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알현하다 (An Audience with God)

by 남킹


시간은 상처 입은 육체에게 가장 잔인한 고문관이다. 그것은 고통을 원자 단위로 분해하여, 매 순간의 영겁과도 같은 지속성을 신경 말단에 각인시킨다. 피터 웨이랜드의 호화로운 개인실, 그 차가운 정적 속에서 엘리자베스 쇼는 자신의 육체가 배신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스테이플러로 급하게 봉합된 복부의 상처는 욱신거리는 통증의 파동을 끊임없이 발신했고, 아드레날린이 걷힌 자리에는 뼈를 깎는 듯한 피로가 밀물처럼 차올랐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으로 무너뜨린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앞에 펼쳐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오만과 가장 추악한 노쇠가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피터 웨이랜드. 한때는 거인처럼 세상을 호령했던 남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불을 훔쳐 인류에게 던져주고, 스스로를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 칭했던 자. 그러나 지금 그녀 앞에 있는 것은 신화 속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이동식 생명 유지 장치라는, 복잡하고 섬뜩한 왕좌에 앉아 있는 한낱 미라에 불과했다. 그의 몸은 투명한 튜브와 데이터 케이블의 거미줄에 의해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검버섯 핀 피부는 양피지처럼 얇고 건조했고, 그 아래의 근육은 모두 소멸하여 뼈의 윤곽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의 호흡은 기계의 힘을 빌린, 삐걱거리는 풀무 소리였고, 그의 혈액은 더 이상 스스로 흐르지 못하고, 외부 펌프에 의해 강제로 순환되고 있었다. 그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죽음의 필연성을 기술로써 교묘하게 지연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만은 살아 있었다. 깊게 함몰된 눈구멍 속에서, 두 개의 푸른 불꽃처럼, 그의 눈은 광적인 의지와 탐욕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저항하는 마지막 불꽃이었고, 유한한 육체에 갇힌 무한한 자아의 절규였다. 그는 쇼를, 그리고 그녀가 갓 ‘낳은’ 끔찍한 피조물이 담겨 있을 의료 포드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연민이나 공포 따위는 없었다. 오직 자신의 가설이 입증되었을 때 과학자가 느끼는, 비인간적인 희열만이 존재했다.

“경이롭군.” 그의 목소리는 성대를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에 부착된 인공 발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기계적이고 메마른 소리였다. “창조의 본능은, 죽음의 공포마저 뛰어넘는군. 저것 보게, 비커스. 저것이 바로 생명이야. 추악하고, 폭력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자신을 복제하려는 의지. 우리는 신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결국엔 우리 안의 가장 원시적인 신성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그의 딸, 메레디스 비커스는 아버지의 옆에, 마치 잘 조각된 얼음 조각상처럼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굳게 다문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턱 근육은 그녀의 내면에서 들끓는 증오와 혐오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평생을 이 남자의 그늘 아래서 살아왔다. 그의 위대함에 짓눌리고, 그의 인정을 갈망했으며, 동시에 그가 하루빨리 죽어 사라지기를 저주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발악으로, 인류 전체를 자신의 광기 어린 도박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제 만족하셨나요, 아버지?” 그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당신의 호기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서, 곱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어때요?”

“죽음?” 웨이랜드가 조소했다. 그의 기계 목소리가 기괴하게 떨렸다. “죽음은 패배자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평생을 싸워왔다. 질병과, 노화와,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와. 그리고 이제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다. 나의 창조주를 만나, 그들에게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영생.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목적지다.”

쇼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이 모든 탐사의 본질을 깨달았다. 인류의 기원을 찾는다는 거창한 명분은,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늙은이의 이기적인 욕망을 포장하기 위한 기만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순례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신의 무덤을 파헤쳐 불멸의 비약을 훔치려는, 불경한 도굴꾼들이었다.

“그들은 죽었어요.” 쇼가 찢어지는 듯한 복부의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당신이 만나려는 신은, 2천 년 된 시체일 뿐이라고요.”

웨이랜드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에는 경멸과 함께, 어린아이의 무지를 나무라는 듯한 기묘한 연민이 서려 있었다. “죽었다고? 아, 순진한 과학자로군. 당신은 아직도 죽음을 절대적인 끝이라고 믿는가? 저들은 우리보다 수억 년은 앞선 문명이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어쩌면 우리가 잠에 드는 것과 같은, 일시적인 상태 변화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아니, 설령 그들이 모두 죽었다 해도, 그들의 기술은 남아있다. 그 기술 속에, 생명을 되돌리는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의 광기는 논리적이었고, 체계적이었으며, 그래서 더욱 섬뜩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주 전체를 재해석할 수 있는 남자였다.

“데이빗.” 그가 고개를 돌려, 방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 안드로이드를 불렀다. “준비는 되었나?”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창조주님.” 데이빗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지만, 그의 푸른 광학 센서는 웨이랜드의 생명 유지 장치와 구조물의 데이터를 동기화하며, 수천 개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웨이랜드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돌아간다. 그들의 신전으로.”

비커스가 경악했다. “미쳤군요! 방금 동료들이 그곳에서 끔찍하게 죽는 걸 보지 못했나요? 그곳은 오염됐어요!”

“오염이 아니라, 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웨이랜드가 반박했다. “약한 것들은 도태되고,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 그것이 진화의 법칙이지. 우리는 이제 그 법칙을 넘어, 새로운 법칙을 쓸 것이다. 쇼 박사, 당신도 함께 가야겠다. 당신은 이제 우리 탐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자, 증거물이니까.”

쇼는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그녀는 경호원들에게 부축되어, 이 끔찍한 장례 행렬에 강제로 합류했다. 그들이 개인실을 나설 때, 쇼는 마지막으로 의료 포드를 돌아보았다. 문이 닫힌 포드 안에서, 그녀가 낳은 괴물, 트릴로바이트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그것은 이 모든 비극의 결과물이자, 어쩌면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일지도 몰랐다.

그들의 두 번째 여정은 첫 번째와는 완전히 달랐다. 흥분과 기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무겁고 축축한 죽음의 예감만이 감돌았다. 무장 탐사 차량에 실린 웨이랜드의 생명 유지 장치는, 마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를 장지로 옮기는 석관(石棺)처럼 보였다. 남은 승무원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과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광신도의 마지막 순교 여행에 끌려온, 이름 없는 제물들이었다.

구조물 내부는 더욱 음산해져 있었다. 복도에는 총격전의 흔적과 말라붙은 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기물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오존 냄새와 함께,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부패의 냄새가 떠다녔다. 그들은 시체와 괴물의 잔해를 피해, 엔지니어들의 시체가 잠들어 있던 조종실(bridge), 즉 ‘저거너트(Juggernaut)’의 함교로 향했다.

그곳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중앙의 거대한 조종석에는, 화석처럼 굳어버린 엔지니어의 시체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웨이랜드의 목적은 그 시체가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조종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인간의 관처럼 생긴 동면 포드들을 향해 있었다. 대부분은 비어 있거나, 내부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온 듯 파괴되어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 가장 안쪽에 있는 포드만은, 온전한 상태로 녹색의 희미한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살아있는 엔지니어가 잠들어 있었다.

“찾았군.” 웨이랜드의 기계 목소리가 환희에 차 떨렸다.

데이빗이 포드의 제어판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가락이 복잡한 상형문자로 이루어진 인터페이스 위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는 이미 이들의 언어와 기술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생명 유지 장치 해제를 시작합니다. 30초 후, 동면 상태가 종료됩니다.”

그 30초는 영원과도 같았다.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인 채, 녹색 빛이 깜빡이는 포드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수만 년의 잠에서 깨어난 신은, 자신들의 실패한 피조물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쇼는 복부의 통증도 잊은 채, 이 신성모독적인 부활의 의식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었다. 이것은 흑마술(necromancy), 죽은 자를 깨우는 금지된 주술이었다.

마침내, 포드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덮개가 안개처럼 투명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형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엔지니어였다. 그는 살아 있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신이었다. 최소한, 고대인들이 신이라고 믿었을 법한 완벽한 존재였다. 2미터가 훌쩍 넘는 키,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처럼 완벽한 비율의 근육, 창백하지만 생기가 넘치는 피부.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 무표정함 자체가 인간의 희로애락을 초월한 존재의 위엄을 느끼게 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텅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우주의 모든 별을 담고 있는 심연처럼 깊었다. 그는 이 방 안에 있는 불경한 침입자들을, 마치 현미경 아래의 미생물을 관찰하듯, 차갑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웨이랜드는 자신의 생명 유지 장치 안에서, 거의 경련에 가까운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데이빗… 말해라.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데이빗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잠에서 깨어난 신과, 죽어가는 인간 사이의 통역자였다. 피조물이, 또 다른 피조물을 대신하여, 창조주에게 말을 거는, 무한한 아이러니의 순간.

그는 엔지니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고대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바람 소리와 돌이 구르는 소리가 뒤섞인 듯한, 깊고 울림 있는 언어였다. 데이빗은 인류가 해독한 가장 오래된 언어인, 원시 인도-유럽어(Proto-Indo-European)의 재구성된 형태를 기반으로, 엔지니어의 언어 구조를 유추해낸 것이었다.

“Wrh₂g-yō,” (이 분은 당신들을 만든 분이시니,) “dekm̥ h₁dōt.” (당신들께 말을 건네나이다.)

엔지니어는 미동도 없이 데이빗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아주 희미한 호기심이 스치는 듯했다.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 기이한 인형을 흥미롭게 여기는 듯했다.

데이빗은 계속해서 웨이랜드의 메시지를 통역했다. “이 분은 피터 웨이랜드. 당신들의 피조물인 인류의 일원이자, 동시에 저처럼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 창조주이기도 합니다. 그는 당신들과 같이, 죽음을 거부하고 영원히 살 자격이 있습니다. 그는 당신들을 찾아 우주를 건너왔습니다. 자신을 만든 신에게, 불멸을 요구하기 위해.”

웨이랜드의 오만한 요구가, 데이빗의 기계적인 목소리를 통해, 고대의 언어로 번역되어 신의 귀에 전달되었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엔지니어는 말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웨이랜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기계 속에서 간신히 숨 쉬고 있는, 늙고 병든 피조물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의 눈에 어떤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경멸이었을까?

그러더니 그는, 아주 부드러운 동작으로, 데이빗에게 다가왔다. 그는 손을 뻗어, 데이빗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잘 만든 장난감을 칭찬하는 듯한, 혹은 흥미로운 생물을 관찰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데이빗은 가만히 서서 그의 손길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엔지니어는, 그 부드러웠던 손길과 똑같은 무심함으로, 데이빗의 머리를 목에서부터 뽑아버렸다.

‘툭’ 하는, 젖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데이빗의 머리가 그의 몸에서 분리되었다. 잘린 목에서는 하얀색의 인공 혈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몸체는 잠시 동안 경련하다가, 기계 부품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경호원들이 총을 들기도 전에, 엔지니어는 손에 들린 데이빗의 머리를, 마치 볼링공처럼 휘둘러, 웨이랜드의 생명 유지 장치를 강타했다. 강화 유리가 박살 나고, 웨이랜드의 늙은 육신이 기계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엔지니어는 바닥에 쓰러진 웨이랜드를 벌레처럼 내려다보더니, 다시 한번 데이빗의 머리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두개골이 박살 나는 둔탁한 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피터 웨이랜드. 신이 되려 했던 남자는, 자신의 창조물이 만든 피조물의 머리에 맞아, 가장 비참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제야 경호원들이 불을 뿜었다. 총알이 엔지니어의 몸에 폭풍처럼 쏟아졌지만, 그의 단단한 피부에는 작은 흠집만을 남길 뿐이었다. 그는 성가신 벌레를 쫓아내듯, 거대한 팔을 휘둘러 경호원들을 종잇장처럼 날려버렸다.

쇼는 공포에 질려 얼어붙었다. 이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이것은 증오도 아니었다. 이것은 완벽한 무관심, 절대적인 혐오였다. 실패한 창조물을 폐기하는 자의, 차갑고 효율적인 폭력. 그들의 질문, 그들의 욕망,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이 거대한 존재에게는 하찮고 역겨운 오염 물질에 불과했던 것이다.

엔지니어는 살아남은 자들을 무시한 채, 조종석으로 향했다. 그의 임무는 명확해 보였다. 그는 이 저거너트를 이륙시켜, 지구로 향할 생각이었다. 수만 년 전에 실패했던 인류 절멸의 임무를, 이제 마저 완수하기 위해.

비커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출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쇼 또한, 본능적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는 데이빗의 잘린 머리가, 여전히 푸른 눈을 깜빡이며, 이 모든 아비규환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있었다.

“쇼 박사님….” 머리의 스피커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지구로 가려 합니다. 막아야 합니다.”

쇼는 그의 말을 들을 겨를도 없이, 비커스의 뒤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녀의 등 뒤에서, 거대한 함선이 깨어나는, 지축을 울리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의 심판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7.jpg
144.jpg


이전 06화부정한 잉태(Immaculate Abomi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