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잉태(Immaculate Abomination)

by 남킹


정신적 충격의 임계점을 넘어서면, 슬픔은 더 이상 눈물이라는 감상적인 형태로 배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부로 침전하여, 영혼의 지질 구조를 바꾸는 차갑고 단단한 광물로 변성된다. 찰리 할로웨이가 한 줌의 검은 재로 화(化)하는 것을 목격한 엘리자베스 쇼의 내면에서, 바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원시적인 방어기제를 발동했다. 해리(解離). 그녀는 자신의 육체로부터, 이 끔찍한 현실로부터 분리된, 차가운 관찰자가 되었다.

함선으로 돌아온 그녀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오염된 탐사복을 소각 처리했고, 샤워를 했으며,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모든 동작은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었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생명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텅 빈 껍데기, 고도로 훈련된 자동인형(automaton) 같았다. 동료들은 그녀를 위로하려 했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투명하고 절대적인 슬픔의 역장(力場)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의료실로 향했다. 그곳은 그녀의 공간이었고, 이성(理性)이 지배하는 그녀의 마지막 성역이었다. 혼돈과 광기에 맞서기 위해, 그녀는 과학이라는 질서의 갑옷을 입어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의 혈액을 채취하여 분석기에 넣었다. 할로웨이와의 마지막 접촉. 그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예감이, 해리된 의식의 표면 아래에서 희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분석 결과는 몇 분 만에 나왔다. 스크린에 떠오른 녹색의 '정상(NORMAL)'이라는 단어. 바이러스도, 박테리아도, 그 어떤 외부 유전 물질의 침입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너무나도 깨끗했다. 마치 침입자가 자신의 모든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버린 범죄 현장처럼.

그때였다. 그녀의 복부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명백한 경련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단순한 근육의 떨림이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그러나 경련은 반복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태동(胎動)이었다.

불가능했다. 그녀는 불임이었다. 그녀의 자궁은 선천적인 기형으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었다. 그것은 그녀 평생의 상처였고, 그녀의 과학적 이성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운명의 잔인한 농담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몸이 그녀 평생의 진단을 배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용 초음파 스캐너를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댔다. 차가운 젤의 감촉이 피부에 소름을 돋게 했다. 그녀는 스크린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회색의 노이즈만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스캐너를 움직이자,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태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자궁이 아닌, 그녀의 복강(腹腔) 내에, 다른 장기들을 밀어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고대의 갑각류와 해양 식물이 뒤섞인 듯한, 끔찍하고 이질적인 형태였다. 여러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중앙에는 단단한 외골격으로 덮인 몸체가, 마치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박동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 의료실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스크린 속 괴물의 심장 소리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것이, 찰리가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의 절망과 고통, 그리고 그를 잠식했던 검은 액체의 저주가, 이제 그녀의 몸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이것은 잉태가 아니었다. 이것은 감염이었고, 기생이었다.

그녀의 해리 상태가 산산조각 났다. 차가운 관찰자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 아래에 억눌려 있던 원초적인 공포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단어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 절규였다.

그녀는 미친 듯이 의료 캐비닛을 뒤졌다. 약물. 이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유산시킬 수 있는 약물. 그러나 그녀의 몸속에 있는 것은 정상적인 임신이 아니었다. 약물로는 소용없을 것이다. 이것은 외과적으로 ‘제거’해야만 했다. 그녀는 메스를 집어 들었다. 스스로 배를 가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려, 메스를 쥘 수조차 없었다.

바로 그때, 데이빗이 의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등 뒤에는 두 명의 건장한 승무원이 서 있었다. 그는 쇼의 상태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쇼 박사님, 진정하십시오.” 데이빗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했지만, 그 평온함이 지금 이 순간에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당신은 지금 의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보호 조치가 필요합니다.”

‘보호 조치’. 그 단어는 쇼의 머릿속에서 경고등처럼 울렸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 안의 ‘그것’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웨이랜드 사(社)에게 있어, 이 외계 생명체는 인류의 기원을 밝혀줄 열쇠이자, 어쩌면 무한한 가치를 지닌 생물학적 무기일지도 몰랐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인간 과학자가 아니었다. 귀중한 샘플을 품고 있는, 살아있는 인큐베이터에 불과했다.

“비켜!” 쇼가 소리치며, 손에 잡히는 의료 기구를 그들에게 집어 던졌다. “내 몸이야! 내 몸에서 당장 나가!”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두 명의 승무원이 그녀를 제압했다. 그녀는 발버둥 쳤지만, 그들의 완력에 의해 의료용 침대에 눕혀지고, 팔다리가 구속되었다. 데이빗이 그녀에게 다가와, 진정제 주사를 놓으려 했다.

“안 돼… 제발…” 그녀가 애원했다. 진정제를 맞으면, 그녀는 모든 통제권을 잃게 될 것이다. 그녀의 몸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 괴물을 위한 완벽한 배양기가 될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그녀의 발길질이 주사기를 든 데이빗의 손을 쳤고, 그녀를 제압하던 승무원 한 명의 턱을 강타했다. 그가 비틀거리는 사이, 다른 승무원의 허벅지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짐승 같은 저항이었다. 그 혼란의 틈을 타, 그녀는 구속을 풀고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그녀는 의료실을 뛰쳐나와, 함선의 복도를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는 그녀를 쫓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강철의 미로 속에서, 그녀가 숨을 곳은 없었다.

그때, 그녀의 뇌리에 한 장소가 스쳐 지나갔다. 웨이랜드의 개인실. 함선의 가장 보안 등급이 높은 곳. 그곳에는 프로메테우스 호의 단 하나뿐인, 최첨단 자동 의료 포드(Automated Medical Pod) ‘폴(Paul)’이 있었다. 어떤 외과 수술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십억 달러짜리 기계. 그것은 원래 남성인 피터 웨이랜드를 위해 설계되었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녀는 방향을 틀어, 비커스와 웨이랜드만이 접근할 수 있는 최상층 구역으로 향했다. 보안문을 향해 돌진하며, 근처에 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어 제어판을 미친 듯이 내리쳤다. 스파크가 튀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웨이랜드의 개인실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호화로웠다. 중앙에는 거대한 침대가 있었고, 한쪽 벽면은 지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의 한구석에, 관(棺)처럼 생긴 하얀색의 기계, '폴'이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의료 포드의 덮개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덮개가 닫히자, 외부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녀는 잠시 동안의 안전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녀의 복부에서는, ‘그것’이 그녀의 불안을 감지라도 한 듯, 더욱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포드 내부의 터치스크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진단 시작. 환자 정보: 엘리자베스 쇼. 여성.]

[스캔 중… 복강 내 미확인 이물질 발견.]

[수술 프로토콜 검색 중… 일치 항목 없음.]

[경고: 본 의료 포드는 남성 신체 구조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경고 메시지를 무시했다. 수동 조작 모드로 전환했다. 그녀는 자신의 의학 지식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수술 프로토콜을 직접 입력하기 시작했다. ‘개복술(Laparotomy)’. ‘이물질 제거(Foreign Body Removal)’. 그녀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녀는 지금, 자기 자신을 집도할 외과의사가 되어야 했다.

[수술 프로토콜 설정 완료. 마취를 시작합니다.]

“안 돼!” 그녀가 소리쳤다. 마취를 하면 안 된다. 그녀는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의식을 잃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마취 옵션을 해제하고, 대신 국소 마취제와 진통제를 최대치로 설정했다.

[경고: 환자의 생체 신호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예(YES)’를 눌렀다.

포드 내부의 기계 팔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독제가 그녀의 복부에 차갑게 뿌려졌고, 수술 부위를 고정하는 클램프가 그녀의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맡 스크린에, 그녀의 복부를 확대한 영상이 나타났다.

[수술을 시작합니다.]

레이저 메스가, 그녀의 배꼽 아래쪽 피부에 가느다란 붉은 선을 그었다. 그녀는 비명을 참기 위해 자신의 팔을 깨물었다.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그녀의 신경계를 강타했다. 진통제가 투여되고 있었지만,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몸이 갈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는 정신적 고문이었다.

피부가 열리고, 노란 지방층이 드러났다. 레이저는 계속해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근육층이 갈라지고, 마침내 복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드의 작은 카메라가 복강 내부로 진입했다.

스크린에, 그녀의 내장들 사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끔찍한 생명체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그녀가 초음파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커져 있었다. 마치 회색의, 촉수가 달린 거대한 오징어처럼 생긴 몸체. ‘트릴로바이트(Trilobite)’. 그녀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그 생물에게 고생대의 멸종된 절지동물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기계 팔 하나가, 집게 모양의 수술 도구를 들고 복강 내부로 들어갔다. 집게가 트릴로바이트의 몸체를 잡으려 하자, 그것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것의 촉수들이 그녀의 장기들을 휘감았다. 쇼는 자신의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생체 신호가 위험 수준까지 치솟았다.

[경고! 환자 쇼크 상태! 수술을 중단합니다!]

“안 돼! 계속해! 계속하라고!” 그녀가 포드를 향해 절규했다.

그녀는 스크린의 수동 조작 버튼을 필사적으로 눌렀다. 그녀의 의지에, 기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개의 기계 팔이 동시에 투입되었다. 하나는 촉수들을 떼어내고, 다른 하나는 몸체를 단단히 붙잡았다.

마침내, 트릴로바이트는 그녀의 몸속에서 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피와 양수가 뒤섞인 채, 그것은 질척한 소리를 내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갓 태어난 아기만 한 크기. 그것은 투명한 생체낭(bio-sac)에 싸여 있었고, 그 안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기계 팔이 그것을 들어 올려, 옆에 있는 생물학적 폐기물 처리함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몸부림치는 순간, 생체낭이 찢어지며, 그것이 포드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술은 끝났다. 기계 팔들이 신속하게 그녀의 복부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스테이플러가 ‘타타탁’ 소리를 내며 그녀의 열린 상처를 집어 나갔다. 쇼는 고통과 탈진으로 거의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포드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자신의 ‘피조물’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일부였다. 그녀의 DNA, 그녀의 고통, 그리고 찰리의 저주가 뒤섞여 태어난, 부정한 생명. 그녀는 그것을 보며 공포와 혐오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기이하고 도착적인 유대감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가 낳은 ‘자식’이었다. 그녀는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결국에는 창조주가 되었다. 신성모독적인 방식으로.

포드의 덮개가 열렸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나온 직후, 포드 내부에 남겨져 있던 트릴로바이트를 처리하기 위해, 강력한 자외선 살균 광선이 방출되었다. 괴물은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쳤지만, 죽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웨이랜드의 개인실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늙은 피터 웨이랜드가, 이동식 생명 유지 장치에 의지한 채, 비커스와 데이빗, 그리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동면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이 모든 여정을, 깨어있는 상태로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늙고 주름진 눈이, 엉망이 된 쇼와, 포드 안에서 꿈틀거리는 트릴로바이트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보게….” 그의 목소리는 죽어가는 자의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생명이… 길을 찾아냈군.”

그의 눈에는 어떠한 동정심도 없었다. 오직 광적인 호기심과, 자신의 창조주를 만나 영생을 얻으려는 맹목적인 욕망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쇼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배에 타고 있는 진짜 괴물은, 자신의 배 속에서 자라나던 저 생명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것은, 신이 되려는 오만한 꿈을 꾸는, 저 늙고 추악한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자신의 복부를 움켜쥐었다. 스테이플러로 봉합된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녀는 괴물을 자신의 몸에서 분리해냈다. 그녀는 다시,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생존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싸워야 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공포에 질려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을 경험하고 돌아온 자의, 차갑고 단단한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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