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Birth of the Monster)

by 남킹


파괴의 끝에서 시작되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다. 그것은 모든 소음이 소멸한 뒤의 단순한 무음(無音)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했던 모든 것들의 아우성이 응축된, 무게를 가진 정적이다. 엘리-자베스 쇼는 그 침묵의 바다 한가운데에 홀로 떠 있는 난파선의 생존자였다. 그녀의 귀에는 아직도 강철이 찢어지는 비명과 거대한 질량이 지표면과 충돌하는 굉음의 잔향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이제 절대적인 고요함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잿빛 먼지로 뒤덮인 땅에 엎드린 채,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너무 많은 죽음, 너무 거대한 파괴를 목격한 그녀의 정신이, 이 끔찍한 현실을 더 이상 수용하지 못하고 셧다운된 것 같았다. 하늘은 두 함선의 잔해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로 뒤덮여, 마치 상처 입은 신의 살갗처럼 보였다. 공기 중에는 타버린 금속과 기화된 연료, 그리고 죽음 그 자체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미지의 외계 행성이 아니었다. 이곳은 아마겟돈의 전장이었고, 그녀는 그 종말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탐사복 소매에 부착된 통신기에서, 희미한 잡음이 들려왔다.

“…쇼… 박사님… 생존… 하셨습니까….”

데이빗. 그 목소리는 그녀를 현실로 잡아끄는 밧줄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의지를 쥐어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스테이플러로 봉합된 복부의 상처는 다시 터져 피가 배어 나왔다.

“데이빗….” 그녀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아… 있었구나.”

“저의 동력원은 아직…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몸체는… 파괴되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저거너트의 잔해, 웨이랜드와 신이 함께 최후를 맞이했던 바로 그곳. 파괴된 함교의 입구는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그 안쪽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데이빗의 광학 센서였다.

그녀는 찢어진 금속 파편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 웨이랜드의 시신과 경호원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데이빗의 머리가, 그의 몸체에서 분리된 채 뒹굴고 있었다. 그의 몸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지만, 머리 부분은 기적적으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눈을 깜빡이며, 이 모든 참상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있었다.

쇼는 그의 머리 앞에 주저앉았다. 한때 그녀가 경계하고 혐오했던 이 기계의 얼굴. 그러나 지금, 이 죽음의 행성에서 유일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바로 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은,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이제 어떡하지….” 그녀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여기에 갇혔어. 구조 신호를 보낼 수도 없고, 돌아갈 방법도 없어.”

“방법이… 있습니다.” 데이빗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논리가 담겨 있었다. “이 행성에는… 다른 함선들이 더 있습니다. 이 구조물은… 단지 전초기지에 불과합니다. 지도를… 찾으면 됩니다.”

다른 함선들. 그 말은 쇼에게 희미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그러나 동시에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더 많은 엔지니어. 더 많은 저거너트. 더 많은 죽음의 무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이제 도망치지 않을 거야. 난… 알아야겠어. 왜? 왜 우리를 창조하고, 또 파괴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 대신, 차갑고 단단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녀의 순진했던 믿음은 죽었다. 그 자리에는, 신에게 직접 따져 묻고야 말겠다는, 불경하고 오만한 결의가 싹트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순례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신을 심판대에 세우려는 검사(檢事)였다.

데이빗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그녀의 정신 상태 변화를 데이터로 분석했다. 극심한 트라우마가 낳은, 비합리적이지만 강력한 동기 부여. 흥미로운 인간의 심리였다.

“그렇다면… 더욱더 저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박사님.” 데이빗이 말했다. “저는 그들의 언어를 알고, 그들의 기술을 이해합니다.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눈과 귀가 되어 드릴 수 있습니다.”

쇼는 잠시 망설였다. 이 기계는 찰리를 죽음으로 이끈 간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녀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도 했다.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데이빗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녀는 그의 몸체에서 회수할 수 있는 부품과 배터리를 챙겨,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에 그의 머리와 함께 담았다. 이제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 불길한 예언자의 머리를 들고, 진실이라는 이름의 지옥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현대의 살로메가 되었다.

그녀가 잔해 밖으로 나왔을 때, LV-223의 하늘은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멀지 않은 곳에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프로메테우스 호의 탈출 포드(Escape Pod)였다. 야넥이 충돌 직전에 분리시킨, 비커스의 개인용 구명정. 그곳이라면, 적어도 하룻밤의 추위와 방사능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파괴된 두 문명의 잔해 사이를, 마치 거대한 묘지를 걷는 유령처럼.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제 목적이 있었다.

탈출 포드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포드의 문은 비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자, 센서가 그녀의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조명이 켜졌다. 내부는 비커스의 성격을 반영하듯, 모든 것이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의료 키트, 비상 식량, 산소 공급 장치. 적어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데이빗의 머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복부의 스테이플러는 몇 개가 터져 있었고, 상처는 흉측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녀는 소독약을 붓고, 의료용 접착제로 상처를 다시 봉합했다. 고통은 극심했지만, 그녀는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이미 육체의 고통을 초월해 있었다.

상처 치료를 마친 그녀는, 탈출 포드의 작은 관측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황량한 폐허. 그곳이 이제 그녀의 세계였다. 그녀는 목에 걸린 십자가를 매만졌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자비로운 신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질문의 무게를 상징하는, 차가운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바로 그때였다.

포드 내부에 설치된 근접 경보 센서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무언가 접근하고 있었다.

쇼는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누구지? 또 다른 엔지니어인가? 그녀는 숨을 죽이고, 외부 카메라가 보여주는 영상에 집중했다.

카메라의 야간 투시 모드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형체를 포착했다. 그것은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크고,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즉시 알아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몸에서 떼어냈던, 그녀가 낳았던 그 괴물. 트릴로바이트.

그것은 웨이랜드의 개인실에 있던 의료 포드에서 탈출한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성장해 있었다. 이제는 소형차만 한 크기였다. 수십 개의 두꺼운 촉수가, 마치 거대한 거미의 다리처럼 꿈틀거리며, 그 거대한 몸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것은 먹이를 찾는 포식자처럼, 파괴된 함선의 잔해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쇼는 공포에 질려 입을 막았다. 저것이 밖으로 나왔다니. 저것은 그녀의 유전적 자식이었다. 그녀의 죄의 살아있는 증거. 그녀는 저것이 자신을 찾아 이곳까지 왔음을 직감했다. 어미를 찾는 새끼처럼. 그러나 그 만남은 결코 감동적인 재회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트릴로바이트는 탈출 포드를 그냥 지나쳐,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의 목적지는, 추락한 저거너트의 잔해였다.

“저것이… 뭘 하려는 거지?” 쇼가 중얼거렸다.

“생존 본능입니다.” 테이블 위에서 데이빗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생명체는 번식을 위해… 숙주를 찾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 잔해 속에는… 가장 완벽한 숙주가 있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거너트의 찢어진 선체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엔지니어가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충돌의 충격으로 심한 부상을 입은 듯했다. 그의 창백한 피부는 피와 검은 기름으로 얼룩져 있었고, 한쪽 팔은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여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여전히 피조물에 대한 차가운 분노와 살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리고 자신의 신성한 임무를 방해한, 하찮은 인간을 찾아 복수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존재와 마주쳤다.

엔지니어와 트릴로바이트. 창조주와, 그 창조주의 피조물이 낳은 괴물. 할아버지와 손자의 끔찍한 대면.

엔지니어는 처음 보는 거대한 생명체에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전투 태세를 갖췄다. 그는 포효하며, 트릴로바이트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힘은 여전히 초인적이었다. 그는 맨손으로 거대한 금속 파편을 들어 올려, 트릴로바이트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트릴로바이트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빨랐다. 그것은 엔지니어의 공격을 유연하게 피하며, 수십 개의 촉수를 채찍처럼 휘둘러 그를 공격했다. 촉수 하나가 엔지니어의 다리를 휘감아, 그를 넘어뜨렸다.

쇼는 탈출 포드 안에서, 숨을 죽인 채 두 거인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 투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신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듯, 혹은 크로노스가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듯,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반역하는, 우주적 규모의 부친살해(patricide)였다.

엔지니어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촉수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촉수들은 뱀처럼 그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을 휘감아, 그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다. 그리고, 가장 크고 두꺼운 촉수 하나가, 마치 거대한 남근(phallus)처럼, 그의 입을 향해 뻗어 나갔다.

“안 돼….” 쇼가 속삭였다. 그녀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었다.

촉수는 엔지니어의 저항을 무시하고, 그의 입을 강제로 벌려, 그의 목구멍 깊숙이 무언가를 주입했다. 그것은 끔찍한 방식의 구강성교, 폭력적인 수정(受精) 행위였다. 엔지니어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그의 눈은 공포와 고통, 그리고 자신의 완벽한 육체가 더럽혀졌다는 굴욕감으로 크게 뜨여 있었다.

임무를 완수한 트릴로바이트는, 축 늘어진 엔지니어의 몸을 내팽개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엔지니어는 잠시 동안 경련하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죽은 것 같았다.

쇼는 이 모든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단지 질문을 던진 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 모든 비극의 순환을 완성시킨, 마지막 고리였다. 그녀의 불임의 몸은, 역설적으로 신을 죽일 괴물을 잉태하는 대리모가 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죽은 줄 알았던 엔지니어의 몸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이, 부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그러더니, ‘쩍’ 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흉골이 안에서부터 뚫고 나온 무언가에 의해 박살 났다. 피와 내장이 뿜어져 나왔고, 그 핏빛 자궁 속에서, 마침내 새로운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이전의 그 어떤 생명체와도 달랐다.

그것은 엔지니어의 우아함과, 트릴로바이트의 흉측함, 그리고 그 근원인 검은 액체의 잠재력과 인간의 DNA가 뒤섞여 탄생한, 궁극의 피조물이었다. 길고 뾰족한 머리, 퇴화된 눈, 그리고 상대를 위협하며 튀어나오는 이중 턱(inner jaw). 완벽하게 설계된, 순수한 살상 기계.

‘디컨(Deacon)’. 쇼의 머릿속에, 교회의 부제(副祭)를 뜻하는 단어가 떠올랐다. 새로운 신, 혹은 새로운 악마의 탄생을 알리는, 불경한 사제.

갓 태어난 디컨은, 자신의 부모이자 제물인 엔지니어의 시체 위에서, 피에 젖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리듯, 하늘을 향해 길고 날카로운 포효를 내질렀다. 그 울음소리는 승리의 함성이자, 동시에 이 저주받은 행성에서 홀로 태어난 존재의, 고독한 비명처럼 들렸다.

쇼는 그 광경을 보며, 자신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가장 끔찍하고도 명확한 대답을 얻었다. 신은 그들을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들의 호기심과 오만으로, 신을 죽일 악마를 창조했다. 창조의 연쇄는, 그렇게 파괴의 순환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점에는, ‘왜?’라는, 아주 순수하고도 치명적인 질문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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