치 신들의 잊혀진 신전 기둥처럼. 공기는 무거웠다. 흙과 돌과 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시간’의 냄새가 났다. 할로웨이는 휴대용 분광 분석기를 꺼내 들고 주변의 암석 성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레이저 포인터처럼 차갑고 정밀하게 움직였다.
반면 쇼는 그저 서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폐부 깊숙이 이 고대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가 이 공간의 정적과 공명하는 듯했다. 그녀는 이 동굴을 찾기 위해 수메르의 점토판, 이집트의 파피루스, 마야의 석비, 하와이의 암각화를 헤맸다. 서로 다른 문명, 다른 시대, 다른 대륙.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의 꿈을 꾸고 있었다. 하늘의 특정 좌표를 가리키는 거인의 형상. 그것은 인류라는 종이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原型)처럼 보였다. 융(Carl Jung)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신화는 개인의 꿈이 사회적으로 발현된 형태이며, 인류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동일한 상징을 반복적으로 꿈꾼다.
“이쪽이야, 리즈. 와서 이것 좀 봐.”
할로웨이의 목소리가 동굴의 음향학적 구조를 타고 낮고 깊게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쇼는 걸음을 옮겼다.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 비교적 평평하고 건조한 암벽이 제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것이 있었다.
3만 5천 년 전, 빙하기의 추위 속에서 한 크로마뇽인이 들소의 지방과 산화철을 섞어 만든 붉은 안료로 그려낸 그림. 그 형상은 조악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시간을 관통할 만큼 강력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가,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다섯 개의 점이 특정한 배열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옆에는 거대한 짐승의 그림이, 마치 그들을 지켜보는 수호신처럼 그려져 있었다.
할로웨이는 이미 휴대용 스캐너로 그림의 3차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희열로 상기되어 있었다. “3만 5천 년이야. 오차범위 플러스마이너스 5백 년. 지금까지 우리가 찾은 것 중에 가장 오래됐어. 이집트의 것보다 3만 년, 수메르의 것보다 3만 2천 년은 앞선다고. 이건… 이건 모든 것의 시작이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것은 인류학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발견이었다. 그러나 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연대 측정 수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림 속 인물의 자세에 주목했다. 그것은 경배의 자세였다. 숭배와 갈망이 뒤섞인,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 보내는 필사적인 신호. 저 다섯 개의 별은 단순한 좌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의 땅이며, 돌아가야 할 고향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어.” 할로웨이가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과학적 흥분은 어느새 종교적 황홀경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건 지도야, 리즈. 전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 지도.”
“초대일까, 찰리? 아니면 경고일 수도 있지.” 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지만, 그 대가로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야.”
“신화는 패배자들의 변명일 뿐이야. 우리는 더 이상 동굴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지어내는 원시인이 아니야. 우리는 직접 그곳에 갈 수 있어. 가서 직접 물어볼 수 있다고. ‘왜 우리를 만들었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단 말이야.”
그의 눈은 헤드램프 빛을 받아 광적으로 빛났다. 그 순간, 쇼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웠다. 그의 지성은 너무나 눈부셔서, 그 빛에 가려진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지식에 대한 탐욕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 그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암벽에 손을 뻗었지만, 차마 대지는 못했다. 그녀의 손가락과 3만 5천 년 전의 그림 사이에는 몇 밀리미터의 간격, 그러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의 단절이 존재했다.
이 그림은 누구의 꿈이었을까. 이 벽에 그림을 남긴 고대인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그 고대인에게 이 별자리를 보여준 ‘그들’의 꿈이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발견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야말로, 죽음을 앞둔 늙은 억만장자, 피터 웨이랜드가 꾸는 한낱 꿈의 일부는 아닐까? ‘나는 누구의 꿈인가.’ 쇼의 머릿속에서 철학적 질문이 똬리를 틀었다. 모든 존재는 타자의 꿈이라는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은 단순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우주적 무의식이 잠시 동안 상상해 낸, 덧없는 등장인물일 뿐일지도.
“데이터 수집 완료했어. 이제 올라가자. 웨이랜드에게 보고해야지. 그는 이 소식을 들으면 아마 관에서 벌떡 일어날걸.” 할로웨이가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그의 어조는 다시 가벼운 농담조로 돌아와 있었다.
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여전히 그림에서 떼지 못했다. 붉은 안료로 그려진 거인의 형상. 그는 인간을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인간과 함께 하늘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했다. 기표(signifiant)는 명확했지만, 기의(signifié)는 심연처럼 모호했다. 그녀는 자신의 믿음이 이성과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변증법적 고통을 느꼈다. 이 그림은 신의 존재를 암시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자, 동시에 신을 과학의 해부대 위에 올려놓으려는 가장 불경한 시도의 출발점이었다.
동굴을 빠져나오는 길은 내려올 때보다 훨씬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의 등 뒤에서, 3만 5천 년의 침묵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침묵의 성격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것은 더 이상 망각의 침묵이 아니었다. 비밀을 간직한 자의, 의미심장한 침묵이었다.
지상으로 나왔을 때, 스카이섬의 바람은 그들을 마치 이물질처럼 거칠게 몰아붙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아우성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헤더 군락, 포효하는 파도, 비에 젖은 양들의 울음소리. 동굴 속의 영원과도 같던 정적과는 너무나 다른, 생명의 소란스러움. 그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귀환한 여행자처럼 잠시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들의 작업복은 흙과 돌가루로 더러워져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와 흥분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들이 빌린 낡은 랜드로버에 올랐을 때, 할로웨이는 위스키 플라스크를 꺼내 쇼에게 건넸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보란 듯이 병나발을 불고는, 만족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젠장, 리즈. 우린 역사를 만들었어. 아니, 역사를 끝내러 가는 거야. 이제 ‘믿음’의 시대는 끝났어. ‘앎’의 시대가 시작되는 거지.”
“무엇을 안다는 거야, 찰리?” 쇼가 창밖의 황량한 풍경을 보며 물었다.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와이퍼가 빗물을 닦아낼 때마다, 세계는 잠시 선명해졌다가 다시 흐릿해지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유전 공학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게 우리에게 구원을 줄까? 아버지를 만났는데, 그 아버지가 우리를 실수로, 혹은 심심풀이로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떡할 건데?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때로는 믿음이 진실보다 더 큰 위안을 주니까.”
“위안? 난 위안 따위를 찾아 우주 끝까지 가려는 게 아니야. 난 진실을 원해. 그게 아무리 끔찍하고 추악하더라도. 당신의 신은 답을 주지 않아. 침묵할 뿐이지.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그들은 답을 줄 거야.”
그는 ‘엔지니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쇼가 찾아낸 고대의 기록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창조주’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그가 붙인 가칭이었다. 모든 것을 설계하고 제작한 자들. 그 단어에는 신에 대한 경외심 대신, 기술자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할로웨이에게 그들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과 이해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논쟁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위태롭게 봉합되어 있을 뿐, 그들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했다. 차가 숙소인 작은 코티지로 향하는 동안, 그들의 대화는 단절되었다. 차 안에는 엔진 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두 개의 고독한 지성(知性)이 내뿜는 침묵의 장력(張力)만이 가득했다.
코티지에 도착하자, 이탄을 때는 벽난로의 냄새가 그들을 맞았다. 문명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온기. 그들은 젖은 옷을 벗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마치 동굴 속에서 그들을 감싸던 고대의 시간을 씻어내는 정화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의 피부에 새겨진 기억까지 씻어낼 수는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쇼는 타월로 젖은 머리를 감싼 채, 벽난로 앞에 앉아 불꽃을 바라보았다. 춤추는 불꽃 속에서, 그녀는 동굴에서 본 붉은 그림의 환영을 보았다. 그때, 할로웨이가 그녀의 뒤에 다가와 어깨를 감쌌다. 그의 몸에서는 위스키와 비누 냄새가 섞여 났다.
“미안해.”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너무 흥분했어.”
“알아.” 쇼가 대답했다. 그녀는 그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의 손은 뜨거웠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아, 리즈. 모든 게 의미 없어질까 봐 두려운 거지? 당신의 믿음, 당신 아버지의 죽음, 당신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모든 것들이.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설령 우리가 그들의 실험체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사실이 우리가 여기서 느끼는 이 온기, 이 순간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아.”
그는 그녀를 돌려세워 마주 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벽난로의 불꽃이 일렁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야. 누가 우리를 만들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야.”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쇼는 그 이면에 숨겨진 논리적 비약을 보았다. 자유의지는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의 모든 선택이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의 발현이라면? 창조주가 설정한 경계 안에서의 선택을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언어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다. 언어는 언제나 대상을 분절하고 분석하며, 그 과정에서 본질을 놓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합일(合一)이었다. 두 개의 분리된 세계관이, 두 개의 고독한 육체가 잠시나마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것.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그것은 단순한 키스가 아니었다. 두 개의 상반된 질문이 서로에게 던지는, 답을 갈구하는 처절한 몸짓이었다. 그의 키스는 탐구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마치 미지의 행성을 탐사하듯,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녀의 키스는 수용적이고 깊었다. 그녀는 그의 모든 회의와 오만을, 그녀의 믿음이라는 심연 속으로 끌어안으려 했다.
그들의 몸이 낡은 양탄자 위로 쓰러졌다. 벽난로의 불빛이 그들의 나신(裸身)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근육의 수축과 팽창, 피부에 맺히는 땀방울, 가빠지는 호흡. 모든 것이 하나의 원초적인 리듬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할로웨이의 몸은 잘 훈련된 기계처럼 정교하고 강력했다. 그의 모든 움직임에는 목적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육체라는 성전을 정복하려는 듯,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쇼는 그의 움직임을 모두 받아냈다. 그녀의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였다. 그 안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슬픔과 신비가 공존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자궁에 구조적 결함이 있어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도록 설계되었으나,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모순된 공간이었다. 그녀의 불임(不妊)은 그녀 개인의 비극이자, 동시에 인류 전체의 창조적 불모 상태에 대한 상징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기에, 인류는 기어이 자신들의 창조주를 찾아 우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아닐까.
육체의 격렬한 탐닉 속에서, 그들은 잠시나마 각자의 고독을 잊었다. 과학과 신앙의 대립도, 존재론적 불안도, 끈적한 땀과 체액의 교환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것은 쾌락을 넘어서는, 필사적인 행위였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 할로웨이는 그녀의 안에서 절정을 맞이하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절규를 토해냈다. 그것은 승리의 함성이자, 패배의 탄식처럼 들렸다.
모든 것이 끝난 후,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껴안고 누워 있었다. 벽난로의 불씨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창가로 다가가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억, 수십억 개의 별들이 침묵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저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 속에서, 그들이 찾아낸 다섯 개의 점은 어디쯤 있을까.
“이제 곧 떠나게 되겠지.” 쇼가 유리창에 입김을 불며 말했다.
“그래.” 할로웨이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대답했다. “프로메테우스 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그들의 시선은 다시 하늘로 향했다. 저 별들 중 하나가, 이제 그들의 운명이 될 터였다. 인류의 요람이자, 무덤이 될지도 모를 곳. 쇼는 목에 걸린 십자가를 매만졌다. 할로웨이는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그들은 함께 같은 별을 보고 있었지만, 그 별의 의미는 서로에게 전혀 달랐다. 한 명에게는 구원의 약속이었고, 다른 한 명에게는 해부해야 할 거대한 미스터리였다.
그들의 여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길을 잃은 순례자였다. 그들은 답을 찾기 위해 떠나지만, 그들이 발견할 것은 아마도 더 거대한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의 끝에서, 그들은 결국 ‘나는 누구의 꿈인가?’라는 섬뜩한 독백과 마주하게 될 운명이었다. 스카이섬의 밤하늘 아래, 두 연인은 서로의 온기에 의지한 채, 곧 닥쳐올 거대한 공허의 꿈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그 꿈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창조주의 미소일지, 혹은 심연의 냉소일지 아무도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